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스타트업들의 성과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였다. 서비스 누적 거래액 100억 대를 넘는 스타트업이 여럿 등장했고, 몇백억 원 대 매출을 기록하는 스타트업도 늘어났다. 또 이름만 대면 아는 스타트업이 증가하는 등 스타트업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기업의 스타트업 대한 투자 인수, 합병 소식도 자주 들렸다.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지난 정부의 창업 우대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정부는 3년간 10조 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하고 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제 2의 벤처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낡은 규제를 개선하고 벤처지원 정책을 일원화하겠다는 등 구체적인 스타트업 지원 계획을 내놓으면서 스타트업 업계는 내심 내년을 기대하는 눈치다. 내년에는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대기업 투자, 인수, 합병 사례 증가 =올해는 투자,인수,합병 등으로 스타트업과 인연을 맺은 기업들이 눈에 띄게 증가한 해였다. 지난 9월 넥슨이 가상화폐거래소 코빗을 912억 5천만원의 거액을 투자해 인수한 것을 비롯해 11월 국내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플런티가 삼성전자에 인수됐다. 삼성전자는 사내밴처 씨랩을 운영하며 스타트업 육성해왔지만 국내 스타트업을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인수는 향후 출시될 음성인식 비서 빅스비 성능개선과 AI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다.
네이버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은 유독 컸다. 네이버는 기술 스타트업의 투자를 주도하는 네이버D2를 통해 공격적으로 AI, AR, VR, IoT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의 투자, 인수에 나서고 있다. 또 우아한형제들(350억), 메쉬코리아(240억),로플랫(30억) 등 에도 투자를 진행, 스타트업을 통한 미개발 분야 기술 보강과 인재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50억을 투자한 명함앱 리멤버를 인수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스타트업 인수 합병, 투자 사례 증가를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대기업 M&A 사례는 내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있다. 케이큐브벤처스 유승운 대표는 “내년에도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대기업 입장에서는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스타트업이 신사업 분야나 그들이 놓치던 영역을 커버하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향하는 스타트업↑= 얼마전 모바일용 채팅 API를 개발하는 센드버드가 실리콘밸리의 주요 투자사로부터 1600만 달러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 현지 유명 투자사로부터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로 국내 토종 기업도 충분히 해외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였다.
이밖에도 페이팔 등으로부터 55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간편 송금 비바리퍼블리카,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인도 전자결제사업자로 선정된 밸런스히어로, cbinsight가 선정한 100대 인공지능 서비스에 이름을 올린 루닛, 동남아 1위 뷰티 서비스 알테아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서비스들은 첨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국내에서 인지도와 기술을 확보한 기업들이 국내 시장 규모의 한계로 인해 사업 성장과 엑싯 가능성이 큰 해외로 진출하려는 의지가 커지고 있는 것과 맞물려있다. 아예 초기 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도 많아지고 있다. 언어능력을 보유한 유학생이나 2세들이 국내에서 창업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또 영미권 대신 상대적으로 시장진입이 수월한 동남아시아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증가 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해외지원 프로그램이 산업분야별로 다양화 되면서 해외 진출 기회 역시 확대되고 있다. 해외 유명액셀러레이터와 협력해 국내 스타트업의 현지 정착을 돕고, 해외 스타트업 컨퍼런스 참가 지원과 해외 투자자 만남 주선 등 선진 스타트업 생태계를 경험을 제공하고 있어 앞으로 해외 진출 성공 스타트업 사례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2018년 이 분야에 주목=국내외 투자자 10여명이 뽑은 내년 가장 주목할만한 기술 분야는 인공지능(AI)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블록체인, 빅데이터, 핀테크, 헬스케어, IoT, VR, AR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인공지능은 전 세계적인 메가트랜드 동시에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써 신규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로 평가 받고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업 전분야에 걸쳐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블록체인 기반의 스타트업도 계속 등장할 전망이다.
