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라는 씨앗을 개화시키기까지 꾸준히 생명의 물, 자금을 부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금난에 허덕이다 안정 궤도에 진입하기 전 무너지고 만다. 실리콘밸리의 고장인 미국에선 주요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투자받을 확률이 평균 1%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 과정이 얼마나 고될지 어림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직접 발품을 팔지 않고도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 세기의 관심사인 가상통화와 함께 수면에 떠오른 ICO(initial coin offering. 가상통화공개)가 바로 그 주인공. 현재 정부의 규제 강화와 연이은 하락 시장으로 인해 투기 열풍이 사그라지는 추세지만 ICO가 모은 투자액 규모는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을 유혹한다.
◇ 가상통화공개=ICO는 사업자가 가상통화를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모금 방식이다. 인터넷 불특정 다수에게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인 크라우드펀딩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투자금 규모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그 뿐 아니라 투자 유치가 완료되는 시간도 상당히 빠르다. 30초 만에 380억 원을 모은 브레이브소프트웨어 사례는 스타트업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론 ICO는 블록체인 생태계, 그러니까 가상통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법정 통화로 이뤄지고 실제 일정 지분에 대한 권한을 갖는 IPO와 달리 ICO는 기축 가상통화 그러니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투자로 이뤄지고 투자자는 이에 대한 대가로 해당 사업자가 새로 발행한 가상화폐를 받게 된다.
국가별 규정 차이는 있겠지만 가상통화는 법정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ICO에 참여한 투자자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실제로 ICO 대부분은 백서(White Paper, 사업 계획서)에 자신들의 자금 조달 행위에 대해 ‘Donation’이라고 명시한다. 현재 ICO가 활성화되면서 미국 같은 경우 적격 투자자 제도를 적용해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한국발 가상통화=지난해 9월 중국과 함께 우리 정부는 명칭이나 형식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ICO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준비 중이던 많은 ICO가 사업을 취소했다. 하지만 최근 우리(한국인)를 중심으로 한 ICO가 늘어나는 추세다.
위 가상통화 주체는 모두 한국인팀으로 이뤄져 있다. 스위스처럼 ICO가 자유로운 금융선진국에 법인을 세워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 섣부른 ICO 전면 금지와 함께 거래소 실명제까지 도입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국외로 유출되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ICO 금지는 4차산업혁명의 발전 속도를 역행하는 부분으로 우려스럽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한다.
◇ Do you need a blockchain?=앞서 밝혔듯 우리나라 사람도 외국에 법인을 세우는 식으로 ICO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섣부르게 뛰어들기 전에 자신의 사업이 정말 블록체인을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고민하길 바란다. 실제로 사업자 상당수가 가상통화 자금 조달을 위해 억지로 블록체인을 접목하기도 하는데 필요 없이 붙은 기술은 도태될 뿐이다.
최근 가상통화 규제의 쟁점과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금융위는 블록체인과 가상통화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ICO 허용 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규제의 일관성을 위해 ICO 금지에서 ICO 허용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국민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와는 반대로 한국 시장은 IT와 첨단 기술 수용에 항상 앞서 왔다. 가상통화에 대한 이해도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ICO가 허용된다면 국내에 있는 뛰어난 스타트업이 전 세계를 무대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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