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비롯 4차산업혁명 기술 분야 경쟁 활성화를 위해서는 데이터 이동을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도구로 언급되는 것이 데이터 이동권이다. 데이터 이동권은 지난해부터 EU가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통해 마련한 규제로 정보 주체가 자신의 데이터를 요청하고 이를 표준 포맷으로 받아 다른 기업과 경쟁자에 넘길 권리를 의미한다.
“빅데이터가 주요 키워드로 등장할 당시에는 데이터 독점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았다. 쓰나미에 비유할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가 매일 생성되고 실제로 기업이 독점력을 발휘한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 임용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6일 서울 강남구 네이버 D2SF에서 열린 콘퍼런스 ‘인공지능과 미래사회’에서 말했다. “그러나 AI가 머신러닝을 넘어 딥러닝을 채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딥러닝은 데이터 의존성이 높아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수록 인사이트 도출에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데이터를 대량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이나 기존 리딩 기업이 독점력을 발휘, 결론적으로 시장 장악에 유리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커진 것.”
임용 교수는 FANG(Facebook, Aamzon, Netflix, Google)이라 불리는 IT공룡기업을 예로 들며 시장 쏠림으로 인한 가격 인상, 선택의 제약, 품질 하락 문제를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 생태계 시장은 경쟁이 승자독식 형태로 귀결되기 쉽고 쏠림 현상에 취약해 미국 학자나 정치인 일부가 꾸준히 이에 대한 규제 마련을 주장하기도 했다. “학계에서 디지털 경제 내 시장 집중 문제를 해소할 방안으로 가장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이 데이터 이동성이다. 다만 이를 보장하기 위한 도구로써 데이터 이동권과 경쟁법 사이에서는 아직 견해 차이가 있다.”
앞에서 말한 경쟁법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데이터 이동 촉진을 통해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자는 시각에서 제안된 방안이다. 데이터 이동권이 인권과 권리 측면에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경쟁법은 산업별 맞춤 규제를 통해 보다 시장과 경쟁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는 뜻. 임용 교수는 “EU가 데이터 이동권을 규정할 때도 개인 데이터 보호가 일차적 목적이지만 경쟁 활성화 효과에 대한 기대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데이터 이동권이 개인 정보에 초점을 맞췄다면 경쟁법은 비개인적이거나 추론성 정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다 실효성 있는 접근이자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신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데이터 이동이 경쟁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느냐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임용 교수는 “데이터 이동성을 보장해 시장 진입장벽을 낮추는 한편 데이터를 발굴하는 데 드는 비용도 낮춰 혁신을 증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데이터 이동 인프라 마련을 위한 비용이 증가, 신생 기업과 신규 진입자에 오히려 더 불리하다는 입장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이동권은 도서정가제와 같아질 수 있다고 본다. 중소 책방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마련됐는데 정작 소비자도 제공자도 모두 규제에 묶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임용 교수는 “국내는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경제 개발기를 거치면서 정부가 자본, 인적 요소를 일부러 한곳에 집중, 태스크를 부여하면서 특정 산업과 기업을 키웠고 이러한 방식이 대체적으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4차산업 혁명시대에도 그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전문가 대부분이 정부 개입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그 한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인공지능 기술 분야에서는 정부가 지식이나 전문성이 격차가 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로운 규제를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많다는 것.
임용 교수는 “이러한 경우 무수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특히 4차산업에 있어서는 다층적, 다면적으로 여러 규제가 개입될 여지가 있어 이와 관련해 누적적, 총체적 효과에 대해 신중하게 분석하고 검토해야 한다”며 “또 한가지 조심할 것은 EU나 미국이 마련한 규제를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 나라마다 맥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규제를 바로 가져와 적용할 수는 없다. 국내서 규제를 마련할 때도 국내만의 콘텍스트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덧붙인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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