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하반기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한 해가 뜨겁게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정립되지 않은 시장에서 투자자는 널뛰고 있는 가격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 1월 24일 평가사인 와이스레이팅스(Weiss Ratings)가 사상 처음으로 가상화폐에 등급을 매겼는데 한국 투자자는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가격하락을 야기할 것을 걱정해 해당 서버에 사이버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렇듯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가상화폐, 이렇듯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분별한 투기꾼으로 인한 가격 변동성도 한몫을 하지만 그 뒤에는 가상화폐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 과도기에 돌입한 가상화폐 시장=최근 가상화폐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지만 통합되지 않은 엇갈린 평가만이 존재한다. 당장 JTBC가 방영했던 ‘가상통화 긴급토론’만 봐도 블록체인은 4차산업혁명의 열쇠라는 입장과 닷컴 버블 때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견해가 양립했다. 진영마다 상반된 의견을 표명하면서 열띤 토론을 펼쳤지만 서로의 주장을 굽힐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양측의 엇갈린 평가는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다. 블록체인을 기술적으로 본다면 확실히 세상을 바꿀 패러다임이지만 반대 측이 제시하는 가상화폐의 거품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블록체인을 지탱하는 경제적인 인센티브인 가상화폐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 지금은 누가 맞고 틀리기를 판단하기에 앞서 득실의 적정선을 찾아 혁신을 막지 않는 선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 시장의 자유 vs 정부의 개입=블록체인 기술 중 가장 큰 장점인 탈중앙화는 반정부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고 이는 곧 규제로 직결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법안 발표를 수차례 번복하면서 가상화폐 가치 폭락을 일으켰고 많은 투자자의 원성을 산 경험이 있다. 초기 정부는 격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지 못하고 뒤떨어지는 듯했으나 다행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7일 ‘블록체인 산업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현재 세계 정상들은 가상화폐 투기 열기를 우려해 국가마다 적합한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이 시장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실 가상화폐에 대한 정의 규정부터 시작해서 세금 문제까지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닐뿐더러 더 큰 문제는 가상화폐가 지닌 특성에 있다.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법안은 혁신을 막게 될 것이고, 정부의 섣부른 개입은 자칫 국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 가상화폐의 정의=현재 뉴스와 미디어들은 가상화폐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다. 영문표기는 ‘cryptocurrency’다. 직역하면 암호화폐가 더 어울리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해 가상화폐, 가상통화 등으로 불리고 있다. 무분별하게 혼용되는 단어는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알트코인이나 토큰 등 외래어까지 함께 쓰여 일반인이 이해하는 데 더 어려움을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비트코인, 알트코인 혹은 토큰을 지칭할 때 가상화폐라는 단어를 쓰지만 블록체인을 이해하려면 일단 코인과 토큰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토큰은 ICO(Initial Coin Offering. IPO와 마찬가지로 가상화폐를 활용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방법)를 통해서 발행되며 토큰 발행자(dApp 개발자) 의도에 따라 특정 목적을 위해 쓰인다. 이때 dApp은 이더리움이나 웨이브와 같은 다른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상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용인(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있는 워터파크(dApp 1, 서비스 플랫폼)에 들어가기 전에 원화(이더)를 사용해 방수 팔찌(월렛, 지갑)에 워터파크 전용 돈(토큰)을 충전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워터파크에서 충전한 팔찌를 에버랜드(dApp 2)에서 사용할 수 없듯 각 토큰은 자기 플랫폼 안에서의 목적만을 수행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토큰이 dApp 안에서 이처럼 교환의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토큰은 발행자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주식처럼 회사의 지분을 나타낼 수도 있고 직접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질 수도 있다. 때로는 투표용으로 쓰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모든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도 있다.
- 가상화폐(크립토커런시)=비트코인, 알트코인, 토큰
-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에 코인이나 토큰들을 지칭. 이더리움이나 모네로 리플등은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알트코인의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음
- 코인=본인의 네트워크가 있음
- 토큰=다른 네트워크 안에서 상주함
◇ 무엇을 막고 무엇을 개방해야하나=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이하 SEC)는 다양한 가상화폐 상품에 대해 호위 테스트(Howey Test)를 적용해 증권으로 판별되면 규제하겠다는 방안을 갖고 있다. 참고로 호위 테스트란 1946년 SEC와 호위 소송에서 미연방대법원이 판결에 이용한 기준을 말한다. 내용은 일반 기업의 조달 자금을 위한 투자 계약으로서 타인의 노력 여하에 따른 미래수익을 기대하고 있는가로 축약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호위 테스트 적용 후 증권으로 판별되면 규제하겠다고 해도 보호 차원에서 자격을 가진 투자자에게만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한다면 플랫폼을 사용하고 싶은 일반인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화폐가 지닌 다양한 속성 중에서 어떤 부분이 법의 저촉을 덜 받게 될까? 많은 법조인은 유틸리티 토큰을 그 답으로 보고 있다.
유틸리티 토큰은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 중 오직 교환의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토큰을 지칭한다. 투자 목적이 아닌 서비스 사용 수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별 풍선, 도토리나 다른 게임머니와 동일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이런 산업에 속해있는 사업을 통틀어 DoS(Decentralization of Services)라고 칭한다. DoS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탈중앙화된 서비스로 중개인이 없는 서비스 플랫폼을 말한다.
DoS는 탈중앙화 서비스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P2P 기반 사업 모델은 사실 진정한 공유경제가 아니며 우버와 에어비앤비 같은 중앙화된 기업에게 막대한 이득이 가는 구조다. 유틸리티 토큰이 보편화된다면 진정한 공유경제가 가능해지고 더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17년 하반기에만 상반기 대비 6배 규모 자금이 ICO를 통해 투자됐고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가상화폐가 등장하고 있다. 코닥과 텔레그램처럼 글로벌 대기업이 직접 코인이나 토큰을 발행하는 예도 있고 도요타나 월마트와 같이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더 안전하고 투명한 사업을 구상 중인 곳도 있다. 현존 플레이어(Existing Player)와 새로 들어오는 참가자(New Entrants) 모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더 높은 가치를 주는 DoS 산업에 뛰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다가올 미래에 준비하는 자세=사기꾼과 투기꾼이 판을 치는 무법지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온전히 자라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킬러앱이 상용화되기 시작한다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편견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결국 시장은 적절한 규제 하에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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