미니텔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PC가 보급되기 전인 1980년대 초반 당시 프랑스 우정 통신국이 전화와 정보기술을 결합, 문자 기반의 통신서비스 단말기로 개발한 것이다. 다가올 정보화 시대를 예견한 당시 프랑스 정부가 자국민이 정보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한 국책 사업이었던 것.
`작은 프랑스 상자(Little French Box)’라는 애칭이 붙은 베이지색 토스트기 만한 이 기기는 9인치 흑백 스크린과 키보드로 구성되어 있다. 미니텔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프랑스에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단말기 제조사와 콘텐츠 기업은 활기를 띠었다. 1995년 프랑스 국영 통신업체 프랑스텔레콤(현재 오렌지)은 미니텔로 10억 유로 매출을 올렸다. 이 가운데 수수료 30%를 빼고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1981년 공개되어 프랑스 각 가정에 무료로 보급된 이 기기는 처음에는 `전자 전화번호부’ 정도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 점차 다양한 ‘앱’이 나오며 열차 예약, 공연 예약, 날씨 확인 등 생활에 밀접하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비디오 게임에서 성인 채팅까지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미니텔과 관련한 일화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다. 인터넷 세대인 필자의 프랑스 친구들도 어릴 때 언니나 오빠가 프랑스 수능인 바깔로레아 성적을 미니텔을 통해 확인하던 것을 기억한다.
미니텔은 황금기였던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전역에 900만 대에 이르는 기기가 보급됐다고 한다. 또 2,500만 명이 2만 3,000여 개에 달하는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프랑스 농촌 지역까지 널리 보급된 이 단순한 단말기 덕에 프랑스 국민들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정보통신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다.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한 석상에서 파리 근교 소도시인 오베르빌리에에 사는 빵집 주인은 미니텔을 통해 은행 계좌를 확인할 수 있다고 자랑하면서 “뉴욕의 빵집 주인도 그럴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인터넷 보급이 점진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도 PC 보급과 인터넷 공급망이 미흡했던 이유로 미니텔의 인기는 여전했다. 무엇보다 프랑스인 특유의 애국심과 자부심도 미니텔의 인기 유지에 한몫했다.
하지만 곧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니텔의 열기는 점점 식어간다. 메모리 한계와 속도 문제로 더 이상 오래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점점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며 프랑스인도 새로운 트렌드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1997년 당시 프랑스 총리 리오넬 조스팽은 “국내에만 한정된 미니텔은 프랑스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니텔은 결국 2012년에 프랑스인의 추억으로 영영 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많은 창업자들은 미니텔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거물급 인사를 배출한 첫 번째 장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프리(Free) 창립자 그자비에 니엘(Xavier Niel)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미니텔을 이용한 성인 전용 서비스를 지칭하는 미니텔 로즈에 특화된 기업 일리아드(Iliad)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일리아드는 여전히 프리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최고 부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틱(Meetic) 창업자 마크 시몬치니(Marc Simoncini) 역시 미니텔 덕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프랑스 내 숙박 서비스 아이프랑스(iFrance)와 데이트 서비스 미틱을 창업했다.
미니텔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와 비슷한 점이 많아 정말 놀랐다. 80년대부터 프랑스 국민들이 정보통신서비스를 누려왔다는 사실도 되짚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미니텔은 인터넷의 대중화 이전에 존재하던 진정한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 통역번역대학원 출신 전문 번역사로 이뤄진 번역 스타트업 바벨탑이 조사, 번역한 것이다. 번역본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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