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회사의 핵심 역량을 물어보면 대다수 대표가 ‘사람’이라고 답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업계 내의 네트워크 그리고 숙달된 전문지식이 오로지 사람에게 체화되어 있으니 그러할 것이다.
그에 비해 아직 스타트업의 구성원 이직이나 퇴사가 법적 분쟁이 되는 빈도가 낮은 편이다. 스타트업은 구성원 간에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인적 관계가 강하며 지분,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도 뚜렷한 편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합집산이 빠르고 자유분방한 문화도 한 몫 한다. 하지만 넥슨의 코빗 인수에서 드러나듯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분야에 뛰어드는 일이 현실화되고, 야놀자, 여기어때처럼 여러 스타트업이 돈 되는 분야에서 격돌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구성원이 대기업이나 경쟁사로 이직한다면? 스타트업이 간과해서는 안되는 문제일 수 있다.
모 화장품 스타트업과 상담한 적이 있다. 핵심 연구원을 영입하였는데 “꼼짝 못하게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IT 제조 스타트업은 신제품의 세부설계, 단가 관리를 하는 직원이 경쟁사로 이직해버렸다고 울상을 짓기도 했다. 하나는 예방적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벌어진 사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법적인 ‘전직금지’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어느 경우든 기밀유지 약정, 전직금지 약정의 문서화가 최우선인데 다행히 최근에는 근로계약서와 함께 작성하는 추세다. 위 두 회사도 자세한 약정서가 있었다. 하지만 문서를 잘 받아도 후속조치가 미흡하여 법적 의미가 퇴색하는 사례가 많다.
대한민국 헌법은 직업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회사는 합당한 이유 없이 전직금지를 강제할 수 없다. 현재 인정되는 전직금지 사유는 영업비밀 내지 노하우 유출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법상 영업비밀이란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영업비밀의 내용이 가치 있어야 하고, ‘대외비’ 등 표식, 정보접근자 제한 등 외부적인 표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화장품 회사는 대기업 출신의 대표가 연구실 출입, USB 등 자료공유 제한, 촬영 제한 등 나름의 유출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대외비’ 등 자료 자체에 표식을 남기는 것이 미흡하여 수정을 권했다. IT 제조 스타트업은 ‘알고 보니’ 보안팀에서 서버 접속, 자료 반출 등 보안체계를 잘 구비해두었다. 사실 담당 이사가 보안시스템을 몰랐다가 필자의 권유로 보안담당자를 불러 보안기록의 존재를 알게 된 해프닝이 있었다. 그 보안기록에는 핵심자료를 유출한 정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결국 해당 직원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전직금지 약정이 유효하기 위한 마지막 허들이 있다. 전직금지에는 합당한 근거와 정당한 보상이 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직원 입장에서 경력과 경험을 살려야 좋은 조건으로 이직할 수 있으니 무턱대고 1~2년간 동종업체로 이직을 금지할 수가 없다. 반드시 금전적인 보상일 필요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수긍할만한 근거와 보상을 문서로 남겨두어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퇴직할 때 다시 한 번 기밀유지서약 등을 꼼꼼히 받아두는 수고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성원 입장에서는 전직금지 조항이 유효함을 인식하고, 면밀히 검토해 필요하다면 적절한 협상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직금지 약정을 내세워 구성원을 압박하는 회사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전직금지 약정을 수용할 정도의 근무 조건인지 숙고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직원을 영입한 경쟁회사의 경우에도 유출된 영업 비밀을 이용했음이 밝혀지거나 적법한 전직금지 규정의 존재를 알면서도 영입하였다면 민, 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경쟁사에 대한 법적 조치 중 민사 손해배상은 그 배상액 산정의 어려움 때문에 널리 이용되지는 않지만 법리가 정립되는 과정이다. 형사적으로 대표이사가 배임죄의 공동정범으로 형사 처벌 받을 우려가 있다. 영입 단계에서 성실하게 검증했음을 기록으로 남겨두길 권한다.
※ 이 글은 서울창업허브(http://seoulstartuphub.com/)와 공동 기획, 진행한 것입니다. 관련 내용 원문은 서울창업허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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