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단연 눈길을 끄는 핫키워드다. 물론 긍정적인 뜨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진행된 ICO 중 90%가 사기성이었다든지 실제 진행된 프로젝트가 미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쏟아지는 코인, 토큰만큼이나 여러 문제점이 이 초기 시장에 공생하고 있는 것.
이런 문제점을 왜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블록체인의 아름다운 부분만을 얘기할까. 에코버스(EcoVerse)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딜라이트체인 이영환 대표는 지나친 미화가 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블록체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 교수직 던지고 창업전선에 뛰어든 이유=“이런 고민을 하던 중 2014년에 니콜라스 콜트와(Nicolas T. Courtois)라는 교수가 영국에서 <크립토화폐의 자기파멸성에 관해서 On the longest chain rule and programmed self destruction of crypto currencies, 2014> 라는 논문을 보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블록체인이 자기파멸성을 갖고 있다는 논문을 보면서 자신과 똑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자기파멸성이란 말은 자기지속성의 반대말이다. 에코버스가 자기지속성(Self-Sustainability)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 단초를 이 지점에서 만나게 된 것.
이 대표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코인 대부분이 자기지속성에 대해선 거의 얘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는 걸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저 과거 디자인 패턴을 답습하고 있는 게 보였다고 말한다.
“조금 과장된 숫자로 지금까지 50만 종에 이르는 암호화폐가 설계됐다고 하는데 50만 개가 설계되면 뭐합니까? 과거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답습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자기파멸성을 해결하기 위한 혹은 자기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제를 푸는 코인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에코버스가 프로젝트가 시작한 이유다. 차의과대학교 대학원 부원장이던 그는 동료 교수들과 “블록체인 연구에서 자기지속성을 충족하는 블록체인을 해답으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다. 학교에서 실험실 창업을 허가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 대신 학교를 그만 두고 뜻을 함께 할 교수들과 창업 전선에 나섰다.
◇ 자기지속성을 위한 고민의 결과물=물론 이 대표의 프로젝트보다 먼저 설명이 필요한 건 블록체인의 자기지속성이다. 이와 관련해선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다. 누리엘 루비니라는 뉴욕대학교 경제학교수가 계속해서 비트코인이 사기라면서 “비트코인은 제로(0)로 갈 것”이라고 비판하고 암호화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주장이 나오면 보통 외면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되려 거든다. 루비니 교수가 말하는 건 내개가치라는 게 없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랴는 생각에서다. “사실 내재가치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게 실제로 끝까지 지속 가능할 거이냐는 문제죠. 지금 있는 게 완전히 가치가 제로로 변해버리는 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루비니 교수의 말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제로로 될 확률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고 제로로 변할 거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로로 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런던대학 니콜라스 콜트와 교수가 말한 것처럼 자기파멸성을 갖는 코인으로선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라면서 이런 맥락에서 만일 자기파멸성을 갖는다면 가치가 제로로 될 것이라는 비판을 수긍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판을 수긍하면 이제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자. 이제 진짜 질문을 해볼 차례다. “그러면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언제까지 가치를 갖는 코인일까?”
이 대표는 출발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출발점에선 자기지속성을 갖고 절대로 가치가 제로로 되지 않는 코인이 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을 하자는 말입니다.”
시작이 왜 중요할까. “제로가 안 되려면 생각해보세요. 매일 쓰는 신용카드 같은 건 그냥 플라스틱입니다. 플라스틱이 쓸모없어지는 건 언제입니까? 우리가 안 쓰면 쓸모가 없어지는 거죠. 기술적으로 우리가 쓸 수 있게 안 만들어준다고 하면 이건 쓸모없는 코인이고 자기파멸성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당연한 듯싶지만 신용카드처럼 일상에서 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걸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많은 이들이 수많은 코인의 확장성 문제를 말하지만 어떤 것이든지 앞선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다 부분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에코버스 프로젝트는 기술적으로 매일 일상에서 사용하려면 어떤 기술적 속성을 지녀야 하냐는 걸 물어보는 것이다.
