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열어 서울의 골목을 한번 내려다보자. 어디든 작은 건물들이 촘촘하게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만약 이 건물들 중 한 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지으려한다면? 거주를 위해서든 임대를 위해서든 활용할 면적이 크지 않기에 그만큼 면적당 효율을 끌어올리고 싶을 터. 그러나 사업 비용은 얼마인지부터 건물 규모와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건축법상 문제는 없는지를 확인하기까지 모든 과정과 정보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때가 ‘랜드북’을 펼쳐야 할 순간이다.
랜드북은 인공지능 건축설계 기술을 활용해 토지개발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개발 이후 부동산 가치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 최적의 수익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특히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건축설계 엔진은 각종 건축 법규를 반영해 분양 혹은 임대할 신축 건물의 설계를 시뮬레이션하고 그에 따른 개발 비용과 수익을 추정해준다.” 조성현 스페이스워크 대표가 말했다. “이를 통해 토지 가격도 추정할 수 있으며 사업성에 관한 보다 자세한 자문이 필요한 경우에는 팀 내부 건축전문가가 유료로 이를 제공한다.”
조성현 대표가 이끄는 스페이스워크는 본래 건축사사무소 ‘경계없는작업실’의 기술팀에서 출발, 2016년 분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모회사에서 지금은 역으로 자회사로 편입됐다는 경계없는작업실은 원래부터 면적 효율을 중시하는 수익형 부동산 개발사업에 집중해왔다는 소개다. “개발사업은 개발 이후 가치를 평가하는 데서 시작한다. 개발 후 가치는 건축법규와 토지 형상, 도로접면, 방위에 따라 최대치가 달라지는데 문제는 관련법규가 일년에 몇번씩 바뀌기도 하고 그밖에도 평가에 필요한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이처럼 5~10년 전까지만 해도 정보 불균형 문제가 컸고 사업성 검토에 드는 부대비용이 적지 않아 일반인은 토지를 직접 개발하기보다 매도하는 데 그치곤 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부동산 개발은 소수 개발업자만의 영역이었는데 이들은 금방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개발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효율성이나 생활 측면을 비롯 장기적으로는 문제 발생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컴퓨터공학도 함께 공부했다는 조성현 대표는 “이를 기술로 풀어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시세는 부동산에 묻고 설계는 건축사사무소에 문의해야 하듯 번거롭게 흩어진 기존의 프로세스를 통합, 일반인도 클릭 한번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랜드북은 소형주택 개발 사업성 검토 서비스를 웹에서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다만 상업시설, 오피스텔 개발 사업성 검토나 전문 보고서, 오프라인 자문의 경우 건당 이용료를 수수하며 이러한 유료 서비스는 금융권 고객자산관리부서나 중개법인을 통해 시범 제공한다. 부동산 개발 니즈가 확실한 핵심 고객을 찾고 집중적으로 실험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 그 이유. 고객군 역시 개인뿐 아니라 법인 투자자, 유통 채널이 필요한 공인중개사, 번거로운 반복 작업을 줄이고 싶은 건축사사무소와 감정평가법인을 모두 아우른다는 설명이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가로주택정비사업 사업성 검토 서비스도 따로 있다. ‘랜드북 가로주택’은 단독주택이나 빌라를 아파트로 재건축하려는 도시공사측에 인공지능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제공, 해당 기관이 정비사업 초기 단계에서 AI 기반 최적 설계안과 3D 투시도를 확인하며 빠르게 사업성을 검토하도록 돕는다. 신속 검토 이후에는 심화 기획설계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사내 건축사사무소가 신속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설계안을 제작하고 전문 연구원과 건축사가 주민 설명회에 참석해 자세한 설명까지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는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에 자동화 프로그램을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LH, 경기도시공사를 비롯 5개 공공기관에도 공급한 바 있다는 소개다.
사업성 검토뿐 아니라 그 다음 단계 즉, 토지 매매와 부동산 개발에 관해서도 중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토지 매매 단계에서는 매도인 혹은 중개인의 매물을 AI 토지 가치평가 엔진을 통해 평가, 사업성 검토를 거쳐 조건에 따라 법인과 개인, 공공기관에 매칭하는 서비스를 내년 출시한다는 구상이다. 부동산 개발에 관해서는 현재 은평구 내 230평 규모 토지를 매입,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행, 운용 수익모델을 도출한다는 설명. “우선 전체 개발 시장 25%를 차지하는 사업규모 200억 이하 소형 부동산 개발에 집중하려 한다. 사업성 평가 엔진을 기반 삼아 거래 플랫폼, 직접개발 단계까지 전 개발 프로세스를 아우르겠다.”
얼마 전부터는 NH디지털 챌린지 프로그램에 합류, 이달 말에는 데모데이 참가도 앞두고 있다. 데모데이 전후로 NH농협은행측과는 고객 자산관리 상담서비스에 랜드북 솔루션을 활용, 고객이 보유한 토지를 개발하는 데 대한 자문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특정 고객에게는 연 2회가량 본인 부동산에 대한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NH측이 비용을 지불하고 우리가 상담을 직접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추가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는 것.
끝으로 조성현 대표는 “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전문성을 갖춘 팀원을 모으고 이들에게 비전을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부동산 개발이라는 영역은 지금도 여전히 비전문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라 전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기술과 엔진 고도화에 집중, 가속화해 연말까지는 완전한 자동화를 실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서는 “많은 이들이 부동산 개발에 관해 직접 의사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들이 공간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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