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매년 주주에게 편지를 보낸다. 여기에는 아마존의 현재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이 담겼다. 그 뿐 아니라 매년 새로운 편지 외에도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1997년 처음 주주에게 보냈던 편지도 동봉한다. 그가 올해 주주에게 보낸 편지에선 아마존의 높은 기준(high standard)에 대한 리더십 원칙을 말한다.
◇ 고객 기대치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그는 먼저 56만 명이 넘는 아마존 직원을 대표해 주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한 뒤 미국과 영국 고객 만족도 지수, 해리스 폴 기업 연례 평판 지수 등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여러 설문 조사에서 나타난 고객의 호의적 평가에 감사를 표했다.
제프 베조스는 고객이 늘 불만을 느낀다는 건 큰 기회라면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태초부터 만족을 모르는 존재이며 이에 따라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더 효율적인 방식을 원한다는 것. 어제의 혁신은 오늘의 평범함이 된다. 그는 변화의 사이클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다며 이런 빠른 발전은 고객이 더 다양한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을 몇 번만 터치하면 몇 초 안에 제품 리뷰를 읽고 여러 업체 가격을 비교하고 상품 재고 유무나 배송 소요 기간, 픽업 가능 여부 등 원하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리테일 사업에 국한된 게 아니다. 고객 영향력과 힘이 커지는 현상은 아마존이 하는 모든 사업, 다른 모든 산업에서도 벌어진다. 따라서 현재 높은 위치에 있다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객 기대치를 계속 충족해야 하기 때문.
그렇다면 계속 높아지는 고객 기대치를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까. 왕도는 없다. 여러 방법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부분에서 “높은 기준(high standard)을 추구하는 것”이 큰 역할을 하는 건 확실하다고 말한다. 아마존은 지난 몇 년간 높은 고객 기대치를 효율적으로 충족해왔다. 하지만 이런 여정 속에서 수십억 달러가 넘는 큰 실패를 겪기도 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조직 내 높은 기준과 관련해 지금까지 아마존이 배운 교훈을 말한다.
◇ 높은 기준은 선천적인가 후천적 학습이 가능할까=그는 먼저 높은 기준이 선천적 요소인지 혹은 후천적으로 훈련 가능한 요소인지 말한다. 농구를 예로 들면 새 농구 선수를 뽑으면 여러 기술을 훈련시킬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키를 더 키우는 훈련을 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이미 높은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만 뽑아야 할까. 제프 베조스는 높은 기준은 가르쳐서 배울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높은 기준은 적절한 환경에 노출되면 쉽게 체득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기준으로 높게 잡는 수준 있는 팀에 투입하면 이런 환경에 재빨리 적응한다. 다시 말해 높은 기준은 전염성이 강한 요소인 것.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준을 낮게 잡는 문화가 팽배하면 이런 분위기는 삽시간에 회사 전체로 번진다. 기준이 높은 환경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높은 기준과 관련한 몇 가지 핵심 원칙을 파악하면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 높은 기준은 보편적 적용 가능한가=높은 기준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편적 요소인지 혹은 분야별로 다른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 분야에서 높은 기준을 체득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자동적으로 높은 기준을 만족하게 되느냐는 얘기다. 제프 베조스는 개인적으론 높은 기준은 분야별로 적용해야 하며 다른 분야에선 해당 분야에서 높은 기준을 성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은 초기에 투자와 고객 관리, 채용 분야에서 높은 기준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운영 과정 그러니까 해결된 문제 재발을 방지하거나 근본적인 결함을 제거하는 방법 혹은 프로세스를 검사하는 방법 등에선 높은 기준을 그다지 중요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베조스의 경우 동료를 스승 삼아 모든 분야에서 높은 기준을 배우고 개발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는 고객에게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면 이 부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자신이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제나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이다. 기준 수준이 높이는커녕 매주 낮거나 기준 자체가 아예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야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열린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 높은 기준 달성에 필요한 요소=특정 분야에서 높은 기준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뭘까. 첫째 해당 분야에서 높은 기준을 만족시킬 만큼 우수한 게 뭔지 알아볼 눈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뭐가 훌륭하고 뛰어난 것인지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높은 기준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업무 범위와 업무량을 예측하는 현실적 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2가지 예를 든다. 먼저 완벽한 물구나무 서기. 최근 친구가 보조 없이 완벽하게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벽에 기대지 않고 팔 힘만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몇 초 만에 내려오는 게 아니라 계속 서 있는 것.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딱 좋을 듯싶다. 친구는 요가 교실에서 물구나무서기 수업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연습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결국 전문 트레이너에게 강습을 받기로 했다(실제로 물구나무서기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첫 수업에서 트레이너는 좋은 조언을 해줬다. 그는 “대다수는 노력하기만 하면 2주 안에 물구나무서기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론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해야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2주 만에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는 조언이다.
