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마스크팩, 과일, 야채, 조각 과일, 대용량 제품을 소분해놓은 제품부터 구매대행 물품까지..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슈퍼마켓이 아니다. 24시간 운영되고 있지만 편의점도 아니다. 생필품부터 신선, 생활용품을 망라한 제품 2,500개가 구비돼있다. 쉴 새 없이 주문 완료 방송이 울려 퍼지지만 현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없다. 이곳은 온라인 주문 고객을 위한 공간, 나우픽 강남 센터다.
나우픽은 365일 24시간 필요한 물건을 배달해주는 온라인 쇼핑 서비스를 지향한다. 지역 센터를 기준으로 주문 가능한 상품이 표시되고 원하는 상품을 골라 주문하는 컨셉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센터로 전달되고 센터에서 물건 포장, 배송이 진행된다. 배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20분 내외다. 오프라인 물류 공간은 온라인 고객만을 위해 존재한다. 송재철 나우픽 대표는 “고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동화를 통해 고객에게 밀착하는 고스트 스토어, 다크스토어로 이해하면 쉽다”고 소개했다.
강남 한복판을 물류센터를 두고 있지만 부담이 덜한 것도 이런 이유다. 눈이 띌 필요가 없으니 여타 오프라인 매장처럼 유지, 관리비가 상대적으로 적다. 물류 창고 형식으로 운영되다보니 인테리어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유동성에 따른 상권도 나우픽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사실상 나우픽 센터가 위치한 지하 매장은 제 3상권으로 분류될 만큼 접근성이 유리한 편이 아니다. 대신 배달 분포를 고려한다. 송 대표는 자료 조사를 통해 배달 주문지가 많은 입지를 선정했다. 센터는 배달이 오가는 중간 지점에 열었다.
기본 배송료는 3,500원 2만 원 이상일 경우 1,000원이 부과된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편의점이 산재한 강남 한복판에서 배송료를 내면서까지 이용하는 사람이 있겠냐고 묻자 송 대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고객이라면 사용한다”고 답했다. 여유롭게 구매해도 되는 상품이 있는가 하면 지금 당장 물건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직접 가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고 돌아오는 시간보다 주문 후 배달을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고객도 있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송 대표는 “그러다보니 1,2인 가구를 위주로 상품을 큐레이션 하고 있지만 편의점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이나 편의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공구나 신선식품이 필요한 고객 등 이용층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 나우픽이 밝힌 평균 객단가는 23,000원 선. 대형마트 객단가가 10만원, 주류와 담배 매출이 30~40%를 차지하는 편의점 객단가가 7,000원 선임을 감안할 때 나우픽은 그 중간쯤에 있는 셈이다.
마감 시간이 없는 주문과 배송은 가장 여타 마트 배송과 가장 큰 차이다. CS는 물론 교환, 환불도 24시간 내내 진행된다. 철저히 온라인 고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뚜렷한 차이 중 하나다. 송 대표는 “마트나 편의점의 경우 온라인 고객이 먼저 주문해도 오프라인 고객이 먼저 매대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면 온라인 고객은 주문이 취소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타 배송 대행 서비스가 마트, 편의점 배달 대행을 시도했지만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 재고가 연동되어 있지 않아 주문과 취소가 들쑥날쑥했다. 라이더는 매장에서 일일이 물건을 찾아야해 시간이 오래 드는 작업이기도 했다. 주문자와 라이더, 대행업체 모두가 아귀가 맞물리지 않아 불만이 쌓였다.
배송대행업체 띵동의 고민도 비슷했다. 마트나 편의점 배송대행 서비스인 띵동마트 서비스 중 라이더가 편의점에 갔다가 허탕을 치는 경우도 있었고 시간도 천차만별이었다. 마침 띵동 측에서 운영 제안이 왔고 송 대표가 해보겠다고 나섰다. 송 대표는 “창고와 유통이 결합된 서비스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시스템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3M 생활용품 쪽에서 온라인 총판을 맡으면서 온라인 프로세스 전반을 경험한 점이 도움이 됐다. 송 대표는 “도시물류센터 구축부터 물건 배치, 필요한 시설을 시행착오를 통해 체득했다”며 현재 강남 센터는 당시 mvp 모델을 기반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영 방식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온오프라인 재고를 연동하고 발주부터 판매량, 예상 발주 수량을 자동 계산한다. 최종 발주는 센터장 손에 달려있지만 거의 모든 과정은 시스템에 따라 진행된다.
시스템으로 시간을 줄인 이후는 라이더 몫이다. 나우픽은 안정적인 배송을 위해 전속 계약 방식을 택했다. 동선에 따라 가까운 배달지를 선택하는 방식은 배달 누락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배달 인력은 주문이 오면 센터 입구 앞에 준비된 상품을 가지고 배달에 나선다. 배송 평균 시간 18분의 비결이다. 기존 중대형 마트 서비스와 가장 큰 차이기도 하다. 송 대표는 “기존 마트의 경우 순차적으로 배달을 해주는 곳도 있지만 즉시 배달 시스템을 갖췄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덧붙였다. 주문 즉시 배달이 아니라 시간대별로 몰아서 배달하거나 배송을 예약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시스템으로 편의성을 끌어올린 나우픽은 띵동 내 띵동마트 운영에 이어 나우픽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구매금액 단계로 보면 마트와 편의점 중간 단계, 온라인과 오프라인 중간 즈음이다. 이 틈을 피고 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 송 대표는 나우픽을 기존에 없던 신유통 모델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지만 중국에 비슷한 모델이 있다. 중국 알리바바 신선식품 전문매장 허마셴성이다. 허마셴성 반경 3km 이내까지 물건을 배달받을 수 있어 ‘허세권’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다. 송 대표도 향후 나우픽이 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픽세권’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전국 수많은 픽세권을 통해 고객 편의를 끌어올리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픽세권 확장을 위해 올해 안에 서울 내 10개 센터를 열 예정이다. 지난 2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2호 센터가 마련됐다. 1인 가구 밀집 지역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지만 강남에서만 잘 되는 사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아울러 상품군도 확대할 예정이다. 상품 카테고리에는 제한이 없다. 고객 수요에 따라 펫용품, 뷰티, 생활용품이 추가된 것처럼 지역과 사용자에 따른 제품을 들여놓는다는 방침이다. 송 대표는 “수요에 따라 소싱이 가능한 만큼 국내 진출을 염두에 둔 해외 브랜드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다”며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 유통 채널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효용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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