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만하게 경사 진 트랙 위를 차가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옆으로도 길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탓에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생각보다 구불구불하게 휘는 구간을 지날 땐 코너링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가속이 붙는 와중에도 차는 꽤나 조용하다. 엔진 소리도 배기음도 없다. 중력가속도만을 이용해 질주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국내 스타트업 모노리스가 제주시 애월읍에서 그래비티 레이싱 테마파크 ‘9.81파크 제주’를 개장했다. 모노리스는 2014년 스마트 플레이 파크를 모토로 내걸고 창업, 자율주행과 IT기반 통합운영시스템을 기반삼아 2017년 테마파크를 착공했다. 현장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창업 이후부터 이러한 기술을 테마파크에 잘 접목시키는 것에 집중해왔다”고 전했다.
9.81파크 입구는 흡사 전시관 같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된 GR(Gravity Racer, 무동력) 차량 3종과 함께 매표, 발권을 위한 키오스크를 만날 수 있다. 시간대별 입장객 수를 제한하기에 미리 앱으로 예약을 하고 오면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키오스크로 발권할 수 있다. 물론 현장 발매도 할 수 있다. 수령한 티켓은 손목에 두르는 종이 팔찌 형태. NFC 칩이 부착돼 입장, 탑승차량 등록 때마다 리더기에 태깅만 하면 된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9.81앱을 깔고 회원 가입해야 모든 콘텐츠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발권한 티켓을 앱에서 맵핑하면 준비는 이제 끝이다.
제주9.81파크에서 탑승할 수 있는 차량은 모두 3종류다. 우선 GR-E(엔트리)와 GR-D(듀오)는 비숙련자도 탈 수 있는 기본 레벨 차량이다. 다만 키 150cm, 나이 만 14세 이상이란 탑승 조건이 있다. 2인용 GR-D(듀오)는 어른과 동반하면 아이도 탈 수 있도록 좌석이 앞 뒤로 두 개 마련됐다. 두 차종의 최고 시속은 각각 35km/h, 40km/h. 그래도 체감하는 시속은 이보다 60km/h 정도는 이른단 소개다.
반면 나머지 차종인 GR-X는 숙련자급(마스터) 전용 모델로 최고 5초간 작동하는 부스터를 사용하면 60km/h까지도 달릴 수 있다. 탑승 조건은 다른 두 차종과 달리 나이 제한을 만 18세로 올렸다. 직접 9.81파크를 소개한 이동언 운영지원총괄은 “마스터 레벨을 얻으려면 중상급 코스에서 일정 랩타임 이하, 최고속도 40km/h 이상을 기록해야 한다. 매주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며 “마스터 레벨을 따야 프리미엄 전용 라운지 ‘패독(Paddock)’과 최상급 코스를 달릴 수 있기에 다회차 주행을 하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날 직접 본 GR 차량은 무동력이란 말이 무색하게 생각보다 묵직하고 복잡한 모습이다. 무게도 200kg가 넘는다. 차량은 저중심으로 설계, 전면에는 자율주행차량에 흔히 탑재하는 라이다 센서를 장착했고 위치 추적과 통신을 위한 센서도 곳곳에 배치됐다.
“레이싱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뉜다. 주행을 시작할 때는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다운힐 트랙을 달리기 때문에 중력가속도가 붙으며 차량이 달리기 시작한다. 다운힐 구간이 끝나고 다시 경사면을 오를 때는 좌석 뒤에 배치한 엔진이 작동, 자율주행을 시작한다.” 이동언 총괄은 이어 “레이싱 현장 곳곳에는 센서를 배치, 차량과 통신을 주고 받으며 차량 속도와 방향 컨트롤을 완전 자동화했다. 센서가 보내는 주행, 위치 정보는 모두 통합운영시스템에서 수합, 관제실이 상황을 모니터링한다. 주행 현황, 결과도 분석해 탑승자에게 앱을 통해 실시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주행 코스도 레벨에 따라 자동회차구간을 포함해 1,300~1500m 길이 4개 코스로 나뉜다. 최상급 코스는 다른 길보다 훨씬 구불구불하고 가속도 역시 높아 GR-X를 몰 수 있는 마스터 레벨급 실력자를 위한 코스다. 첫 탑승자라면 GR-D를 위한 코스3이나 GR-E를 위한 코스1, 좀 익숙해졌다면 중상급 수준인 코스2를 권한다.