2주라는 기간 그러니까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과 노력의 범위에 대해 현실적으로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준을 확립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든 팀 일원이든 높은 기준을 확립하려면 이에 필요한 업무 범위와 업무량을 현실적으로 예측해 사전에 관련자와 논의해야 한다. 트레이너가 물구나무를 서는데 얼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 예는 아마존의 독특한 회의 방식. 아마존에는 파워포인트 PT 대신 6페이지짜리 줄글을 정독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있다. 파워포인트를 비롯해 어떤 슬라이드 방식 PT도 진행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6페이지 서술형 문서를 쓰고 조용히 정독하는 것으로 모든 회의를 시작한다.
알다시피 글 수준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어떤 글은 아주 명확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탄탄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반대 글도 있다. 물구나무서기 사례에선 뭐가 높은 기준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물구나무서기를 잘하려면 필요한 요건을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 실제로 해내느냐 실패하느냐는 당사자에게 달렸지만 성공을 위해 뭘 해야 할지 인식하는 것 자체는 쉽다.
하지만 6페이지 문서의 경우엔 전혀 다르다. 훌륭한 글과 평범한 글의 차이는 물구나무서기보다 훨씬 모호하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세부 요건을 파악하는 건 까다롭다. 그런데 대부분 훌륭한 글을 읽는 사람의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딱 봐도 아는 것.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실상 높은 기준을 충족하는 좋은 글인지는 다들 알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문서를 쓰지 못하는 건 작성자가 무엇이 높은 기준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필요한 업무량을 잘못 예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높은 기준치를 만족하는 훌륭한 문서를 하루나 이틀 심지어 몇 시간 만에 작성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실제로는 일주일 이상 걸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좋은 글이란 여러 차례 퇴고를 거치고 동료와 함께 검토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 작성된 것이다. 검토 요청을 받은 동료는 업무 개선을 위해 며칠씩 시간을 내서 새로운 시각으로 글을 다시 편집한다. 이런 과정은 하루 이틀 새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훌륭한 문서를 작성하려면 일주일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시간과 노력의 범위를 주지시키는 것만으로도 결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높은 기준 달성에 뛰어난 능력은 필수일까=훌륭한 글을 작성하려면 작문 능력이 좋아야 할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량을 갖춘 사람만이 대단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엄청나게 뛰어난 역량이 높은 기준치를 맞추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일까. 베조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최소한 개인이 아닌 팀 차원에선 말이다.
팀을 이끄는 감독을 생각해보라. 축구 감독이 반드시 선수처럼 공을 잘 찰 필요는 없고 영화감독이 배우처럼 연기를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감독은 반드시 무엇이 좋은 슈팅과 좋은 연기인지 높은 기준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만큼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야 할지 현실적 범위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아마존의 6페이지 문서 예에서도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필요한 능력을 보유한 팀원이 있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모든 팀원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참고로 아마존에선 글 작성자명을 표기하지 않는다. 항상 팀 전체 성과로 간주한다.
◇ 높은 기준을 확립하면 어떤 걸 얻을까=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문화를 만들면 많은 이점이 있다. 회사가 높은 기준을 추구하면 고객에게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건 당연하다. 취업 선호도도 높아지며 직원 근속 기간도 길어진다. 그 뿐 아니라 누군가 칭찬과 격려를 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기준을 높이 세우고 이를 성취하려는 문화가 있는 회사에선 해도 티 안 나는 업무조차 자발적으로 해낸다. 진정한 프로가 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마지막으로 높은 기준을 추구하면 일이 즐거워진다. 높은 기준에 길들여지면 더 이상 기준치를 맞추기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높은 기준의 4가지 요소는 1) 후천적으로 훈련이 가능하고 2) 분야별로 적용해야 하며 3) 무엇이 높은 기준인지 인식해야 하고 4)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업무량을 명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조스는 아마존에선 모든 업무에 이 같은 요소를 적용한다고 말한다. 6페이지 문서 작성에서 새로운 사업 검토까지 이런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는 것이다. 제프 베조스의 편지 원문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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