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사자성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해는 유독 다사다난이란 말을 빼곤 적당한 수식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17년 대한민국 국민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란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또한번의 대선으로 인해 달력에 표시된 지난 20일이 왜 빨간날인지 모르고 고개를 갸우뚱 거려야만했다. 그 여파는 비단 12월 달력뿐만이 아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던가. 새로운 정권에 발맞춰 신설된 부서와 인사 이동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것 또한 지난 2017년일 것이다.
이런 지난해를 되돌아 보고 마무리하자는 의미로 스타트업에서 일어난 국내외 이슈를 주요 산업 카테고리별로 되집어봤다. 그리고 추가로 2018년 전망도 조심스럽게 첨언했다.
◇ 비밀계좌의 나라에서 온 ‘크립토밸리’=국내 간편 결제 시장은 올해 10조원을 돌파했다. 전세계적으로는 무려 3조 달러가 넘는 핀테크 시장인 만큼 그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비대면 계좌 개설’ 이슈로 쟁점에 오른 로보어드바이저 분야 역시 내년에도 꾸준한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적인 금융권 시장의 벽을 어떻게 넘는지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핀테크 분야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인 대안을 위해 정부는 ICT융합, 신사업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도입하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스위스 주크(Zug)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전역으로 확장 중인 일명 크립토 밸리(Crypto Valley) 지역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다. 이곳에는 이더리움을 비롯해 비트코인 지갑 서비스 자포(Xapo) 등 다양한 기업이 포진 중이다. 가상화폐 관련 비즈니스 이외에도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 역시 유럽 전역을 통틀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다. 알파고로 AI 분야에서 한 몸에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는 딥마인드 역시 스위스 IDSIA 인공지능연구소 출신이 설립했다.
◇ 새로운 투자 대안 ICO=요즘 대한민국에서 ‘광풍’처럼 일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ICO(Initial Coin Offerings)이 직격탄을 맞은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정부 이미 ICO 형태의 투자자금 조달 방식을 금지시켰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비트코인에 대한 투기에만 관심이 쏠린 상태에서 무리한 ICO는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숙명인 ‘투자’ 관점에서 한번쯤 고민해 본다면 크라우드 펀딩 형식의 ICO가 적절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이 산재해 있다. 일단 가상화폐에 대한 미래 자체가 예측 불가능하다. 여전히 투기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잉된 시장과 인프라도 문제다.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잡게 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역시 알기 어렵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와중에도 비트코인은 폭락을 기록했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가상화폐가 지닌 잠재력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이 파생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중앙 집중적인 기존의 금융, 거래 모델이 진정한 P2P 거래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다. 화폐의 지난 4천년간 우리와 함께했고 현재의 금융 모델은 500여년 전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을 만큼 인류 역사와 함께 발달해왔다. ‘천지개벽’은 바로 이럴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런지.
◇ 너의 목소리가 보여. 히어러블=올해 인공지능 분야는 네이버 프렌즈, 카카오 미니, 구글 홈, 아마존 에코 등 이른바 ‘말귀를 알아듣는’ AI 스피커의 출시가 봇물을 이루던 한해였다.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한 포털에서 머신러닝을 끝내고 본격적인 딥러닝 과정으로 다음 수순을 밟아가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아직은 사용자도 ‘음악 틀어줘’ 이외엔 별다른 명령을 못하는 상황이지만 음성 인식 기술을 등에 엎은 인공지능 비서는 점차 ‘커맨드 앤 컨트롤’로 영역으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는 중이다. 단편적인 증거는 AI 스피커의 출하량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3분기 AI 스피커 시장은 지난해 같은 시기 보다 7배 증가한 740만대가 팔렸다. 구글과 아마존의 점유율이 9할을 넘기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그 중에서 아마존은 67%에 달한다. 모바일 시장에서 중원을 장악하던 구글 입장에선 아마존에 의해 졸지에 거실로 바뀌었다.
