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수업시간 내내 했던 일이라곤 책상을 쳐다보는 일이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이 윤지현 소보로 대표의 눈에 들어왔다. 포항공대 창의IT융합공학과 재학시절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 주제를 고민하던 차였다. 말소리를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번역하고 텍스트로 구현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하면 좋은 솔루션이 되지 않을까? 윤 대표는 청각장애인이 수업에 좀 더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솔루션을 떠올렸다. 소리를 보는 통로라는 뜻을 가진 ‘소보로’의 첫 시작이다.
◇말소리가 글자로 ‘소리를 보는 통로’=윤 대표는 팀원과 프로토타입 제작에 돌입했다. 강의 말소리를 블루투스 마이크로 전하면 소보로 소프트웨어 화면에 수업자료와 텍스트가 자막처럼 동시에 뜨는 형식이다. 프로토타입을 완성하고 본격적인 수요 조사에 나섰다. 윤 대표는 지역 농아인 협회, 대구대 등 대학 기관을 찾았다. 정말 필요한 서비스인지 확인하는 단계였다고 전한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이 수업에 참여하는데는 일정 부분 장벽이 존재했다.
속기사가 과목 일부를 필기로 제공하는 일부 대학을 빼면 주로 구화를 통해 수업에 참여했다. 학생 입장에서는 속기가 편하기만 시간과 비용 등 경제적인 여건상 속기사가 매 과목마다 투입되기는 어려웠다. 공백을 메우는 건 학생 필기 도우미였다. 하지만 전공과목에 따라 정확도 차이가 컸다. 이마저도 대학교에 한정되어 있는 지원이었다. 초중고의 경우 웹툰의 예처럼 구화로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윤 대표는 당시 사람들과 만나며 수업에서뿐 아니라 비용과 시공간적 제약을 떠나 전생애주기에 걸쳐 이용 가능한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강의, ARS 인증, 직무 등 생활 전반에서 쓰일 수 있는 소로보 기획 기반도 이 과정에서 힌트를 얻었다. 같은 해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는 우수상을 거머쥐며 사업화 가능성도 엿봤다. “프로젝트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서비스형태로 운영해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 30여 학점을 남긴 그는 휴학 신청을 했다.
서울로 올라온 윤 대표는 팀빌딩에 나섰다. 칠고초려 끝에 개발자를 영입했다. 윤 대표는 팀원이 추구하는 방향과 소보로의 비전을 함께 하는 것에 주력했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했다. 개발자를 설득하는데는 한달 정도 걸린 것 같다.” 프로젝트 당시 마케팅과 영업, 디자인 등 개발 이외의 모든 것을 도맡은 전천후 동기까지 팀에 합류했다. 현재 발음이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되는 핀마이크와 인터넷 강의로 사용 환경을 제약하고 서비스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강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베타서비스를 완료했다. 사용자 피드백을 묻자 갈 길이 멀다는 답이 돌아온다. 잘 쓰는 사람은 잘 쓰지만 체감 정확도에 따른 이용 편차가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용어 사전을 통해 전공별 단어 인식율을 높이고 있지만 결국 상용화까지는 정확도 개선은 과제로 남았다. 소보로가 밝힌 인식율은 80-90%다.윤 대표는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실제 사용에 이르기까지 정확도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라며 “서비스 완성도를 높이는데 끝까지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완과 공존…불편 해소가 먼저=소보로의 성격은 기존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대체재보다는 보완재에 가깝다. 윤 대표는 “수화가 편한 사람은 수화를, 문자가 편한 사람은 문자를 본다. 각자가 편한 방식을 따르게 맞다”고 말한다. 속기도 마찬가지다. 정확도를 우선시하는 기관업무에서는 속기가 더 안정적이라는 평이다. 다만 매 순간 속기가 함께할 수는 없다. 수업, 은행, 병원 등 일상 속에서 불현듯 불편은 찾아온다. 소보로는 그 틈을 메운다. 어느 한쪽에서 우위를 점하기보다 선택권을 하나 더하는 개념이다. 현재 소보로는 국립특수교육원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과 만나고 민관과 학교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표의 바람은 “청각장애인이 소보로를 통해 보다 편리한 배움과 소통을 실현하는 것, 그로인해 소통의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변화를 위한 새 여정은 5월 중 선보이는 통화형 애플리케이션부터 시작한다. ARS를 통한 은행인증 등 청각장애인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다. 나아가 관공서, 직무 교육 등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고 글로벌 무대에 소리를 보는 통로를 마련한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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