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은 가득 찼는데 입을 옷이 없다. 한 때 큰마음 먹고 산 옷을 집어 들었지만 영 마뜩찮다. 옷장은 꽉 찼지만 입을 옷은 없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버리기엔 아깝고 입기엔 어딘지 불편한 옷으로 가득 찬 옷장을 그 때 그때 입고 싶은 옷들로만 채울 수는 없을까.
성주희 클로젯셰어 대표는 “옷장을 공유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말한다. 옷장에 있는 옷을 대여해주고 필요한 옷은 다른 이에게 대여하는 방식이다. 공유와 대여 아이디어로 클로젯셰어에 5,000개 옷가지를 모았다. 클로젯셰어 옷장 안에는 컨템포러리, 고가 브랜드를 비롯해 함께 들 수 있는 가방은 700종이 구비돼있다. 1회권이나 정기권을 이용해 원하는 옷과 가방을 골라입을 수 있다.
◇구매가 아닌 공유로의 전환=패션 공유 플랫폼은 한국 시장에서 시기상조로 평가되던 모델이었다. 빌려 쓰고 빌려준다는 인식이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도 잠재적 고객을 수용할 수 있는 제품을 공급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성 대표는 공유모델에서 돌파구로 찾았다. 몰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제공할 사람들을 모았다. 시작은 가방 공유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가방 수가 적었던 초반에도 대여 대기자는 항상 있었다. 가방을 공유하겠다고 내놓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플랫폼 이용자도 늘기 시작했다.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클로젯셰어는 2017년 5월, 패션 공유 플랫폼으로 피봇을 결정했다.
“의류도 수요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옷을 공유해 줄 사람들의 옷장이 열리지 않았다” 가방 공유 서비스를 발판삼아 의류 공유를 시작했지만 처음 6개월은 부침이 있었다. 옷을 빌리고 싶은 사람은 많았지만 빌려주는 사람은 적었다. 이쯤 되면 인맥을 총 동원해 공급양을 늘릴 법도 하지만 성 대표는 끝까지 버텼다.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 공유, 대여 모델이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고객을 설득하고 싶었다”
◇옷장 문 열자 월 수익 100만.. 셰어러의 등장=성 대표는 신뢰를 열쇠 삼아 옷장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한 번 공유를 경험이 고객이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다. 공유하고 싶은 옷을 내놓으면 회수부터 대여, 관리, 수익 배분까지 전 과정을 클로젯셰어가 관리하고 물류 보관소 내부에 전문 세탁 인력을 배치해 맡긴 옷을 최적의 상태로 관리했다. 서비스 시작 6개월 후부터는 클로젯셰어를 경험한 이들이 다시 클로젯셰어를 찾기 시작했다. 혼자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함께였다.
“옷을 빌려주는 ‘셰어러’가 생소한 개념인 탓에 초기 모집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바이럴은 훨씬 빨리 일어났다. 대여를 경험하고 수익을 낸 셰어러들이 주변 사람들까지 클로젯셰어로 데리고 오는 구조다” 무엇보다 입지 않은 옷으로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성 대표는 수익을 많이 낸 사람은 1,500만원, 월 100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린다고 귀띔했다. 현재는 대여뿐 아니라 옷장 공유도 입소문을 타며 한 달 5,000여 벌의 옷가지가 몰려들고 있다.
이용자가 늘면서 이용행태에서도 재밌는 흐름이 나타났다. 공유자가 대여자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 상황도 일어난다. 월정액을 쓰던 사람이 1회권을 쓰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상품을 택한다. 겨울엔 옷을 빌려 입지만 봄옷이 풍족한 경우 다시 상품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사용 양상은 다르지만 한 마음으로 당부한다. 성 대표는 “클로젯셰어 초기 고객의 경우 가방이 30개던 시절부터 이용하며 클로젯셰어 성장기를 봐왔다”며 그들의 당부는 절대 망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공급량이 늘면서 프리미엄 중고판매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타 사이트나 매장보다 낮은 가격에 중고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 빈티지 제품을 경험한 고객도 유입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합리적인 가격 비결은 대여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 수수료만으로 운영을 충당하는 구조가 아니기에 중고 판매에 낮은 수수료를 책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 대표는 “미국 더 리얼리얼이 프리미엄 중고제품 판매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까지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비슷한 모델이 없다”며 “공유자에게는 공유와 판매, 대여자에게는 대여와 구입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모델로 클로젯셰어를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내 옷장이 있다..=지난해에는 해외 시장 진출을 엿봤다. 클로젯셰어가 첫 발을 디딘 곳은 싱가포르다. “서울과 가장 유사한 곳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살지만 바이럴이 일어나기 좋고 배송이 빠른 메가시티, 여기에 배달과 세탁 인프라가 갖춰진 선진화된 도시를 찾았다. 공유경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우리보다 앞서 성과가 빠르게 나올 것으로 봤다” 예상은 적중했다.
한국시장에서는 6개월의 부침이 있었지만 싱가포르는 공유와 대여 부문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공유자 제품 중 40% 정도가 받아들여지는 반면 싱가포르는 80~90%가 등록될 정도로 품질이 우수했다.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모인 제품은 고가 상품만 월 500개 이상이다. 성 대표는 상반기 내 싱가포르 시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옷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다 하고 싶다” 최근엔 기부도 진행했다. 옷장 공유에 탈락한 제품 중 기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의향을 묻자 순식간에 3천여 개 옷가지가 쌓였다.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클로젯셰어 회원이 기부한 옷은 제 3세계에 전달됐다. 성 대표는 “렌트에서 판매, 기부, 나아가 아울렛으로 이어지는 옷 생애주기를 모두 다루는 서비스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나의 옷장’이 있는 세상을 꿈꾼다. 캐리어 없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그 나라만의 분위기, 문화, 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의상을 골라 입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 때가 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 대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유경제 생태계 일원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필요하거나 흥미를 느껴서거나, 참여 동기는 다르지만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생태계 일원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클로젯셰어는 올해 홍콩 시장에 문을 두드리며 어디에나 옷장 있는 세상에 한 발 다가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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