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잠드는 시간 밤 11시,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동대문 시장은 그제야 깨어난다. 좁은 통로 사이에서 도매점과 사입자 간 거래가 시작된다. 시장 내 자리를 잡은 도매상은 어림잡아 3만 명, 이들과 거래하는 전국 온오프라인 소매점은 23만 개 이상이다. 하루 평균 거래액은 600억 원 이상,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양만 봐도 국내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국내 패션 시장 규모 약 53조원 중 동대문 시장에서 일어나는 B2B 거래는 20조 원에 달한다.
◇모든 거래가 수기로.. 불편이 익숙한 시장에서 찾은 기회=“이런 곳이 있다니 신세계였다” 염승헌 거북선컴퍼니가 동대문 시장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염 대표는 하버대학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온누리DMC를 매각 한 김태은 부사장과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염 대표 눈에 비친 동대문시장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기억 속에 존재하던 아날로그 시대가 그대로 있었다.
“소매점이 도매점에 주문 후 물건을 받고 정산하기까지 어림잡아 10단계를 거쳐야했다. 주문이나 정산은 수기로 이뤄졌다. 불필요한 업무가 반복됐다. 소매상의 경우 매일 수백개 도매상 거래 대금을 처리해야 했다. 이 말은 곧 수 백 번 송금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산시기에는 과거 주문상품과 함께 배송된 대량 영수증을 하나씩 대조하며 검수 작업을 진행했다. 염 대표와 김 부사장은 반복되는 단순노동,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기 위해 시장 맞춤형 주문 전산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 부사장의 15년 온라인 커머스 경험과 염 대표의 소프트웨어 기술 기반이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둘은 확신했다. “동대문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도소매점을 IT로 연결 ‘터틀체인‘ 불필요한 업무는 가라=거북선컴퍼니는 간편하게 대량 주문과 정산이 가능한 ‘터틀체인’을 제시했다. 일일이 주문지를 돌리지 않아도 대량주문을 사입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소매점은 기존 엑셀 주문창을 그대로 터틀체인 웹 대시보드에 업로드하면 주문 접수 현황과 상품 검수, 입고현황을 관리할 수 있다. 추후 정산 주기에 정산금액도 터틀체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매점은 주기마다 수백장씩 발행했던 세금계산서를 거북선컴퍼니 측에 한 장만 발급하면 된다. 불필요한 업무는 줄어들고 정확도는 높아진다. 터틀체인이 소매점과 도매점 양측 거래를 증빙, 기록해 이전에 있었던 대금관련 금융사고도 방지할 수 있다. 염 대표는 “아직 아날로그로 움직이는 동대문시장을 디지털화하고 싶다”며 “이를 통해 시장상인과 거래처가 좀 더 효율적이고 편한 방식으로 업무를 보고 시간과 돈, 노동 절약을 실감했으면 좋겠다”고 소개했다.
올해 1월 터틀체인을 정식 출시한 이후 동대문을 발로 뛰며 고객을 확보하는 중이다. 이용자 확보를 위해 무료로 터틀체인을 제공한 이후 반응은 좋은 편이다. 동대문시장 생태계 내 오랜 불편에서 착안한 서비스인지라 한 번 써보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양의 거래를 수기로 작업하던 상인들이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 설득의 시간이 필요했다.
◇개발, 영업, 운영 모두가 한 몸처럼 동대문化=염 대표와 김태은 부사장, 15년 차 이상 온라인 쇼핑몰 경력자로 구성된 사업팀, 17년 차 동대문 사입 경력 운영팀 모두가 동대문 시장과 발맞춰 움직였다.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생활패턴도 바꿨다. 시장조사를 하거나 도매처 서류를 취합할 때면 시장 상인이 활동하는 밤 11시부터 새벽 6시에 맞춰 생활했다.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움직이다보니 도매점과의 소통도 어려웠다. 정해진 시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거북선컴퍼니가 하려는 일을 설명하고 신뢰를 쌓아야했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에 도매 거래처는 경계심으 품었다. 뭔가를 요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발을 들였다. 일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시장에서 당연시 되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상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동대문 운영팀은 관계맺기에 집중했다. 도매 현장에서 터틀체인 홍보는 물론 필요할 때 직접 방문해 사전 교육을 진행했다. 오랜시간 시장에서 일했던만큼 누구보다 시장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빠른 변화 상황을 매주 내부미팅을 통해 공유했다. 사업팀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고객 확보에 나섰다. 대형 온라인쇼핑몰의 경우 500곳 이상 도매거래처와 거래하고 있어 소매점을 통해 많은 도매거래처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터틀체인 앱 출시.. 추후 B2B 시장에서도 활용..=거북선컴퍼니는 앱을 통해 사용자가 편리하게 거래처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염 대표는 “좁은 시장안에서는 휴대폰을 적극 활용한다. 사용자가 더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앱을 준비 중”이라고 귀뜸했다. 앱에서는 현재 터틀체인에 매출 규모 및 관리 기능, 이미지 소통 채널 추가 등 부가 기능이 추가 될 예정이다. 현재 터틀체인은 동대문시장을 타겟으로 개발됐지만 B2B 시장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염 대표는 “모든 B2B는 대량 거래가 이루어지고 모든 거래는 중앙데이터베이스에서 관리 및 기록이 필요하다. 동대문시장 뿐만 아니라 다른 B2B에서도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과 오픈이노베이션 가능성도 열어뒀다. 거북선컴퍼니는 동대문에서 존재감이 확실한 두산과 협업을 바라고 있다. “두산은 동대문시장과 물리적으로 밀접해있다. (동대문에는 두산타워가 랜드마크로 서있다) 대기업과 협업해 동대문시장을 활성화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다” 우리은행 위비핀테크랩 4기와 신한카드 아이엠벤처스에 선정된 거북선컴퍼니는 현재 은행권과도 협업을 도모하고 있다.
“터틀체인을 통해 동대문 시장을 하나의 글로벌 브랜드로 탄생시킬 것” 거북선컴퍼니의 목표다. 염 대표는 “동대문 의류 도매 시장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매우 큰 시장이자 글로벌 SPA 브랜드인 자라나 H&M과 견줘도 결코 작지 않은 시장”이라며 “아직까지 동대문시장 상황에 적합한 이렇다할 플랫폼은 없었다. 터틀체인이 변화의 시작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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