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장애인 처음 본다고요? ‘어뮤즈트래블’

“삶을 마감하고 싶었는데 여행을 다녀온 이후 또 다시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삶을 지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뮤즈트래블과 함께 다녀온 고객이 전한 후기 중 하나다. 어뮤즈트래블은 장애인과 노인에게 편리한 여행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시각 장애인을 위한 여행상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70% 정도가 지체장애인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어뮤즈트래블이 2016년 10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의 모델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모토는 ‘장애인 여행의 에어비앤비’ 오 대표는 “B2C 플랫폼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 멋도 모르게 뛰어들었다”고 기억했다. 그 이후의 사정은 생각처럼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오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쫄딱 망했다’
오 대표는 “여행업에 대해 모르고 접근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장애인 여행사로 보면 경쟁사는 없었지만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인프라 확보는 물론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에 있다고 하기 어려웠다. B2C를 고집하기엔 성공확률은 커녕 생존도 담보할 수 없었다. 시기적으로 장애인 여행 시장이 아직 열리지 않은 것도 요인이었다. 지난해 중순까지 고군분투하던 어뮤즈트래블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뮤즈트래블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오 대표는 B2G 중심의 용역사업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관을 통해 여행객을 받는 모델이다. 이미 장애인 여행은 시뮬레이션 해봤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쌓였다. 여행지 접근성이나 장애인 이해도가 있었다. 맨바닥부터 시작하기보다 잘 하는 것부터 다시 쌓아간다는 구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숙박, 식당, 교통 등 인프라 확보가 우선이었다.
오 대표는 “공급자를 우리쪽으로 설득시켜야 하는데 경제적인 보상이 없으면 설득이 어려웠다. 용역단위 사업을 따내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라며 “사업 수행과 인프라 확보가 동시에 가능한 구조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전했다. 어뮤즈트래블은 항공, 리조트, 교통 모두 일부에 집중 공략하며 파트너사에 확실한 수익을 보장했다. 결과적으로 사업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오 대표는 “다행히 마음이 열렸고 경쟁력있는 가격으로 장애인 인프라를 단독으로 공급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안정적으로 인프라를 확보하게 되면서 현장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오 대표가 본 변화는 파트너사가 여행객을 장애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고객으로 본다는 점이다. 같은 선상에서 고객의 불편요소를 줄여나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오 대표는 “초반에 여행을 다닐 때만 해도 휠체어로 이동할 때 턱이 망가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턱을 없애는 방향으로 변한다. 화장실에도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선반을 놓아주는 등의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 확보와 함께 장애인 여행 확산도 현재진행형이다. 오 대표가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건 계속 시도해야 한다는 것. 오 대표는 체감 상 지난해와 올해 덕수궁을 찾는 장애인이 늘어난 것을 느낀다고 전한다. 계속 다니기 시작하면 또 다른 누군가도 여행을 시도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덩달아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한다.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에서 여행을 온 관광객이라는 관점이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 대표는 “2017년 처음 여행을 갈 때만 의아하게 보거나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꾸준히 여행지를 방문하니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휠체어를 타고 관광을 해도 신경쓰지 않는 다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눈에 보이는 변화가 일어난다. 오 대표의 말대로 장애인이 자주 찾는 여행지에 어느샌가 장애인 화장실이 생겼다. 오르막길에는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평지가 생겨났다.
오 대표는 이런 변화에 대해 “억지로 만든 변화가 아니라 맞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라고 짚었다. 여행을 계기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사업주와 고객 입장에서 보면 서로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니 자연스레 변화가 일어난다. 이를테면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수익을 올리고 여행객은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여행을 통해 이뤄진다. 오 대표는 “어뮤즈트래블은 이 과정에서 중간자 입장에서 서로의 요구를 해결하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끄는 역할”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여행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여행업의 발전 수순과 모습이 같다. 단지 시차가 있을 뿐” 올림픽 이후 외국여행 금지법이 해지된 이후 여행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오 대표는 여행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기 이전 패키지 상품 중심이 커졌고 지금은 자유여행 시장이 덩치를 불려나가듯 장애인 여행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단체 패키지 여행 중심이지만 분명 자유여행 시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 디지털 정보화 시대,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예전 여행 사업 발전보다 시간은 더 단축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다시 생존의 문제로 돌아온다. 인프라를 확보하면서 커질 수는 있지만 대기업이나 자본이 개입하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고유가치를 키워나가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어뮤즈트래블은 지난해 위기를 돌파할 때도 그렇듯 그들의 강점에서 해법을 찾았다. 휠체어 네비게이션 앱을 선보이는 것이다. 오 대표는 “장애인 여행지, 이동정보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며 개발 배경을 밝혔다. 어뮤즈트래블은 현재 지도 서비스에 들어갈 턱없는 도로, 엘리베이터, 장애인 화장실 등 관련 데이터를 9만건 가량 확보하고 자동 데이터 수집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 장애인 여행 1위가 일본이다. 해외 컨퍼런스에 가봐도 일본을 거치는 크루즈 여행은 있지만 부산을 들르지 않는다. 한국은 여행이 안된다고 알고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프라 확보가 어렵지만 해볼 수 있는 건 해보고 싶다” 내년에는 해외 관광객 유치에도 발벗고 나선다. 한국도 충분히 장애인 여행 붐업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마련된 기존 관광상품은 강원도, 제주도 지역으로 늘려갈 예정이다. 어뮤즈트래블 자체 상품 외 크라우드펀딩 모델 추가도 염두에 두고 있다. 원하는 여행지를 신청하면 가격 정책을 고려해 가능한 최소 인원이 정해지고 100%가 달성되면 떠나는 여행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떠나는 일종의 패키지 여행이다. 오 대표는 “이동이나 세부 여행지 선택에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불편을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며 최대한 함께 갈 수 있는 곳가지 가볼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늘어나는 상품 수 만큼 장애인의 삶의 범위도 확대될 것으로 본다. 오 대표는 “그동안 집밖으로 나오는 것이 도전이었다면 여행을 매개로 삶의 보폭을 확대하길 바란다”며 “내년에는 서울, 경기를 넘어 강원도 등 발길이 닿는 곳에서 여행하는 장애인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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