탑승장으로 들어가기 전 지나야 하는 ‘센트럴’과 ‘랩981’은 각각 실내 광장, 실내 스포츠 체험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날은 평일 오후라 한적했지만 비오는 날이나 기념일에는 스태프와 방문객이 모두 모여 작은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얼마 전 할로윈에는 이곳에서 스태프와 함께 코스튬 이벤트도 벌였다고 한다. 또 곳곳에 높이 대형 화면을 통해 시시각각 레이스 랭킹도 살펴볼 수 있다.
랩981은 실내 스포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 무료는 아니지만 대기시간을 때우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여기저기 알차게 시설이 들어섰지만 워낙 공간이 넓고 겨울을 대비해 실내 콘텐츠를 추가할 계획이란 설명이다. 눈길을 끈 건 VR 레이싱. 아쉽게도 혼자 트랙 위를 달릴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가상 레이싱 콘텐츠다. 실제 GR 차량과 똑같은 모형에 탑승, 실제 트랙도 그대로 구현했다. 덕분에 ‘안전하게’ 아쉬움을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제 다운힐 레이싱을 만끽할 차례. 탑승장까지는 두 층 정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야외 탑승장으로 나서기 전에는 안전교육도 받아야 한다. 마침내 도착한 탑승장. 앞서 설명한 대로 자율주행이 가능하기에 스스로 줄을 지어 손님 맞이를 하는 차량들을 볼 수 있다. 라이다 센서 덕에 앞차와 부딪히기 전에 알아서 제동을 걸고 있었다.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메고 손목에 찬 티켓에 붙은 NFC 칩을 핸들 옆 리더기에 태깅했다. 주행 실력이 실시간 추적되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다운힐 주행 구간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중력가속도가 덜 붙는 초반 구간과 달리 코너 구간에 접어들면서는 최고시속이 40km/h지만 체감은 그보다 20km/h 정도 높다는 설명대로 속도감이 느껴졌다. 코너링 구간이 쉴새 없이 나와 1분 30여 초 시간을 가득 채워 열심히 핸들을 돌려야 했다. 생각보다 핸들이 묵직하게 도는 덕에 서툰 핸들링에도 불구하고 조작이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브레이크도 살살 밟으며 속도를 조절하면 무면허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레이싱을 마칠 수 있을 것.
순식간에 변곡점에 이르면 스태프로부터 차량 속도를 늦추란 신호를 받는다. 그리고 핸들에 탑재된 스크린을 통해 자율주행이 시작된다는 안내가 나온다. 그때부터는 브레이크도 핸들도 건들일 필요 없다. 안전벨트만 벗지 않으면 사진도 마음껏 찍으며 주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을 찍으려 스마트폰을 꺼내들면 앱을 통해 알림이 속속 도착한다.
이는 모두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살려 경쟁, 성장의 재미를 주고자 기획됐단 소개다. 1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고 다회차 탑승이 많은 비결이기도 하다. 실제로 티켓도 1회 판매보다는 3회 탑승권이 인기가 높아 코스1을 한두번 타고 익숙해지면 그 이상 코스를 타러가는 방문객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앱을 통해서는 GR차량 뒤쪽에 설치된 카메라와 레이싱 트랙 여기저기 설치된 카메라가 레이싱 시간동안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 앱으로 바로 볼 수 있어 실수, 보완점을 찾을 수도 있다.
주행을 마친 차량은 다시 제바퀴로 대기열로 돌아가 점검을 받는다. 수평이 아닌 수직 이동이 필요할 때는 자동화 설비가 거들어준다. 이동언 총괄은 “실제 점검 단계를 빼고는 이동과 보관 모두 자동화한 덕분에 스태프 인원은 관객 소통, 안전 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빌어 슬쩍 구경해본 마스터 레벨을 위한 전용 라운지 패독은 아직 한적했다. 아직 오픈 초기라 마스터 레벨에 이른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바로 탑승권을 끊을 수 있도록 따로 키오스크를 설치했고 경쟁자 혹은 본인 주행 영상과 랭킹을 볼 수 있는 화면도 마련된 상태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경치도 감상할 수 있다.
“앞으로 마스터 레벨이 누리는 다양한 특권을 늘릴 계획이다. 마스터 레벨 전용 입출구는 이미 설치해뒀다”며 이동언 총괄은 “1회적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고 다른 방문객, 혹은 친구와 경쟁하는 재미를 살리기 위해 앱에서는 팔로잉 시스템도 마련할 생각”이라 밝혔다. 더불어 “올해 9.81파크 메인 콘텐츠인 무동력 레이싱을 잘 오픈했고 앞으로는 파크 곳곳에 남은 빈 공간에 재밌고 풍성한 콘텐츠를 채울 계획이다. 내년 봄에는 종합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9.81파크 풀 패키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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