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에게 VR 경험을 물으면 게임을 첫손에 꼽는다. 3D 그래픽으로 이뤄진 가상 공간 말이다. 오로지 실사 영상으로만 구성된 360 영상은 VR로 인지를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경험에서 오는 차이다. 해상도가 답보된다면 영상 만큼 현실감 넘치는 것도 없다.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 있다는 걸 인지하기엔 3D 그래픽보다는 실사 영상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인투넷미디어 김준현 대표는 우리나라 벤처붐이 일던 지난 2000년부터 콘텐츠 퍼블리싱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기술을 콘텐츠로 접목하는 부분이 취약하다고 생각해 중간에서 컨설팅을 하는 비즈니스로 시작하게된 것.
인투넷미디어가 실사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현실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10년부터다. 그동안 호텔, 펜션, 부동산, 관광 홍보용 VR 영상 제작을 통해 콘텐츠 200여개를 제작했고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의 VR 소극장과 같은 VR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다.
업력으로 보면 이미 자리를 잡은 곳이지만 새로운 도전은 그 다음이었다. 2016년 3월에 사업자를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가상현실 콘텐츠와 유무선 연동 서비스가 가능한 VR 플랫폼 개발을 통해 또다시 험난한 스타트업 바닥으로 뛰어들게 된 것.
인투넷미디어서 특허를 낸 VR플랫폼은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VR콘텐츠 제작툴과 블로그나 미니홈피 형태로 자신만의 VR갤러리를 만들 수 있는 공간 제공하는 서비스다.
“수많은 업체가 VR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중이지만 80%이상이 게임입니다. 결국 다양한 연령과 성별에 맞는 서로 다른 니즈의 이용자를 위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얘기죠.” 이유는 단순했다. 빠른 수익모델을 찾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 가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개발하기까지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데, 매출과 연계된 수익이 보장되는 아이템이 게임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가상현실 분야 종사자를 제외하고 제대로 가상현실을 이해하는 사람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 또한 VR 산업의 발전이 지지부진한 이유다. 이 분야에 종사하거나 가상현실 체험 경험이 있더라도 게임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일반인이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 블로그, 유튜브 등에 올려 여러 사람과 공유하듯 VR 콘텐츠 역시 제작방식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면 수많은 이용자가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하게 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VR 플랫폼의 중요성과 범용화에 대한 부분에 유독 김 대표가 집착하는 이유다. VR 분야는 콘텐츠 확보와 디바이스 개발 이외에 같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플랫폼이다. 많은 비용을 들여 제작한 VR 콘텐츠는 PC, 스마트폰, HMD, 디스플레이 장치 등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콘텐츠를 쉽게 이해하고 사용 할 수 있도록 구현해주는 허브 역할을 플랫폼이 하기 때문. 콘텐츠를 제작할 때 플랫폼을 같이 고민하고 기획해야 하는 이유다.
“콘텐츠를 제작 할 때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활용하고 제공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 비로소 플랫폼을 통해 구현되고요.” 김 대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중인 국립공원전용 VR 플랫폼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지난해 국립공원의 탐방취약계층에 해당하는 이용자를 위해 범용화 서비스의 일환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이용자의 시점으로 메인 화면을 구성하고 손가락 터치 없이 아이컨택을 통해 콘텐츠 이용이 가능하도록 UI를 개발했다.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PC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국 6개 국립공원 중 21곳을 편히 앉아서 즐길 수 있다.
보는 사람은 이렇게 편한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제작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콘텐츠 21개를 제작하는데도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까. 자연 경관을 담아야 할 경우 보통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고 산 정상을 몇번이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행을 반복해야만 원하는 영상물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물론 이런 변수가 인투넷미디어 입장에서는 기회일 수 있다. 전국에 산재한 20여개가 넘는 국립공원의 대상경관은 수백개가 넘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라는 특성을 지녀 더 많은 콘텐츠가 나올 공산이 크다.
사실 2년전 이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투넷미디어는 세상에 나오지 못할수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VR이라는 산업이 개방적이지 않고 폐쇄적인 비즈니스라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고. 그런데 때마침 설악산 국립공원 촬영 제안이 들어와 샘플링 작업을 시작했고 8개월간 촬영포인트 4곳을 제공해 국립공원 촬영 부분 대상 수상하면서 국립공원 VR촬영을 수주하고 회사 운영에 숨통이 트인 것.
