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 A는 직원 B를 채용했다. 시간이 지나 B는 회사의 핵심 인재가 되었다. 어느 날 B가 스카웃을 받고 경쟁사로 이직했다. B의 근로계약서에는 비밀유지약정이 없었고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다. 회사의 핵심 정보가 경쟁사에 유출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C는 친구였던 D, E와 함께 창업했다. 지분을 나누고 주주간계약을 체결한 뒤 법인을 설립했다. 출시한 서비스가 초기 반응이 좋아 투자를 받게 됐다. 갑자기 D가 다른 일을 해보기 위해 회사를 나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분은 그대로 가지고 있겠다고 한다. 주주간계약서를 찾아보니 도중에 회사를 그만둘 때 지분을 반납하는 부분에 대한 조항이 없다. 지분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 부분이 문제가 되어 투자를 받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당연히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계약서 내용에 포함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계약을 전담할 별도 부서가 있겠지만 시작하는 스타트업에선 보통 대표가 직접 계약서를 만든다. 대표가 직장 경험이 있더라도 계약서를 직접 작성한 경험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경험, 법적 지식이 없는 대표가 제대로 계약서를 작성하기는 쉽지 않다.
이 글을 작성하기 전 여러 채널을 통해 각 스타트업이 어떻게 계약서를 작성하는지 물어보았다. 대부분 인터넷 포털에서 표준계약서 양식을 다운로드 한 뒤 적당하게 내용을 편집해서 계약서를 만든다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 표준계약서는 표준이 될만한 특별한 효력을 가져서 표준계약서가 아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표준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표준계약서다. 표준계약서를 바탕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려면 자신의 상황에 맞게 몇 가지 조항을 넣거나 빼는 수정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당사자 이름 등 특정 부분만 수정하고 표준계약서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앞에서 언급한 두 예시 상황처럼 곤란한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창업 후 근로계약서, 주주간계약서, 비밀유지서약서, 서비스 이용 계약서 등 수많은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큰 어려움 없이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계약서 작성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공유해보도록 하겠다.
◇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바탕으로 계약 주요 조건을 정리한다=계약 상대방과 합의가 필요한 계약 주요 조건을 최대한 정리한다.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 권리, 의무 및 책임이 주요 조건에 포함되어야 한다. 계약서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분쟁 요소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면, 계약서는 큰 의미가 없다. 정리한 조건을 텀시트(Term sheet, 계약 조건을 정리한 문서)로 만든다.
◇ 계약 상대방과 계약 주요 조건을 협상하고 합의한다=텀시트를 통해 계약상대방과 계약 주요 조건을 합의한다. 근로계약을 예로 든다면 기본급, 상여금 등 각종 처우, 비밀유지의 범위, 퇴사 시 경쟁 업체로의 이직금지(경업금지) 등이 있을 수 있다.
◇ 다양한 경로로 양식을 수집한다=참고할 수 있는 계약서 양식을 최대한 수집한다. 인터넷 포털, 지인 등 다양한 경로로 수집한다. 가장 좋은 계약서는 실제 계약에 사용되었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계약서다. 읽어보았을 때 개별 조항이 포괄적이거나 애매하게 작성된 계약서는 참고하지 않는다.
◇ 계약서 초안을 작성한다=수집한 양식을 바탕으로 계약 상대방과 합의된 조건이 반영될 수 있도록 계약서 초안을 작성한다. 용어의 정리, 재판의 관할 등 일반적인 부분은 양식을 참고하고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직접 작성한다. 제삼자가 읽었을 때 누구나 계약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하고 간결하게 작성한다.
◇ 검토한다=작성한 내용에서 오타가 없는지, 계약 상대방과 합의한 조건은 제대로 포함되었는지 확인한다. 무엇보다 이 계약서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경우의 수를 예방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듬는다. 제삼자가 읽었을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 주변 사람에게 검토를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변호사에게 검토를 요청한다=중요한 계약서라면 되도록 변호사에게 검토를 요청하는 것이 좋다. 테크앤로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비트, 법무법인 세움 등 스타트업에 특화되고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로펌이 많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추후 계약서에 문제가 발생해 치르게 될 비용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국가가 특별히 계약 내용에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계약 내용은 당사자와 합의해도 법적 문제가 발생하거나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금전소비대차 계약에서 이자율이 연 30%라면 이자제한법에 따라 연 24%(2018 년 4 월 기준, 법령 개정시 달라질 수 있음)를 초과해 무효다. 동종업체나 경쟁업체로의 이직을 금지하는 경업금지약정에서 그 기간이 10년이라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을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해당 조항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부분은 일반인이 알기 어렵고 반드시 변호사 도움이 필요하다.
◇ 계약 상대방에게 계약서를 전달하고 서명날인한다=완성된 계약서를 계약상대방에게 전달한다. 만약 특정 조항에 대해 계약상대방이 이견을 보이면 다시 합의하고 수정한다. 합의가 끝난 뒤 계약서에 서명날인 함으로써 계약 체결은 마무리된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이 귀찮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약서는 최대한 신중하게, 정교하게,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놓치지 않고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한다면 계약서 문구 하나가 수억, 수백억 원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글을 작성하기 전 스타트업이 계약서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조사했었다.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려움은 참고할 만한 ‘좋은 계약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공감한다. 조금이나마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고자 법무법인 비트와 간편 전자계약 서비스 모두싸인이 함께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스타트업 계약서 Kit’을 지난해 11월 배포했다. ‘스타트업 계약서 Kit’에는 참고 계약서 5종과 함께 개별 조항의 의미를 설명한 해설서가 제공될 것이다. 계약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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