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세요, 해외에는 무한한 기회가 있는데 왜 대한민국에 있나요?” 송보희 한국청년정책학회장이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 임원에게 들은 답변이다. 송 학회장이 4차 산업혁명시대, 신기술 기반 청년 스타트업이 각종 규제에 막혀 성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며 필요한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였다. 답을 들은 송 학회장은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기억했다.
송 학회장은 1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혁신성장과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공유하며 “혁신하고자 도전하는 청년은 규제에 가로막혀 좌절하고 꿈을 펼치기도 전에 삶의 한도를 정한다”며 “2019년 규제개혁은 파괴적이고 거침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규제학회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과 대한상공회의소,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4차 산업혁명기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대토론회는 학계와 연구계, 업계 전문가, 소비자, 청년이 한데 모여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현실을 살피고 혁신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규제개혁을 강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에 앞서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의 현실’을 주제로 한 발제가 이어졌다. 곽노성 한양대 교수는 혁신성장과 규제개혁-방향과 원칙을 주제를 통해 “선 허용 후 규제 원칙이 절실하다”며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과제의 실패를 답습할 우려가 큰 만큼 총리가 직접 제도를 운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고시와 행정지침을 인정하는 현행 시스템은 법치주의 근본을 훼손할뿐 아니라 공무원조차 규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을 조장한다”며 “고시 시행규칙화를 통해 규제 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4차산업혁명기 규제개혁 정치경제학을 논하며 “4차 산업혁명기에 부응하는 경제사회전략차원에서 규제개혁프로그램의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신뢰에 기반 한 자기 책임주의와 사후 처벌 방식 도입, 부작용에 즉각 반응하는 센싱 기능과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효율적인 대응방안, 객관적 분석에 기반 한 정보 생산, 제공 등을 정부 혁신과제로 제시했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디지털 경제 시대 국부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플랫폼 기업을 우선 육성할 수 있도록 규제혁신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며 “혁신스타트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 규제정책부터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회와 정부의 규제청책은 2019년 2월 기준 500여 건에 달한다. 구 변호사는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마련된 법령이지만 실제로는 법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다”며 “관련 분야를 진작하기 위한 법안이라면 잘된 기업이 500여개가 나와야하지만 우리나라 유니콘은 이제 6곳”이라고 꼬집었다.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방략토론회에는 이민화 KCERN 이사장을 좌장으로 강영철 전 규제조정실장, 송보희 한국청년정책학회장,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 이광호 STEPI 연구위원, 이은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이정민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 정다운 매니페스토청년협동조합 대표가 참여했다.
이정민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카풀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 규제 한계와 해결 방안을 발표했다. 카카오 모빌리티 카풀 서비스는 여객자동운수사업법 81조 1항 예외조항을 근거로 태동한 이후 카풀 스타트업 럭시 인수, 시범 서비스 개시를 거치며 혁신에 시동을 걸었지만 택시업계와의 마찰로 사실상 성장 동력을 잃은 상태다. 급기야 작년 11월, 가풀 서비스 근거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일부 국회의원에 의해 상정됐다.
이 부소장은 “근거조항 삭제가 4차 산업혁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사실 주목해야 할 건 법안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법안은 1년 중 발의가 이뤄지는 수많은 법안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부소장은 “집중해야 할 건 카풀 서비스에서 볼 수 있듯 전통과 혁신산업의 충돌이 시작됐다는 것”이라고 환기했다. 기존 산업과 새로운 산업 간의 충돌 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풀 사례를 두고 이 부소장은 “정부의 역할, 방향성, 중재자, 공론장도 없는 사회의 단면”이라며 “한국은 공유경제의 갈라파고스”라고 빗댔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권부터 현재까지 세 정권 모두 규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며 “혁신적이지 않은 관료집단에 혁신의 키를 주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상 정부에서 제정한 행정규제기본법이 1998년 김대중 정부에 발효됐다. 그 후로 20년 간 매 정부가 규제개혁을 말한다. 무려 20년이나 왜 계속 규제 개혁을 말하는 걸까. 규제 개혁의 목표를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강영철 전 규제조정실장은 규제개혁을 5년 단임정부의 안건으로 내세울 때 왜곡된다고 분석했다. 강 전 실장은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주도로 산업발전이 이뤄져 혁신성장의 주체가 국가권력에 있는 것”이라며 “민간 주도의 경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 같은 전환이 곧 규제개혁”이라고 설명했다.
강 전 실장의 대안은 모든 법령을 다시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경제의 성장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 3년 안에 현존하는 5,189의 법령을 검토하고 혁신에 걸맞게 다시 쓰자는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강 전 실장은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의 행정명령 13653에 적시한 규제의 일반원칙(General Principle of Regulation)을 참고하길 권했다. 규제는 ‘활용가능한 최선의 과학’에 기초하되 시스템은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것이 골자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는 보장돼야 하며 의견 교환이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또 규제의 목적 달성을 위해 최선의, 가장 혁신적이고 비용부담이 적은 방법을 택해야 한다.
강 전 실장은 한국 규제현실을 감안한 한국적 규제정비 일반원칙을 제안했다. 국제 기준에 따라 규제 최소성의 원칙을 지키되 규제과학주의에 입각해 검증하고 네거티브 방식으로 법령을 기술하는 것이다. 또 복합다부처로 이뤄지던 규제개혁을 국무총리실로 일원화시키고 총리의 권능으로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위원회도 총리소속 행정위원회로 위상과 조직을 확대하고 예산을 충분히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좌장을 맡은 이민화 KCERN 이사장은 발표자와 토론자 그리고 과학기술계 학계 및 산업계의 발표 및 토론을 종합하며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10대원칙을 선언했다. 규제개혁 10대 과제는 다음과 같다.
< 규제개혁 대토론회 선언문: 규제개혁 10대과제 >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큰 물결 아래 산업·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대변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서의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은 국가경쟁력 저하와 저성장 고착화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반에 걸친 복잡다난한 규제환경과 규제문제 해결의 구조적 한계성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 저하는 물론, 우리경제 본연의 역동성을 급격히 상실하고 있다.
이에 우리 학계·과학기술계·산업계는 규제의 근본적 개혁이 국가적 위기돌파와 혁신성장의 요체임을 인식하고, 규제개혁을 위한 10대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기술개발예산의 1%를 규제개혁예산으로 하고, 규제개혁위원회를 공정위 수준으로 실질적인 규제개혁당국 수립
- 위헌 소지가 크고 방만하게 운영되는 고시 등 하위 행정규정의 법령화를 통해 규제 법률주의 확립
- 각종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진흥법 폐기를 통해 민간주도의 경쟁 촉진
- 정관산 연합의 규제 기득권에 맞설 진정한 시민파워 구축과 규제이력 확인이 가능한 수요자 중심 정보 공개 시스템 구축
- 국회의 과잉법률 양산을 막을 산업분야별, 기업 규모별, 규제 총영향평가 제도 도입
- 금지규정의 포괄적 예외조항인 ‘기타, 그 밖의, 등’ 문구를 전체 법령에서 삭제하는 로드맵 구축
- 안전, 재난에 대한 본질적, 과학적 연구 강화로 실효성 있는 규제 도입
- 모든 부문에서 [사전 허용 후 규제검토] 도입의 원칙이 적용되고, 특히 신산업에 대하여는 보다 광범위하고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사전허용원칙] 채택
- 규제의 비용과 편익의 합리적이며 투명한 논쟁을 이끌 인공지능 규제영향평가 도입
- 우리 기업만 차별하는 갈라파고스 규제 전면 폐기 및 글로벌 생태계에 부합하도록 기존 규제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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