실제 유통 중인 코인으로 예를 들어보자. 사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경우 경우 부의 분배가 지니계수로 따지면 0.99를 넘는다. 지니계수가 0.99를 넘는다는 것은 완전 불평등에 가깝다는 뜻이다. 완전불평등일 때 지니계수는 1이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소득불평등 계수, 지니계수로 따져서 0.99. 주조로 발생하는 모든 부는 100명 중 1명이 다 가져간다는 얘기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대명제를 놓고 생각해보면 이런 네트워크는 치명적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요. 그런데 100명이 노동했는데 생성된 소득을 1명이 가져가고 99명이 아무 것도 못 가져간다는 걸 99명이 알게 된다면? 이들은 다시는 네트워크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포기되고 버려지면 이 네트워크는 자기파멸성을 갖게 된다.
이 대표는 비트코인보다 이더리움은 불평등성이 더 심하다고 말한다. 이오스 등 다른 코인으로 가면 부의 불평등 정도는 더 심해진다. 이는 치명적이다. 1명이 주조 이익을 다 가져가고 나머지 99명은 이 1명에게 코인을 사야 한다면? 사고 난 다음에는 이 코인이 오르기만 기다려야 한다. 이럴 경우 99명이 계속 코인을 사면서 서로 코인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거래를 하려고 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자기파멸성이 있다.
이 대표는 지금껏 코인을 설계해온 이들이 매커니즘 설계를 모른 채 설계해 이런 문제를 안게 됐다고 말한다. 자기파멸성은 있고 자기지속성은 없다는 얘기다.
◇ 자기지속성의 2가지 조건=그렇다면 에코버스는 어떻게 자기지속성을 담보하고 있을까. 자기지속성을 제공하려면 플랫폼은 2가지 속성이 만족해야 한다. 첫 번째 속성은 자발적 참여, 두 번째는 인센티브 합치성이라는 얘기다.
이 대표는 이 2가지 기본 속성을 만족시키려고 인센티브 합치성이라는 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다 다른 인센티브를 줘야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코인이 제공하는 인센티브는 단 하나 밖에 없다. 경제적인 인센티브다. 에코버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다른 걸로 전환해서 다른 것으로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욕구가 필요한”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론식 인센티브를 플랫폼에 장착하기는 사실 굉장히 거칠고 어려운 일이다. 이 대표는 좀 더 나은 이론을 찾다가 2000년 이후 사회심리학에 도입된 소용돌이역학(spiral dynamics) 이론을 플랫폼에 넣기로 했다. 사회심리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한 인센티브를 설계한 것이다.
보통 인센티브를 설계하면 댑(dApp)이 들어와 해당 인센티브 매커니즘을 이용하게 된다. 모두 한쪽으로만 달리면 사실 1등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모두 다 자기 방향으로, 자기 욕구 방향대로 달리면 자기가 늘 1등을 한다. 이런 욕구를 지닌 댑이 에코버스의 메인넷에 올라오면 참여자는 모두 자기만족감을 가져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인센티브까지 최대한 확보한다면 지속 가능한 걸 만들어줄 수 있다. 디자인에서 말하는 인센티브 합치성이 충족된다는 얘기다.
인센티브가 충족되면 참여자는 저절로 자발적 참여를 하게 된다. 이 대표는 이런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에코버스 네트워크는 지금껏 나온 50만 개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안정적이면서 가장 탄탄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에코버스는 이 같은 프로젝트를 미국 시장에 들고 가 ‘맞짱’을 뜨고 있다. 10월 24일부터 미국 보스턴과 뉴욕, 샌프란시스코, LA 등 4대 도시를 돌면서 20개 가량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경연을 펼치는 스타트업배틀(Startup Battles)에 참여하는 것.
이 행사는 스타트업끼리 아이디어를 겨루면서 누구 아이디어가 좋은지 4번에 걸쳐 경연한다. 이 대표는 이 경연을 통해 에코버스가 갖고 있는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오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코인보다 에코버스가 훨씬 더 좋다는 것. 그리고 이걸 우리가 디자인했으니 전 세계에서 알아달라고 호소하려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이상적으로 보자면 스타트업배틀에서 우승하기를 바라지만 행여 우승을 못하더라도 에코버스를 알릴 기회가 되는 한편 무엇보다 가치를 알릴 기회는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멘트에도 힘이 실렸다. “에코버스는 거의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코인이, 블록체인 메인넷이 이런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한 시스템이 되겠죠. 에코버스 시스템이 바로 그런 시스템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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