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이라는 말 대신 협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원규 KB국민카드 라이프비즈부 미래비즈팀장이 대기업과 스타트업 오픈이노베이션을 두고 한 말이다. KB국민카드가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한 건 2017년. 수수료 카드 수수료 인하와 결제 솔루션이 덩치를 키워가며 카드업계도 위기가 찾아온 해였다.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방법은 스타트업과 손 잡고 혁신을 도모하는 길이었다.
신성장 동력을 원하는 대기업과 기업이 축적한 자원을 활용해 서비스를 확장하는 스타트업이 만나면서 오픈이노베이션이 활발해지는 추세였지만 두 집단이 매순간 하모니를 이룬 건 아니었다. 상생과 협업을 가치로 내세웠지만 잘못된 만남은 되레 불협화음으로 새어나왔다. 일방적인 시혜관계, 하청관계처럼 수직적 관계 맺기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이었다.
KB국민카드가 상생을 위해 집어 든 카드는 ‘버리기‘였다. 신규 시장 발굴과 신규 사업 분야 파트너 발굴, 투자를 목표로 하되 기존에 맺던 관계에서 다시 시작했다. 업계에서 흔히 쓰는 육성이라는 말은 협업으로 대체했다. 사소해보이지만 기존에 관계 맺던 방식은 버리고 새롭게 정리해나갔다. “뭐라도 되는 양 스타트업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통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쓰레기라는 소리를 듣는다. 오픈이노베이션에서 스타트업과 기업은 동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다”
기존 금융권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바라보던 시각도 버렸다. 결제 솔루션에 초점을 맞춘 핀테크 분야에 집중하는 대신 카드 이용자 생활 전반에 방점을 찍었다. 로아인벤션랩과 함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으로 선발한 퓨처나인 1기는 KB국민카드 시각을 반영한다. 당시 선발한 팀은 반려동물부터 주거, 음식, 제조, 테크 가전까지 먹고 자고 꾸미고 쇼핑하고 여행하는 생활 전 분야에 걸친 영역에서 활동하는 팀이었다.
퓨처나인 2기 모집을 앞두고는 좋은 스타트업을 모셔오기 위한 발품도 마다하지 않았다. 좋은 스타트업이란 KB국민카드가 가진 1800만 카드 이용자 데이터베이스를 비즈니스에 활용해 수익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가 비블리와 트립비토즈다. 자유여행 숙박 플랫폼을 운영하는 트립비토즈는 1800만 카드 고객사 데이터 중 핵심 타깃 고객을 선발해 프로모션 문자를 발송했다. 이용된 데이터베이스는 30만 건, 테스트 당시 도달율은 32%,였다. 박팀장은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 월 거래액 6배가 껑충 뛰었다”고 설명했다.
취향 기반 도서 추천 서비스 비블리를 운영하는 라이앤캐쳐스는 최근 1년 간 책 구매 이력 20만 원 이상을 기록한 고객 20만명을 대상으로 타깃 마켓팅을 진행했다. 최근 도서를 결제한 순간 ‘당신의 책장을 관리해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열어본 고객은 12%. 한 자릿수에 머물던 도달률과 비교해보면 이례적인 수치였다.
박 팀장은 “카드사가 보유한 DB 공유해 스타트업이 대규모 마케팅과 고객 확보 기회를 얻고 카드사는 방대한 데이터를 비즈니스에 실제 접목해볼 수 있는 모델이 가능한 건 내부 유연하고 열려있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퓨처나인 1,2기를 거쳐 3기를 맞이하는 올해는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를 토대로 협업 시스템도 촘촘히 개선했다.
서류 심사 단계부터 실무진, 부서장급 인원이 참여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지원자 중 일부를 선발하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선발한 스타트업과 일해야 책임감도 더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종 결정권자에 큰 영향 없이 기존 사업을 끌고 나갈 수 있는 장치기도 하다. 박 팀장은 “금융기관은 최고경영진이 바뀌는 시기가 오고 그 때마다 사업 기조가 바뀔 수 있다”며 “오픈이노베이션이 대내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탑다운으로 시작되는 사업이지만 결국 아래에서부터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바텀업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또 다시 오프이노베이션 프로그램 퓨처나인 3기 4개월 여정이 시작된다. 7월 말 선발을 완료하면 8월 실무진과 집중 워크샵이 이뤄지고 이후 내부 기업설명회를 통해 현장 피드백을 진행한다. KB국민카드 내에서 진행하는 데모데이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150명가량. 박 팀장은 “현장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고 귀띔한다. 스타트업이 제시한 협업 모델을 검토하고 새로운 협업 가능성이 열리는 자리라는 뜻이다.
3기는 협업 통로도 확대됐다. 현업부서와 공동사업화 연계는 물론 라이프커머스 플랫폼에 스타트업 전용관을 신설해 커머스로 연계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었다. 아울러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와디즈 소형펀드를 만들면서 투자 기반도 마련했다. 박 팀장은 “와디즈와 조성한 10억 규모 펀드로 와디즈와 공동 발굴한 팀과 퓨처나인 선발팀에게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엑스플리트와 손잡고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를 위한 UX 진단 및 자문, KB 국민카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 지원에도 나선다.
퓨처나인 3기와 만남을 앞두고 박 팀장의 바람은 진정성 있는 팀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박 팀장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편견은 갖지 말고 서로 진정성 있게 협업하고 싶은 스타트업이 지원하며 좋겠다“며 ”서로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원동력은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또 “진정성을 갖고 기다리는 만큼 함께 할 스타트업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협업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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