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T, 자율주행 등 지연에 민감한 4차산업 서비스가 나타나면서 망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 각각이 요구하는 네트워크 품질과 특징에 맞게끔 별도 인터넷 서비스 즉 관리형 서비스나 스페셜라이즈 서비스를 구성하게 된다면 일반 인터넷 서비스의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이희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5G 시대가 열리면서 서비스별 네트워크 슬라이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만큼 이를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7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서 개최된 ICT 정책-지식 디베이트. 토론회는 ICT 기술과 산업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 개념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마련됐다. 이희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모더레이터를 맡고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민수 한양대 경영대 교수, 조대근 잉카리서치 대표가 디베이터로 나섰으며 이날 자리에서 논쟁거리로 떠오른 것은 단연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관리형 서비스였다.
◇”극소수 위해 쪼갤 필요 있나”=네트워크 슬라이싱은 물리적인 핵심 네트워크 인프라를 다수 독립적 가상 네트워크로 분리, 빠른 속도와 높은 안정성을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우선 제공하는 기술이다. 5G의 넓은 대역폭을 이용해 일부 망은 IoT용, 일부는 IPTV용으로 할당, 각 망 사이에 간섭 없도록 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방편으로 제안된 바 있다. 박경신 교수는 “5G가 100배 넘는 혼잡 없는 용량을 자랑한다면 굳이 왜 쪼개서 극소수만 이용하는 1등석을 만들어야 하냐”고 입을 열었다. “20GB 중 1GB를 자율주행차에 슬라이싱한다면 다른 슬라이스에서는 아무리 큰 혼잡이 일어나도 이를 이용할 수 없는 비효율과 차별을 의미한다. 앱, 디바이스 개발자가 혁신적인 앱 만들거나 중소 CP나 스타트업이 산업에 진입하는 데 있어 일반 네트워크 역시 좋은 데이터 품질을 합리적 비용 하에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 것.
이에 모정훈 교수는 기술적인 시각에서 “5G의 가장 큰 특징은 대역폭이 지금보다 20배 이상 확대되는 것으로 실시간 제어가 필요한 서비스를 커버할 수 있는 ‘초저지연망’이라는 기술도 포함한다”며 “가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대역폭 자체를 희소 자원으로 보고 사회도덕적 측면에서 공평한 분배를 논의하기보다는 신기술과 신서비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논리적인 분리의 필요성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20기가에서 1기가를 무조건 한 영역에만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대역폭이 비면 다른 서비스에 오픈하는 다이나믹 바운더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5G 기반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상용화되려면 아직은 4~5년은 남았다. 그 전까지 이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최소 품질 규제, 이용자 선택 제약?=최소 품질 규제는 ISP가 특성 산업을 위한 특수 네트워크 서비스를 마련하는 데 있어 일반 인터넷의 이용가능성과 품질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함을 가리킨다. 이를 두고 최경신 교수는 “앞서 모정훈 교수가 다이나믹 바운더리를 언급했지만 이는 특수 네트워크 서비스가 잘 운영되는 상황에 한해 남은 용량을 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성격은 여전하다”며 “이용자가 스스로 IPTV나 IoT 서비스 품질은 어느 정도 보장되야 하며 나머지 인터넷 서비스는 어느 정도 늦어져도 괜찮은지 선택할 수 있다면 무관하다. 그러나 이용자의 선택권도 없는 상황에서 최소 품질만 보장한다고 다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희정 교수 역시 “관리형 서비스나 스페셜 서비스를 위한 망을 별도 할애한다면 최선형 네트워크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선형 네트워크는 데이터를 중요도나 주체와 무관하게 선입선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기존 일반 인터넷 서비스가 이에 기반하고 있다.
이에 조대근 대표는 “특수 서비스로 인해 최선형 네트워크가 저해된 사례는 없다. 유럽을 예로 들면 최선형 네트워크를 위한 충분한 용량을 확보하고 품질 손상이 없게 하는 선에서 관리형 서비스는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장 상황을 살피면서 경쟁 정책으로도 최선형 네트워크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최소 품질 지표를 기준으로 제제를 가한다”고 설명했다. 김성환 교수 역시 “어떤 경우에도 네트워킹 슬라이싱 때문에 최선형 네트워크가 느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응했다. “특수 서비스가 마련될 경우 기존의 일반 콘텐츠 제공자들은 상대적으로 데이터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최선형 네트워크에 배정되기 때문에 서비스가 불안정해질 거라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통신사업자에게 여전히 최선형은 주요 수입원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망중립성 고집 아닌 협력 필요”=김성환 교수는 “5G를 계기로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본다. 인터넷망을 왜곡하고 전용망처럼 사용하던 사업자들이 제대로된 계약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4차산업 시대에 들어 자동차 기업도 제조업체도 모두 콘텐츠 사업자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기업과 통신사업자와의 수많은 B2B 관계 형성도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각 사업자가 혁신적 서비스를 선보이고 싶다면 망중립성을 두고 다투기보다는 새로운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조대근 대표 역시 “4G 시대에서 혁신가가 콘텐츠 사업자였다면 5G 시대에서는 ISP와 콘텐츠 사업자 모두가 혁신가다. 망중립성에 관해서는 정부 개입이나 규제보다는 사업자간 혹은 사업자-이용자간 자율 계약을 비롯한 시장 기능에 의한 해결이 바람직하다”며 “생태계 내 플레이어가 긴밀히 협력, 거대·중소 콘텐츠 사업자간 요금 차별을 비롯한 문제를 해결하고 중소 CP도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신민수 교수는 “기존에는 ISP와 CP는 보완 관계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점차 인터넷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5G 기술 등장을 비롯 생태계가 변화하다보니 생존 조건에 대한 플레이어의 인식이 변한 것 같다”며 정부는 단기적인 콘텐츠제공자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간 분쟁 해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정책 연구에 나서야 함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각 플레이어는 인터넷 생태계 질서 형성에 있어 망 중립성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라는 인식을 갖고 산업 전반 발전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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