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이하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에 초기(seed)투자하고 멘토링, 교육, 네트워킹 등의 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나 조직을 말한다. 액셀러레이터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은 초기 스타트업을 선발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년 동안 지원, 육성한 후 데모데이(demo-day)를 통해 투자자에게 소개할 기회를 가지면서 종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발된 스타트업에게 프로그램 기간 동안 사무공간을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는 액셀러레이터의 한 형태다.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또는 기업 집단이 초기 스타트업을 투자하고 육성하기 위해 만든 것. 해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인텔, 시스코, GE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많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형태도 별도 법인이나 재단, 내부 사업 부문, 사내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대표적인 국내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로는 롯데그룹의 별도 법인으로 설립된 롯데액셀러레이터 주식회사,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영리 재단(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마루180, 한화그룹이 사업 부문 형태로 운영하는 한화드림플러스, 네이버의 사내 프로그램 네이버D2 등이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독립계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 현대자동차, 코오롱그룹, 스마일게이트 같은 기업도 이와 같은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다.
기업형 액셀러레이터의 운영 목적은 스타트업 발굴, 육성 외에도 액셀러레이터 운영 주체인 기업의 목적에 영향을 받는다.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위한 사회공헌, 스타트업의 혁신 문화와 최신 트렌드 도입, 우수한 투자처의 조기 발굴,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일으킬 신사업 모색, 인재 발굴 및 육성 등 다양한 목적이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롯데액셀러레이터는 롯데그룹에서 사회공헌과 스타트업의 혁신 역량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의 2가지 목적을 성취하고자 만든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다.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는 여타 액셀러레이터와 마찬가지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 전문가 멘토링, 법률-회계 등의 서비스, 사무공간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투자는 수천만원에서 1~2억원 이내 초기 투자를 하는 경우가 다수다. 투자 외에도 사업을 시작하고 키우는데 필요한 역량이나 부족한 경험으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법률, 회계, 마케팅 등의 서비스도 지원한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의 사무공간을 제공해 비용 절감에도 기여한다.
이런 투자, 멘토링, 사무공간 제공은 일반적인 액셀러레이터와 유사한 프로그램이지만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만의 차별화 포인트는 바로 ‘기존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 제공이다. 기존 사업에서 풍부한 인프라와 기반을 갖춘 기업을 스타트업에 소개하고 협력 기회를 제공, 스타트업의 양적/질적 수준을 한단계 올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편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아직은 자생력이 부족해서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것이 사실이다. 창업 생태계가 미국, 이스라엘과 같이 활성화되려면 정부 지원뿐 아니라 자본과 조직,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다. 아직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스타트업 투자도 미미한 상황인 만큼 대기업 내에서 스타트업 생태계와 접촉하는 전초기지 같은 조직이 바로 기업형 액셀러레이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업형 액셀러레이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먼저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사업 협력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지도록 협력의 중개자가 되어야 한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 간 사업 협력 성공 사례가 드물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아이디어만 뺏어갈 것이라고 걱정하고 대기업 사람들은 당장 실적에 도움도 안될텐데 협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지향점이 다른 두 집단 간에는 중개자가 필요하다. 과거와 달리 대기업도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뺏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타트업에게 알리고 스타트업이 당장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빠르게 성장해서 기존 사업에 위협이 될 혁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대기업 사람들에게 이해 시킬 필요가 있다. 마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 사이에 통역이 필요하듯 대기업-스타트업 사이에는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라고 하는 통역이 필수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두번째로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는 대-중견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와 M&A의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국내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액도 아직 작고 대기업의 M&A를 통한 엑싯이 다른 해외 사례에 비해 너무 드물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투자와 회수의 선순환이 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구글 한 회사가 한달에 1건 꼴로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모든 대기업을 통틀어 1년에 손으로 꼽을 정도의 사례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형 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 후 연관되는 기업과 협력을 만들어 내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이 추가 투자하면서 사업적인 시너지가 눈에 띄게 나타나면 M&A까지 일어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다. 롯데액셀러레이터의 경우에도 1기 보육 스타트업에 롯데백화점이 추가 투자를 했고, 2기에는 롯데멤버스가 추가 투자를 한 후, 지속적인 사업 협력을 하고 있다. 이런 사례가 많이 쌓이면 더 좋은 사례 즉 M&A까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번째.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해야 한다. 직접 보육하고 있는 스타트업 뿐 아니라 엔젤클럽, 중소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털과 협력하면서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협업해야 한다.
롯데액셀러레이터의 경우 선발한 보육 기업을 타 액셀러레이터와 공동으로 지원해서 빠른 성장을 추진하거나, 타 액셀러레이터가 보육하고 있는 스타트업에 롯데그룹의 계열사를 소개해 사업 협력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작은 부분이지만 스타트업 기관에 행사 공간을 무료 대관해 네트워킹 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고 있다.
투자 단계별로 다양한 투자자와 정보도 공유하고 투자 대상이 될 스타트업을 소개하기도 하고 외부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기도 한다. 이 모든 활동들이 생태계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것이고, 이런 활동이 쌓여서 더 나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 질 것이다.
사실 기업형 액셀러레이터를 해당 사업만 좁게 평가해 보면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롯데액셀러레이터의 경우만 봐도 연간 수십 억원 손실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좁게 보면 적자 사업이지만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의 혁신 문화와 에너지를 모기업에 전달, 기업 문화를 혁신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또 이런 스타트업 육성 활동이 다른 사회 공헌 활동이나 기부 프로그램보다 기업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기업형 액셀러레이터의 긍정적 효과가 많이 알려져서 더 많은 기업형 액셀러레이터가 생기기를 희망한다.
※ 이 글은 서울창업허브(http://seoulstartuphub.com/)와 공동 기획, 진행한 것입니다. 관련 내용 원문은 서울창업허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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