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라고 다 같은 맥주가 아니다. 만드는 이와 재료, 배합에 따라 각기 다른 맛과 향, 풍미가 느껴진다. 맛뿐이랴, 함께 하는 사람, 곁들임 음식에 따라 맥주를 기억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어떤 맥주를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맥주를 즐기는 경험은 풍성해진다.
오늘날 수제맥주가 각광받는 것도 이런 이유 중 하나다. 마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저마다의 특색에 맞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백여 개의 수제맥주 양조장이 다양한 입맛을 가진 애주가와 만나고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내륙에도 제주 문화를 전하고 있는 제주맥주도 그 중 하나.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 상륙 중인 제주맥주 권진주 마케팅 실장을 만나봤다.
◇제주, ‘경험과 소통’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부어라 마셔라’ 사람이 술을 마시는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문화 말고 맥주로 미식 문화를 말할 수는 없을까. 권 실장은 대기업 맥주 마케팅에서 근무하던 당시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엔 아직 맥주 본연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곳을 그리 많지 않았다. 권 실장은 “천편일률적인 맥주 말고 지역과 문화를 담은 맥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이가 있었다.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다. 외식사업 중 찾은 미국, 문 대표는 수제맥주 한 모금에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는 미국에서 하려던 비빔밥 사업 대신 수제맥주 문화를 한국에 들여와야겠다고 결심하는데 이르렀다. 원칙은 둘, 경험과 소통의 가치를 수한 가운데 둘 것, 다른 하나는 글로벌 무대에서도 뒤지지 않는 맥주를 만드는 것이었다. 문 대표는 2011년 수제맥주 제조에 뛰어들었다. 권 실장은 2015년 제주맥주에 합류해 힘을 보탰다.
문 대표가 정한 원칙이 실현될 수 있는 곳은 바로 제주. 제주도에는 매년 1,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었다. 제주다운, 제주를 담은 제주맥주를 경험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더구나 국내외 관광객과 도민이 어우러질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권 실장은 “여행지인 제주도에서 제주맥주를 만나고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가는 자연스러운 플로우를 만들고 싶었다”며 “제주의 산과 바다, 올레길을 즐기는 것처럼 맥주와 양조장을 즐기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제주에서 움튼 제주맥주, 이젠 미식문화로=“제주를 닮은, 제주를 담은 유일한 맥주, 제주와 함께 성장하고 좋은 맥주로 미식 문화를 창조한다” 준비기간만 5년, 제주맥주는 제조, 생산, 유통 과정에 제주만의 색을 온전히 담는데 주력했다. 첫 출시작은 2017년 탄생한 제주위트에일. 제주의 물과 유기농 감귤을 원료로 삼은 제주위트에일은 은은한 감귤향으로 제주를 담고 있다. 올해 8월 출시된 제주펠롱에일도 마찬가지. ‘펠롱’은 제주말로 반짝이라는 뜻으로 곶자왈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권 실장은 “두 맥주 모두 제주 향토 음식과의 페어링을 고려해 생산됐다”며 “레시피 구성부터 생산, 유통, 마케팅 단계까지 제주를 어떻게 담을지, 상생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맥주는 제주 내 한식당과 향토음식을 중심으로 우선 판매됐다. 본거지를 제주도 두고 있는 만큼 제주와의 상생에 주력한 것이다. 권 실장은 “제주맥주의 근간인 제주 로컬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판매 됐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제주에 대한 로망을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제주맥주는 제주에 가면 꼭 맛봐야 하는 맥주로 입소문이 났다. 제주맥주는 출시 3개월 만에 전국방방곡곡의 맥덕(맥주덕후)에겐 없어서 못 먹는 맥주가 됐다.
이후 제주 지역 마트와 내륙으로 판매경로가 확대됐다. 권 실장에 따르면 이 같은 유통방식은 제주맥주의 근간인 제주 로컬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수제맥주의 기본 철학 중 하나는 지역과의 상생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권 실장은 “제주도에서만 6개월 이상 유통하면서 제주도민, 제주 상권과 상생하는 것이 로컬 브랜드로서 꼭 지켜야할 철학이자 질적 측면에서도 더 큰 가치를 갖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제주를 방문하지 않은 맥덕에게는 아쉬운 소식일 수 있지만 8월에 출시된 제주펠롱 에일은 내년에 내륙에서야 만나볼 수 있다. 앞으로 생산하는 모든 신제품들도 같은 원칙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제주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로 성장할 것=제주맥주는 세계적인 양조장 뉴욕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아시아 첫 자매 양조장이기도 하다.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30여년 노하우로 세계 최다 수출국을 보유한 수제맥주사이자 무엇보다도 문화로 소통하며 소비자 경험을 가장 잘 만드는 양조장으로 손꼽힌다.
제주맥주가 브루클린 브루어리에 문을 두드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제주맥주에 제주의 문화를 담고 이를 세계로 알릴 수 있는 글로벌 파트너로 손색 없었다. 제주맥주 팀은 제주라는 섬의 매력과 한국 맥주 시장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현재양사는 지역과 문화, 경험, 좋은 맥주라는 중요하고 기본적인 가치들에 서로 깊이 공감하는 파트너를 유지하고 있다. 권 실장은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걸 배웠다”며 제주맥주 또한 제주의 정체성을 담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팁을 묻자 “맥주 스타일 별로 페어링을 추천하는 음식이나 음용을 권하는 온도 등은 있지만 모든 이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은 없다”고 전한다. 단 맥주를 마시는 장소, 기분, 사람, 상황 등 각자 가장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조건을 찾아가는 재미를 느껴보라”는 답이 돌아온다.
권 실장의 경우 같은 제주 위트 에일이라도 너무 차갑지 않은 온도의 맥주를 제주도 겨울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방어회에 같이 마실 때가 가장 맛있었다고 전한다. 저마다의 맛과 시간, 사람과 추억, 감성을 더한다면 단순히 마시는 맥주에서 나아가 ‘경험하는 맥주’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권 실장은 “제주를 닮은, 제주를 담은 맥주로 새로운 맥주 미식 문화를 만들 것”이라며 “맥주를 술이 아닌 음식으로, 일상에서 즐기는 하나의 놀이와 문화로 여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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