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인류의 난제가 있다. 앞머리를 잘라도 될까, 아님 계속 길러야 할까. 혹은 단발로 자를까 말까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잘라나간 머리카락은 새로이 붙일 수도 없다. 오롯이 시간을 견디며 머리카락이 자라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기 전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파악하고 무수히 상상을 덧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망설여진다면 가상으로 먼저 시도해보면 된다. 정면 사진만 찍으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즉석에서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 ‘헤어핏’이다. 헤어핏은 앱 내에서 자신의 모습에 짧은 머리부터 평소에 하지 못했던 과감한 스타일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구현했다. 이재열 버츄어라이브 대표는 “기존 헤어스타일 합성 서비스가 크기와 위치를 얼굴 모양에 합성하는 것이었다면 헤어핏은 각각의 얼굴형에 따라 증강현실로 헤어스타일이 자동 조정된다”며 “딥러닝 기반 배경 적용 기술로 여타 서비스보다 자연스러운 AR체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비스를 내놓자 고객 반응은 뜨거웠다. 헤어 스타일 관련 콘텐츠로 관심을 유도하고 실제 앱 사용까지 연결시키면서 출시 6개월 만에 40만 사용자를 확보했다. 누적 헤어스타일은 800여 건, 2019년 5월 기준 다운로드 수는 130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헤어스타일 가상체험 횟수는 1억 번을 돌파했다.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합리적 추론도 가능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머리를 실제 하고 싶지 않을까?” 이 대표는 가상에서 체험,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올해 3월 선보인 리얼 체험단은 가상체험을 현실로 옮겨놓기 위한 첫 번째 단계다. 마음에 든 스타일을 직접 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기 전에 먼저 헤어핏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알고리즘으로 고객이 원할만한 것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객에게 선택권을 뒀다. 디자이너 포트폴리오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타일을 미리 가상으로 체험해보고 디자이너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이 중 자신이 제안한 스타일이 어울릴만한 고객을 선정한 후 무료로 시술을 진행한다. 시술 후 모습은 헤어핏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로 쓰인다.
리얼 체험단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고 있다. 수수료 대신 광고에서 수익을 내는 모델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작업하기 어려운 포트폴리오와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주는 식이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모객부터 포트폴리오 제작, 마케팅 콘텐츠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현재까지는 반응이 좋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데이터가 쌓이면 큐레이션을 고도화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스타일과 가격대에 따른 디자이너를 추천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돕겠다는 취지다.
3월부터 시작한 리얼체험단에 응모한 이용자는 3천여 명, 이 중 300명이 디자이너에게 시술을 받았다. 체험 고객이 남긴 리뷰는 헤어 스타일을 고민하는 또 다른 이용자를 위한 정보로 축적된다. 이 대표가 리얼체험단을 헤어디자이너 마케팅 플랫폼으로 정의내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헤어핏이 마케팅 플랫폼으로 활용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원하는 고객과 디자이너를 연결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만족도를 높이고 디자이너는 모객 노력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이 대표는 디자이너 마케팅 플랫폼으로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봤다. 기존 헤어뷰티 시장이 헤어샵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디자이너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어서다. “실제 고객이 원하는 건 특정 헤어샵이 아니라 원하는 스타일을 잘 할 수 있는 디자이너다. 예전부터 그런 요구는 있었지만 헤어 비즈니스 구조상 고객의 요구가 그대로 받아지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다”
시대적 요구도 변화에 불을 지폈다. 도제식으로 디자이너를 양성하던 기존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 최저임금은 적은 임금을 받고 도제식으로 교육받던 현장에도 적용됐다. 이 대표는 “인건비가 높아진 만큼 현장 교육은 줄어들면서 도제식 교육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며 “헤어 뷰티 학원 출신 디자이너가 증가하고 1인샵과 공유 헤어샵이 증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최웅석 버츄어라이브 운영 총괄은 이 때문에 디자이너 마케팅 플랫폼 중요도가 더 커질 것으로 봤다. “기존 디자이너가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던 인스타그램이나 카페는 확장성 면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서로가 만나기 위해서는 적잖은 발품을 팔아야했다” 이렇다 할 카테고리 킬러가 없는 상황에서 헤어핏은 서로를 원하는 고객과 디자이너를 연결하고 양질의 데이터를 쌓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 대표는 헤어뷰티 분야가 어려운 분야인 건 공감하지만 뷰티 분야가 스타트업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전했다. 실제 헤어핏이 받은 정부 지원도 뷰티가 아닌 AR, VR 분야다. 이 대표와 최 총괄은 뷰티 관련 정책적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선상에서 기존 뷰티산업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결합해 스타일 산업의 신생태계를 구축하는 ‘스타일테크’에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펀드 조성, 투자 및 실질적인 자금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헤어디자이너가 잘 사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시장에 변화가 감지됐다. 이용자 사용패턴이 변하고 기존 헤어뷰티 운영 시스템도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다. 이 대표는 패러다임이 변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포부다. “실력있는 디자이너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생태계가 없었다면 헤어핏은 데이터와 기술을 통해 이 둘을 연결하고 고객과 디자이너 모두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겠다” 헤어핏은 하반기 부분적용 서비스를 추가하며 가상체험에서 나아가 인생헤어를 찾는 서비스로 자리 잡는다는 목표다.
※ 해당 기사는 한국디자인진흥원과 벤처스퀘어가 스타일테크 산업 활성화를 위해 공동으로 기획한 시리즈 인터뷰 입니다. 스타일테크는 패션, 뷰티에 AI, 빅데이터, AR/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융합한 산업으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은 2019년부터 스타일 산업 신생태계 구축을 위해 대·중·소 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스타일테크 전용 공유오피스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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