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양적 성장에서 나아가 지속적인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장, 기술, 자본, 노동력 분야에서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20일 발표했다. 보고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 현황을 살피고 변화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7년 첫 보고서 발간한 이래 올해 세 번째 연례 보고서다.
정부 스타트업 창업 지원 규모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 유니콘 기업수는 글로벌 5위 수준으로 성장하는 등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양적 성장을 달성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국가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위상과 경쟁력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다. 생태계 전반에 걸친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보고서에서 제시한 핵심 요소는 ▲시장 창출을 위한 진입 규제 환경 ▲혁신적 서비스, 제품 개발을 위한 데이터 인프라 환경 ▲창업-성장-회수-재투자의 선순환을 위한 투자 환경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력 확보를 위한 인재 유입 환경 개선이다.
스타트업 진입 규제 환경은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여전히 뒤쳐져있다. 글로벌 누적 투자액 상위 100대 스타트업 중 53%는 진입 규제로 한국에서 사업화 가 불가능하다.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그랩은 국내에서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조항에 위배돼 사업화 길이 막힌다. 진입 규제는 결국 한국 스타트업들이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도 성장을 제한하는 한계로 작용한다.
보고서 발표를 맡은 안희재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 개정 등을 통한 보다 근본적인 규제 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산업에 대해 우선 허용, 사후 규제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스타트업을 고려한 규제 영향 평가, 유권 해석 시간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적극 행정, 스타트업-기존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 규칙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초고속 인터넷 및 스마트폰 보급률 등 데이터 축적을 위한 최고 수준의 인프라 환경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의 비표준화, 분석 및 활용 제한 등으로 빅데이터 기반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낮은 상황이다. 국민 1인당 빅데이터 시장 규모만 따져 봐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10분의 1수준에 그친다.
정부는 데이터 산업 활성화 전략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미한 수준이다. 안 파트너는 세 가지 부문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먼저 데이터의 확보 측면에서 비식별 개인정보에 대한 명확한 정의 및 사용, 처리기준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 개발이 필요하다. 또 유통 데이터 품질 관리 체계 구축, 정보 보안 규제 수준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보안 규제의 경우 보안 방법을 정하는 방식과 보안의 목적을 명시한 후 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식을 상호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투자 환경 측면에서는 민간 자본 유입을 확대하고 창업-성장-회수-재투자 선순환 투자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9년 1분기 국내 벤처 투자액 규모는 7,45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9%의 성장률을 보였다. 투자액 규모나 성장률만 봐도 역대 최고치지만 투자 생태계가 정부 정책자금 위주로 형성됐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안 파트너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책 자금의 시장 투입 외 기업, 개인 등 다양한 민간 자본의 유입을 통한 투자 재원 확보, M&A, IPO 등 회수 시장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창업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게 보고서 내용이다.
무엇보다 민간 기업의 기업벤처캐피탈(CVC) 설립을 다양화하고 보다 유연한 투자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재 정부가 장려하는 민간 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방식은 벤처지주회사 제도다. 하지만 지주법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벤처지주회사는 모회사 출자 의존도가 높아 자금 조달 유연성이 떨어진다.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 보유 의무 조항으로 모험 투자에도 뚜렷한 약점을 보인다.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는 “벤처지주회사로 투자를 유도하는 건 사실상 무리한 요구”라며 “스타트업 투자 성공 확률이 10~20%라고 할 때 아무리 자회사라도 대기업에서 50%이상 실패 확률을 감수하고 투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유연한 조직, 자본 구조, 투자 방식을 기존 기업 체제와 달리하면서 대기업의 기존 사업과 스타트업 오픈이노베이션을 이어주는 형태 외국 투자 형태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스타트업 핵심 인력인 개발자 공급이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스타트업 창업 및 취업 기피 문화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개발자 양성과 인재 유입에 유리한 환경 조성이다. 컴퓨터공학과 등 유관 학과 대학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등 인재 양성 텃밭을 가르고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통해 중고급 개발자를 양성하는 방안이다. 단기 인력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 개발자 유치를 위한 유인책 강화도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민간, 교육기관-기업 간 협업을 바탕으로 기업가정신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경숙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연구를 시작하고, 보고서를 공유한지 벌써 3년째가 됐다”며 “오늘 이 자리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싼 보완점을 짚고, 변화의 방향성을 찾는 계기로 작용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발표회는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의 축사를 시작으로, 베인앤컴퍼니 안희재 파트너가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발제했다. 스타트업 생태계 혁신을 위한 개선 방향을 주제로 한 패널토론에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최성진 대표를 좌장으로 롯데액셀러레이터 김영덕 상무, 자본시장위원회 안창국 국장, 벨루가 김현종 공동창업가, 벅시 이태희 대표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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