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샌드박스로 실질적인 규제혁신이 가능하려면 법제화와 적극행정이 수반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8일 포스트타워에서 개최한 규제 혁신의 성과와 과제 컨퍼런스에서는 지난 1월 19일 시행된 규제샌드박스에 대한 소회와 개선안이 오갔다.
지난 3월 포괄적 네거티브형 규제 전환원칙과 규제 샌드박스제도 기본 방향이 담긴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이 발표됐다. 규제가 혁신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선허용 후규제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의 핵심 중 하나인 규제샌드박스도 1월 산업융합촉진법, ICT정보통신융합법 개정에 이어 4월 지역특구법과 금융혁신지원특별법까지 법적 근거를 마련하며 혁신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시행 이후 현재까지 승인된 사례는 46건이다.
◇규제샌드박스, 혁신 재도전 위한 안전장치 마련해야..=규제샌드박스가 혁신성장의 실험실로 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련주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은 한국형 규제샌드박스는 “세계에서 가장 완성된 한국형 규제박스”라고 평했다. 혁신과 안정성을 두 축으로 규제신속확인, 임시허가, 실증특례를 도입해 폭넓은 규제 완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 영국과 미국, 일본의 경우 법률에 저촉된 근거 법령이 불명확, 불합리하거나 타 법령이 금지하는 경우 관련 규제를 배제하고 우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실증특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심사 기간 또한 2~3개월로 통상 외국 심사기간인 6개월보다 짧아 최단시간 최다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규제샌드박스 적용 주체가 규제 혁신을 체감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장병규 4차위원장은 “규제 샌드박스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식 법제화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규제샌드박스 임시허가와 실증특례에 선정돼도 해당 기간 중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미비하다. ICT 규제샌드박스 기간 2년에 추가로 2년을 연장한다고 해도 법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해당 기간 이후 회사는 존립마저 위태로워진다는 의미다. 장 의장은 “현재의 규제샌드박스는 혁신 도전의 안전장치가 없는 셈”이라며 제도 보완을 강조했다.
◇이중 심의는 실효성 없어…관련 부처 일원화돼야 =각 부처, 기관에 산재돼 있는 심의 조건도 개선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종영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소충전소 입지 실증특례를 사례로 들었다. 현대차는 부족한 수소충전소 인프라를 도심 내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국회, 양재, 탄천 중량 물재생센터, 현대계동사옥에 수소충전소를 운영할 수 있는 실증특례를 신청했다. 이 중 서울시 반대로 불허된 중량물재생센터를 제외하곤 4곳이 실증특례를 부여받았다.
단 현대 계동사옥은 조건부 실증특례로 결정됐다. 준주거지역으로 위험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의부처는 실증특례 지정을 위해 교육청 심의를 요구했다. 이 교수는 “규제샌드박스제도는 다른 규제사항을 일괄적,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미를 포함한다”며 “인허가 과정에서 관계 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규제샌드박스에 부적합해 실제로는 의미가 없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적극행정..규제샌드박스 뒤에 숨기 방지=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규제샌드박스 100일 간의 소회를 전하며 “규제샌드박스 개별심의를 거치는 동안 보수적인 해석이 이뤄졌다는 걸 체감했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네거티브 규제로 해석했다면 규제샌드박스로 신청, 허가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는 의미다. 정부 당국이 규제혁신 접근전략으로 적극행정 확산과 소극행정 혁파를 내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적극적 업무처리 결과에 대해 고의, 중과실이 없는 한 감사 시 책임을 면제하는 적극행정면책, 적극행정 법제가이드라인, 인센티브, 우수사례 홍보 등이 대표적인 도입 사례다.
적극행정은 ‘규제샌드박스 뒤에 숨는’ 문제를 예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형기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은 “공무원이 당장 규제개선을 할 수 있어도 당장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규제샌드박스로 처리한다면 규제 개선을 연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즉시 규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규제샌드박스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행정으로 해결하고 규제샌드박스 시행은 혁신산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장병규 4차위원장은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와 제도를 개선하고 혁파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왔다”며 “규제혁신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 속에서 함께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노력과 연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처럼 규제 혁파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지만 실질적인 시행단계에 내려오면 취지가 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규제개혁은 현장의 고민을 듣는데서 시작하는만큼 국민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경청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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