매쉬업엔젤스 이택경 대표는 “글로벌하게 2010년이후 많은 스타트업들이 출현했고 그중 일부 스타트업들은 유니콘이 되기도 했는데 이는 스마트폰의 대중화라는 빅트렌드에 기반한 경우가 많았다”며”향후 AI가 예전의 닷컴, 그리고 현재의 모바일에 이어 또 다른 빅트렌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구글/페이스북/네이버등 IT대기업들이 제너럴한 AI기술쪽을 리드해나가더라도 다양한 버티컬한 영역에서 스타트업에게 기회의 여지들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블럭체인은 마치 웹처럼 향후에 인터넷 기반기술중 하나가 될것으로 많이들 예상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2018년 투자 시장 맑음=내년 국내 투자 환경은 올해보다는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2016년부터 다소 보수적으로 변화한 국내 VC는 올해 역시 신중한 투자 전략을 펼쳤다. 야놀자(800억), 비바리퍼브리카(550억), 티몬(500억), 배달의민족 (350억) 등 이미 성공 가능성을 검증받은 기업에게만 대형 투자가 이뤄지면서 전체적인 투자 딜 수와 투자 금액은 줄어들었다. 내년에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가 많아지고, 추경으로 인한 투자 재원이 늘어나면서 올해와는 조금 다른 투자 분위기가 예상된다.
올해 중소기업벤처부가 액셀러레이터의 지위와 세제 혜택을 보장하는 등록제를 실시하면서 국내 액셀러레이터 수는 50곳 이상으로 폭팔적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초기 스타트업의 투자 기회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가 1조 4천억 원의 역대 최대 벤처펀드를 조성해 제 2의 벤처붐을 일으키겠다고 밝힌 바 있어 시중에 풍부한 투자 자금이 풀릴 예정이다.
보수적이였던 VC 역시 모태펀드 확장으로 투자재원이 증가하고 있고, 대기업의 M&A를 통한 엑싯과 IPO 기회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돼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경쟁을 치열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투자 시장은 올해와 같은 흐름이 예상된다. 실리콘밸리 기반 VC 굿워터캐피탈 에릭킴 대표는 “2017년은 전반적으로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된 해였다”며”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투자 분위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컨슈머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로써 특히 헬스케어와 웰니스 분야에서 큰 변곡점이 목격돼 내년에는 이 분야에서 고객 편의성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에 더욱 주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놓인 과제는?=정부는 지난 11월 혁신창업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스타트업을 얽매는 규제 개선과 벤처투자자금 확대를 통한 스타트업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4차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 벤처들의 성장을 돕기 위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 벤처 1세대인 장병규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혁신기업의 성장을 막는 규제에 대한 문제가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 스타트업 발전을 위해 열린 규제 토론회가 카쉐어링 서비스에 반대하는 택시업계 반발로 아수라장이 되면서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겼다. 또 며칠 전 4차산업혁명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된 규제 혁신 해커톤에서도 카쉐어링, 공인인증 폐지 문제 등 핵심 현안은 빠진 채 진행돼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인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등장할 기회를 규제들이 막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며”규제를 푼다고 기존 산업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데 인식 자체가 변하고,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지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3년간 10조이상의 벤처투자자금이 풀릴 예정이지만 정부의 과도한 자금 지원이 시장의 교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본엔젤스 전태연 이사는 지난 11월 열린 서울창업박람회 토크 콘서트에서 “풀리는 돈의 규모가 커지면 기업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고 부풀려질 요소가 커 투자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자금이 넘처나 검증되지 않은 기업에 투자하게 됨으로써 질 높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창업 정책을 민간 주도의 투자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중소기업벤처기업부 이옥형 창업생태계조성과장은 “정부 입장에서도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정부는 정부 나름의 역할을 하되 지원하는 방식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민간에서 니즈가 있고, 지속가능한 동력이 있는 곳에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부 사업 추진 방식을 바꾼다면 훨씬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창조경제혁신센터의 경우도 정부가 세세한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각 지역별, 센터별로 여건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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