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재미있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체감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1년 사이에 창업을 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고,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도 예전보다 많은 회사들을 검토하고 있는데(사실, 일부 분야에서는 80% 정도 유사한 사업계획서들을 보기도 합니다), 창업멤버들을 살펴보면, nhn/다음 등의 포털이나, 넥슨/엔씨 등의 게임회사나 삼성전자 등 전통적인 IT기업을 다니던 젊은 분들이 대기업 생활에 보람을 느끼시지 못하고 뛰쳐 나와서 창업을 한 케이스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 창업도 눈에 띄게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만난 카이스트 후배 겸 창업가에게 물어보니 학교에서도 창업 열기가 꽤 있다고 하네요. 제가 있을 때만 하더라도 모두들 다 삼성전자에 취직하곤 했었는데 말이죠.
이런 창업 열기를 굳이 숫자로 표현하면 ‘벤처기업 수’로도 볼 수 있을텐데 (물론, 정확히 매칭되지는 않습니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벤처기업 수는 벤처인증을 받아야지만 count가 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겠죠) 2001년 IT버블이 터지기 직전 벤처기업수가 1만4천개였고, 2003년 7천개까지 줄었던 벤처기업 수가 2006년 1만개를 돌파했고, 최근 2년 사이에 거의 1만개가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2001년 IT버블 때보다 거의 2배나 많은 벤처기업들이 생겨난 것이죠.
그나저나 글을 처음 쓰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말씀드린다는 것은 위의 내용은 아니었고요, 이러한 열기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현상이 벤처캐피탈리스트였던, 즉 투자심사를 하던 VC의 투자심사역이 창업을 하는 사례들이 눈에 띄고 있다는 것입니다.
S모 VC에 계셨던 투자심사역은 소셜게임을, 또 다른 S모 VC에 계셨던 투자 심사역도 소셜게임을, K모 VC에 계셨던 투자 심사역은 모바일커머스를, C모 VC에 계셨던 투자 심사역도 창업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는 case만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사실 작년부터 투자 심사역들끼리 만나서 얘기를 할 때 종종 (1) 진짜 지금 사업하기 괜찮은 시점인 것 같다. 모바일을 비롯해서 기존의 체계가 많이 흔들리고 있고, 사업을 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2) 요즘의 스타트업들의 valaution이 꽤 높은 편인데, 나도 창업을 해서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류의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나가서 창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업계획서를 수 없이 보고, 실제 투자를 해서 사업 실패하는 것도 수 없이 많이 본 나름대로 보수적인 투자심사역들이 뛰쳐나가서 창업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큰 사건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시장이 눈에 보이는 것 같고, 기술로 승부로 거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로 승부를 거는 것이고 판단하면 그렇게 나갈 수도 있겠다고 조금 수긍이 되기도 하고요.
어찌되었던, VC출신의 창업가들이 어떻게 해 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가 주식을 사면 상투를 잡는 것이라는 일반론이 있는데 벤처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몇년 후에 후배 심사역에게, ‘야야, 심사역들이 나와서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그때는 버블이야’라고 말하게 될지, 아니면 최근의 창업열기는 2000년도 초의 버블때와 달리 ‘실체’가 있기에 다른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아무튼, 어려운 결정을 내리신 투자심사역 출신의 창업가분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ps. 개인적인 의견으로, 한국은 버블이라고 보기에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뜨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상당히 많은 유사회사들이 생겨나고 있고(위에서 언급한 사업계획이 80% 이상 유사한), 일부 분야에서의 기업가치가 좀 높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야의 경우는 소수의 top회사들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기업가분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