2016년 IT전시회에서 처음 알게 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기업공감원스톱서비스(이하 ‘SOS1379’) 역시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 당시는 사업 초기여서 법인만 만들었을 뿐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구상 중이던 시기였다.
SOS1379는 비즈니스에 대한 방향과 사업운영의 방법, 기술에 대한 활용방향 등 다양한 자문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전문기관의 전문가들을 연결시켜 사업에 필요한 정보 취득과 전문 기술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 최근 시작한 ‘가상현실을 통한 심리치료 방법’에 대한 연구 역시 서울여대 송현주 교수와 함께 진행중인데 이 역시 SOS1379의 도움으로 이뤄진 케이스다.
김대표는 “SOS1379는 창조경제타운 사업화 멘토링을 통한 인큐베이팅 아이디어 선정부터 인투넷미디어 연구소 설립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며, “덕분에 2018년에는 매출이 올해보다 10배 가량 높은 3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인력도 약 6명 정도를 더 채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인투넷미디어는 현재 일반 사용자를 위해 촬영한 영상 파일을 플랫폼에 업로드하면 기본적인 스티칭과 변환을 통해 다양한 매체에서 재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시스템을 제작중이다. 또 VRCH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용자가 가상현실을 보다 쉽게 이용하도록 가상 블로그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VR전용 채널링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360도로 촬영된 영상을 비롯해 일반적인 2D 영상을 업로드하면 스크린 VR이라는 자신만의 가상의 공간 안에서 업로드한 영상을 변환해 이용할 수 있다.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로 연동을 비롯, 공유를 통한 이용자간 교류가 가능하다. 모두 VR 생태계 구축을 위해 필요한 요소다.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으로 360 촬영이 아닌 스마트폰이나 DSLR만으로 촬영한 소스를 VR로 변환하는 기술입니다. 업로딩을 하는 순간 자동으로 VR 콘텐츠로 변환되고 예전 싸이월드 같은 미니홈피가 생성돼 그안에서 나만의 VR 콘텐츠를 액자처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은 지난 2016년 초에 특허출원해 올해 특허 등록을 마쳤다.
현재 직면한 국내 VR산업의 문제점도 토로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VR을 적용하는 것을 보면서부터 활용 매체는 열려있다고 생각했어요. 스마트폰 가격은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이미 VR장비로써 충분한 스펙을 보유했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죠.” 결국 지금까지 활성화가 안된 건 사용자 니즈와 산업계간 접점에 대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콘텐츠가 아직까지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이 부분은 제작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제작비가 많이 들 뿐더러 시장이 작다 보니 기존 제작사 역시 리스크 문제로 제작을 꺼리기 때문. 게다가 소비자는 여전히 VR에 대한 인식이 열려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결이 먼저냐’의 문제인 것.
결국은 경험의 문제다. 인터넷, 휴대폰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에게 VR은 장벽이 아니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신기하고 낯선 문물이다. 이런 장벽을 없애야만 관련 장비가 늘어나고, 시장이 열려 비로소 기업이 돈을 들여 콘텐츠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란 게 김 대표의 생각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지금 VR에 원하는 건 기존 2D 영상물처럼 연출자가 의도한대로 시청자가 보는게 아니라 예측이 불가능한 것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VOD는 타임라인이 직선이지만 VR은 원형으로 구성되는 선택형이 가능한 콘텐츠다. 하나의 콘텐츠로 경우에 따라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존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한 직진성 콘텐츠는 재방문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사용자 선택에 따라 앞으로 전개되는 시나리오가 바뀐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 넷플릭스는 이용자가 리모컨을 통해 극 전개를 결정하는 대화형 콘텐츠 계획을 밝힌바 있다. 이른바 양방향 콘텐츠다. 스토리라인에 위치한 몇개의 분기점에서 시청자의 결정에 따라 전개되는 시나리오나 결말이 바뀐다는 게 골자다.
김 대표는 IT 초기 산업을 떠올렸다. 누구나 무료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가상 공간인 미니홈피를 꾸미던 시절 말이다. 그때도 플랫폼 회사는 호스팅 비용과 서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도토리를 팔아 수익을 창출하던 시절이었다. 인투넷미디어가 꿈꾸는 VR세상도 이런 미니홈피였다. 단지 도토리를 팔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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