이제는 실제 사용자가 얼마나 똑똑하게 이 녀석들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성패가 좌우되는 시기다. 딥러닝은 사람이 직접해야 하는 영역이니까. 이제부터라도 더이상 ‘음악 틀어줘’ 같은 단순한 명령은 가급적 자제하자. 얘들은 점점 어렵게 말해야 더 똑똑해지도록 설계됐다.
무선 이어폰 시장 역시 심상치 않다. 시장조사기관인 SA는 2022년까지 다양한 기능으로 무장한 음향기기, ‘히어러블’ 시장이 매년 두배 성장을 이룰 것이라 전망했다. 구글의 픽셀 버드 (Pixel Buds)는 무려 40개 언어를 인식해 서로 다른 언어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네이버 역시 CES 2018을 통해 무선 이어폰 마스(MARS)를 출시한다. 네이버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크로바와 AI 통번역 서비스인 파파고를 내장한 무선 이어폰이다. 이를 통해 마스는 10개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한다. 인공지능과 실시간 번역을 등에 업고 히어러블 기기가 바벨탑을 무너뜨릴 날이 머지 않았다.
◇ 반려 로봇견의 부활. 아이보(Aibo)=인공지능과 로봇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로봇을 움직이기 위해선 다양한 센서 기술과 제어계측 관련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이를 통제하는 역할은 모두 인공지능의 몫이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인간과 근접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친구처럼 친근한 형태의 로봇이 훨씬 괴리가 덜하다. 인간에 가까운 행동을하는 휴머노이드는 우리에게 자꾸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게 해서다.
반려견은 이런 부분에서 꽤 적절한 대상이다. 실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과는 온도차가 있을 수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키우지 않거나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입장에선 매력적인 부분이다. 더구나 1인 가정의 증가와 고령화는 가정용 로봇 시장에 새로운 활력소임에 틀림없다. 12년만에 부활한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ERS-1000)가 이런 조건에 정확히 부합된 것. 아이보의 출시가 반가웠던건 비단 얼리어답터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보 출시 소식이 전해지자 소니의 주가는 9년 만에 11%나 폭등했다. 소니에서 공식 보도자료가 나오던 날 인스타에 적어둔 글을 옮겨 적는다.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가 12년만에 부활한다. 메모리스틱이 없이도 이제는 이름처럼 인공지능으로 주인에게 길들여진다. 19.8만엔이니 아이폰X 대신 사기에 적절한 대안이다. 게다가 병원에 데려 갈 일도. 미용을 시킬일도. 사료를 주거나 분뇨를 치울일도 없다. 무엇보다 주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일이 없다. 비견인인 필자 입장에선 이게 제일 맘에 든다. 헤어지는건 그 대상이 무엇이던 간에 쉽지 않은 일이다. 2시간동안 신나게 뛰어놀다 지치면 3시간 동안 충전독에 앉아 잠이 든다. 체중은 2.2kg. 굳이 체급을 나누자면 소형견이다. 기사는 안썼지만 아마 ‘우리개는 안 물어요’로 헤드라인을 잡았을거다. #ㅊㅅㅇ사라 #전용개뼈가3천엔> 기자는 결국 이렇게(!) 아이보 기사를 쓰고 말았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년은 개의 해다.
◇ 펀드 끝판왕, 비전펀드(Vision Fund)=비전펀드는 지난해 5월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만든 세계 최대규모의 벤처 투자 펀드다. 펀드 자금은 소프트뱅크가 운용사로 참여해 우선 280억 달러를 출자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애플, 폭스콘, 퀄컴 등의 투자자와 함께 930억 달러(약 100조원) 규모로 조성했다.
