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런게 다있나 싶었다.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오덕후(오타쿠)의 삶이 멋있어 보이더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게 쉬운일은 아니잖나. 적당히 학교도 나와야 하고 남부끄럽지 않은 직장도 가져야하고… 그래서 해보고 싶었다. 덕후들을 위한 서비스를” 오덕후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고 밝힌 김수은 라인업 공동대표는 덕후의,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서비스를 내놨다. 덕질 콘텐츠를 자유롭게 공유하고 창작 수익을 보상받는 서비스 ‘라인업’이다.
라인업은 쉽게 말해 덕질로 경제적 수익을 얻는 블록체인 기반 디앱이다. 인스타처럼 구성된 sns에 자신이 창작한 이미지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좋아요’ 수만큼 암호화폐로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자신이 그린 작품 사진은 물론 피규어 리터칭 콘텐츠 등 덕질에 관한 모든 이미지를 올릴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 팔로잉하고 지속적으로 작품을 받아볼 수도 있다. 현재 보상은 마일리지와 스팀화폐로 실현하고 있다. 마일리지는 추후 추가되는 토큰으로 변환할 수 있다.
김 대표가 밝힌 라인업의 강점은 덕후 친화적 인터페이스다. 사용하는 언어나 연령에 관계없이 사용자들이 알아서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일반적으로 편하다고 생각하는 UI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른 방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덕후들만이 느끼는 무언가가 있다”고 답한다. 덕후의 감성을 UI에 녹여내는 건 이미호 라인업 공동대표의 몫이다. 이 대표는 인생의 반을 덕질로 보내온 ‘만렙 덕후’다. 동인지 작가로 활동하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했을만큼 ‘후조시(여자 오타쿠를 뜻하는 말로 일본에서는 서브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문화에 정통하다. 덕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서비스앞 단에서 가장 먼저 잡아내고 있다.
살면서 스스로가 덕후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던 김 대표를 덕후의 길로 안내한 것도 이 대표다. 둘은 이 대표가 캡슐코퍼레이션을 운영하고 있을 당시 대표와 개발자로 인연을 맺었다. 캡슐코퍼레이션이 마케터를 뽑는 공고에 개발자인 김 대표가 메시지를 보낸 것. 김 대표에게 먼저 연락을 한 이유를 묻자 “재밌어보여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시 김 대표는 대기업에서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6시면 퇴근하는 일상이 지루했다고 기억했다. 이전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시간을 빼곡하게 보내는데 익숙해져있었다.
재밌어 보여서 간간히 합류한 덕질 서비스를 블록체인 위에 올린 건 아쉬움이 남아서다. 당시 캡슐코퍼레이션은 오덕(오타쿠) 판 레진코믹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동인지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고 작가에게 정당한 보상을 돌려주는 플랫폼이었다. MAU 기준 20만을 찍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았지만 애초 취지대로 작가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았다. 중개수수료 벽이 너무 높았다. 작가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는 체제를 갖추려고 했지만 사용동기가 부족했다. 앱스토어나 구글스토어에서는 30%의 수수료를 물어야했다. 과도한 수수료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법인을 세우고 페이팔 결제 시스템을 차용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환전, 송금 수수료, 부가세를 떼고 나면 앱스토어나 구글스토어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김 대표는 “복제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온라인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실익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인기있는 작가들은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 보고 있었다. 수수료를 없앤 정당한 보상체제, 복제, 무단 사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라인업을 선보인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거의 매주 아키텍처를 짜면서 준비했다”며 “이 대표가 건네 준 정보를 통해 덕후감성을 이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 9월 법인 설립 이후 베타서비스를 공개한 건 8월, 이용자들이 알음알음 모여들었다. 라인업 관련 리트윗만 1만 2,000여건, 안드로이드 기준 1,500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라인업은 현재 한 피드당 이미지를 한장씩 볼 수 있지만 30장까지 늘리고 컷툰 형태로 만화형태로 볼 수 있도록 구축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이 안에서 작품을 공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번역 등 필요한 작업을 함께하고 기여도만큼 수익을 배분하는 형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내년부터는 IP마켓도 도입한다. 공동창작물에 대한 캐릭터 IP 거래는 물론 덕후가 보유한 전문가급 지식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캐(자작캐릭터의 준말)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소설을 예로 들었다. 릴레이 소설은 발기인이 세계관을 구축하고 여기에 참여할 구성원을 모으면 각자가 자신이 만든 캐릭터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많게는 30명이 짜임새있는 스토리를 펼쳐나가고 하나의 그래픽노블로 완성된다. 이들 각각의 캐릭터는 IP마켓을 통해 더 다양한 곳에서 쓰일 수 있다. 추후 검증된 캐릭터, 웹소설이 드라마나 영화 판권으로 판매되는 방식도 염두에 두고 있다. 두 대표가 그리는 이른바 ‘덕후들의 나라, 덕후친화 플랫폼’은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될 예정이다.
토큰이코노미와 블록체인 댑, 요즘 화두로 떠오른 단어를 총망라한 서비스지만 김 대표는 따로 토큰을 발행하거나 메인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오히려 토큰을 보유한 메인넷이 라인업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테스트베드로 활용될만큼 확실한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iOS 버전이 공개되면 최소 3,000명의 사용자가 모여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마트컨트랙트와 월렛, 토큰 관련 백엔드 파트너사를 찾고 라인업은 라인업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계획” 라인업은 iOS 버전 공개를 통해 사용자를 모집하고 일본, 동아시아 지역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에 있는 작가만 해도 12만명, 전 세계로 8,000만명이 라인업의 잠재고객”이라며 “라인업을 통해 덕후가 덕질로 돈버는 세상을 실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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