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은 자판기 모양과 유사하지만 이 곳에는 동전을 투입하는 곳이 없다. 대신 빈 페트병이나 캔을 집어 넣고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페트와 캔 각각 10포인트, 15포인트. 이렇게 쌓인 포인트는 쓰레기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이용한다. 쓰레기가 돈이 되는 곳, 재활용을 놀이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연남동 쓰레기마트 이야기다.
6월 27일 문을 연 쓰레기마트는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에서 직접 쓰레기로 돈을 벌고 물건을 구매하는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재활용을 놀이 문화로 만들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겠다는 목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을 마련한 건 네프론을 개발, 제작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 수퍼빈, 수퍼빈 뜻에 동참한 세계자연기금(WWF)와 코카콜라도 한 편에 업사이클 상품을 전시, 굿즈 판매에 동참하며 힘을 보탰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일명 핫플로 떠오르면서 공원에서 발생하는 맥주 캔, 음료 병 등 쓰레기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을 고려해 쓰레기마트 1호점을 연남점에 열기로 했다”며 “이 곳은 쓰레기 돈, 재활용은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만큼 판매 상품도 친환경적 제품으로 채웠다. 페트병 15개로 만든 에코가방부터 벌집 밀랍으로 민든 친환경 랩 저온 압착 방식으로 짜낸 참기름 등 30여개 제품이 준비됐다.
“쓰레기에 대한 관점을 돈이 되는 쓰레기로 바꾸고 재활용이 하나의 놀이가 된다는 걸 경험으로 증명하면 사람들의 행동도 바뀔 수 있을 것” 김 대표는 “인식을 바꾸면 새로운 인식에 따라 행동이 바뀌고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쓰레기마트는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인 셈이다.
쓰레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시도는 쓰레기마트 이전에도 있었다. 서울, 여수, 제주 등 전국 80여 곳에 설치된 네프론은 쓰레기가 돈이 되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폐지를 줍는 노인이 네프론을 통해 리어카를 구매하게 된 경우도 있다. 지역에 있는 네프론 위에 편지와 빵, 귤 등을 올려놓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감사 인사를 건넨다. 어린이대공원, 동대문구, 의왕시 등에 설치된 숲박스에서는 쓰레기로 에코 상품을 구매하는 다양한 재활용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많은 생명체가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지구에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지만 지금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지구상에 있는 많은 생명체를 위협한다. 도시화와 대량생산이 만들어낸 쓰레기도 그 중 하나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아니라 조금은 불편해도 다른 생명체와 지구를 공유할 수 있는 생활방식, 균형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인프라가 자리잡기 위한 트리거를 던지는 것이다”
남다른 쓰레기 문화를 만들자고 한 건, 김정빈 수퍼빈 대표였다. 김 대표가 버려진 쓰레기를 다르게 인식한 건 그가 철강회사 대표로 있던 때였다. 재활용을 하던 중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고철을 받아 새로운 철로 제련할 때도 어떤 철이 모이느냐에 따라 순도가 바뀌었다. 페트병이나 캔도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되는 물건이었다. 버려지는 캔이나 페트병을 소재로 뽑아 물질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에 파고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누군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재활용을 위해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고 있었지만 재활용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부만 재활용으로 분류되고 대부분은 소각장으로 향한다. 재활용 업체가 쓸 수 있는 형태로 모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의 경우 하루에 소각되는 재활용 쓰레기 양은 200여 톤. 이 마저도 방독면을 낀 인력이 일일이 사용 가능한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을 골라낸 결과다. 재활용품으로 분류된 쓰레기는 후처리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화학약품이 투입되고 자원 순도는 낮아진다.
김 대표가 네프론이 또 다른 대인이 될 것이라 믿는 이유다. 재활용품 정보를 딥러닝으로 학습한 인공지능 엔진이 폐기물과 재활용 가능한 물건을 골라내면서 배출 단계부터 상품화 가능한 자원을 수거해 자원 순환율을 높일 수 있다. 네트론에서 모아진 자원은 재활용 업체가 수거해 갈 수 있는 ‘상품’ 수준으로 분류된김 김 . 기존 재활용 과정이 단섬유와 같이 사용 주기가 짧은 다운사이클링에 그친다면 네프론은 가방과 옷으로 재탄생되는 순도 높은 섬유로 재탄생된다.
지구,환경에 기여한다는 책임감도 생길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 처음에는 누가 기기까지 들고가서 재활용을 하느냐고 말하지만, 네프론 설치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한다. 저마다의 소명감이 있다는 것. 김 대표는 “내가 버린 쓰레기를 안전하게, 우리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재활용하거나 처리하길 바라는, 그런 작은 미션과 도덕감이 사람들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연남동에 파일럿 테스팅을 통해 매장이 상설화될 수 있고 더 많은 파트너가 합류하길 바란다”며 “연남동 수퍼마켓은 그런 사인을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작은 스타트업이 환경에 대한 미션을 가지고 창업했는데 동지를 만날 수 있는 아지트로 자리잡을 예정이다.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스타트업, 글로벌 기업, 대기업이 만나는 소통의 장이 되면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쓰레기 마트가 자리잡지 않을까” 쓰레기슈퍼는 9월 5일까지 운영되며 12시부터 9시부터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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