4차산업혁명을 이끌어갈 핵심 역량 분야가 주 투자 대상이며 펀드 발표 전날 실내 농장에서 수직으로 농산물을 재배하는 플렌티(Plenty)’, 자율주행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나우토(Nauto)’, 로봇 관련 개발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브레인(Brain)’에 투자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후 통신회사인 미국 스프린트, 로봇 기술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 등을 연이어 투자 중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거침없는 행보가 다소 리스크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발간하는 주간기술동향 1807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의 현재 부채가 12조 엔에 달하고 스프린트의 장기 부채도 320억 달러에 달하는 등 재무 리스크가 너무 큰편. 보다 큰 문제는 손정의 회장이 혁신적 기업가라기보다는 투자가로서 캐릭터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 비전 펀드의 자금 구조에도 드러나는데, 총 930억 달러 펀드 규모라고는 하지만 사우디 국부펀드와 애플 등 출자자들의 출자는 200억 달러에 불과하고 400억 달러는 이들이 매년 7%의 이자를 받고 펀드에 빌려주는 금액. 주요 출자자에게 펀드 수익을 배당 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해 비전 펀드가 이자 수익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 만일 투자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발생하는 이자 비용은 펀드의 운용사인 소프트뱅크에게 고스란히 돌아감.
손정의 회장이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살려 자본을 도구로 하여 본인의 숙원이라는 미래 기술 혁명을 실현할 것인지, 아니면 투자가로서 머니 게임에 매몰될 지는 오직 그 자신이 증명해야 할 일. 그 결과에 따라 소프트뱅크라는 대기업도 흥망을 달리 하게 될 것으로 보임”
최근 비전펀드의 시야에 들어온 스타트업은 ‘왜그랩스’란 곳으로 개 산책 앱 ‘왜그(Wag)!’의 제작사다. 왜그는 견주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산책을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중개 플랫폼으로 대신 자신의 개를 산책시킬 사람이나 약속 장소까지 안전하게 옮겨줄 사람 모두를 연결해 준다.
왜그랩스는 이 아이템 만으로 3년 만에 3억 달러 규모 투자 기회를 얻게됐다. 개 산책을 비롯한 팻팸 산업은 반려동물에게만 한해 700억 달러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미국인에게 유효한 비즈니스다. 고령화는 전세계적으로 부각되는 사회현상인 만큼 왜그 같은 관련 비즈니스는 2018년에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 헬스케어의 세분화, 펨테크(FemTech)=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에서 리아(Lia Diagnostics)라는 스타트업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리아는 생분해 종이로 만든 임신테스트기를 개발한 곳이다. 펨테크란 여성향 헬스케어에서 파생된 스타트업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재질의 임신테스트기는 지난 1987년에 첫선을 보였는데 당시 함께 등장한 제품이 휴대전화, 붐박스, 애플컴퓨터였다고. 함께 등장한 제품을 보고 있자니 무구한 역사(?)가 느껴질 정도다.
이 제품이 지닌 장점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임신테스트기로 알게된 여주인공은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는데…” 몰래 숨겼다가 다른 이에게 발각되면서 벌어지는 막장 시나리오도 불가능해졌다. 점점 드라마 작가만 먹고살기 힘들어지는듯하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안 변한건 딱 한가지. 임신일 경우 테스트기엔 2줄이 새겨진다는 사실 뿐이다.
◇ LTE 말고 5G=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차세대 통신망인 5G의 시대가 우리앞에 성큼 다가올 예정이다. 국내 이통사 3사는 평창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일단 속도는 기존 LTE보다 20배 빠르고 네트워크 지연 시간이 비약적으로 짧아졌다. 무엇보다 5G의 기술이 각광받는 이유는 단위 면적당 연결기기의 수가 제곱킬로미터당 100만대에 달하고 면적당 데이터 처리 용량 역시 제곱미터당 10Mbps에 달한다.
지금도 충분히 빠른데 과연 5G가 필요할까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적어도 국내에서 모바일 데이터를 느려서 못 쓰겠다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지연시간 감소와 넓은 데이터 대역폭은 자율주행차의 성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자율주행의 반응 속도는 데이터 처리와 비례하는 까닭에서다. 헬스케어 분야 역시 이런 혜택의 주요 수혜자다. 아직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원격 진료로 분야 역시 시간 지연이나 데이터 전송 속도로 발목을 잡혀왔다. IoT 기술을 필두로 초연결 시대와 당면한 상황에서 5G가 반드시 존재해야하는 이유다.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다. 모쪼록 2018년에도 파이팅 하시길. 기자도 더 열심히 듣고 여러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다. 머신러닝을 끝마치고 딥러닝에 들어가는 NPU의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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