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은 철물점에서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한 작품이다. 예술이란 예술가의 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예술계 내의 암묵적인 규칙을 깬, 레디메이드 개념을 최초로 예술에 도입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샘’같은 순수미술 작품에서만 이러한 혁신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웹툰의 경우, 붓 대신 드로잉 펜과 태블릿 PC를 잡는 것이 만화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발생했다. ‘샘’과 웹툰의 공통점이 있다면, 새로운 형식과 도구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도는 다양한 담론을 만들며 지금까지 문화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오고 있다. 이번에 만나본 펄스나인도 그렇다.
<펄스나인 박지은 대표>
펄스나인은 그래픽 AI 전문기업으로, 인공지능(AI)이 제작한 이미지를 구독할 수 있는 플랫폼 ‘아이아 쇼케이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 기술과 이미지 구독 기술과의 결합이라, 흥미로웠다. 보통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이미지를 큐레이션,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있어도 자체 이미지를 제작하는 서비스는 그간 보지 못했다. 지금도 검색만 하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AI로 그림을 제작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뭘까. 펄스나인의 박지은 대표를 만나보았다.
아이아 쇼케이스에는 자연물, 인물 등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딥리얼 AI, 특별 화풍에 맞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페인틀리 AI 서비스가 있다. 어렵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간단한 소개를 요청했다. 아이아 쇼케이스는 “창작자들이 진짜 중요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라고 자사 서비스를 박지은 대표는 소개했다. 박지은 대표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제작되는 콘텐츠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있고, 웹툰, 이모티콘, 핸드폰 바탕화면 등 온라인 수요는 그 중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그 수요 안에는 스톡이미지 시장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전문기관 테크나비오의 조사에 따르면 스톡이미지 시장은 오는 2021년까지 연평균 8%씩 성장, 글로벌 시장 규모는 약 3조 5300억 원애 달할 것이라고 한다.
웹툰 콘티 작업의 예시를 들어보자. “여자 주인공 A가 남자 주인공 B의 손을 공항에서 뿌리치며 뒤돌아선다”는 장면의 콘티는 어떻게 그릴까? 여주와 남주의 인물 표현에 집중하고 싶으나, 공항 배경, 주위 인물 등 기타 그려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에 떠다니는 이미지를 골라서 무작위로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아 쇼케이스의 페인틀리 AI를 활용하면 웹툰 자동채색, 스토리 기반 웹툰 컷 생성 등 맞춤형 디지털이미지가 생산된다. 즉, AI가 나의 니즈에 맞는 결과물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기 때문에 저작권 걱정이 없고, 시간 효율성은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펄스나인 페인틀리 AI 서비스 대표 이미지>
이와 같은 측면에서 기존의 스톡이미지 기업도 펄스나인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국내 최대 스톡이미지 그룹인 게티이미지코리아가 있다. 세계 25만 명 이상 사진작가와 영상 전문가를 통해 매월 30만 개 이상의 사진과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게티이미지코리아는 지난 8월 펄스나인과의 AI그래픽 솔루션 사업을 위한 MOU를 체결하며 콘텐츠 제공에 있어 펄스나인이 가진 AI 기반 이미지 제작툴에 대한 기대감을 표한 바 있다.
시장성과 서비스의 존재 이유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술과 AI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펄스나인의 수익 구조가 궁금해졌다. 박지은 대표는 크게 세 가지 분야의 수익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AI 이미지 에이전시로서의 구독료, 유료 콘텐츠 판매, 그리고 콘텐츠의 중개 수수료”라고 말했다.
AI 이미지 에이전시로서 AI가 작업한 아트웍과 명화, 광고 이미지 그리고 출판물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아카이브해 연간 구독료를 받는 형태가 첫 번째 수익구조다. 두 번째는 앞에서 논의한 것과 같은 스톡이미지의 판매다. 세 번째는 아티스트와 AI가 공동 작업을 했거나, 아니면 AI가 단독 작업한 작품의 판매 대행 수수료가 있다.
요약을 해보면 펄스나인은 AI라는 도구로 만들어낸 콘텐츠의 전시, AI 도구의 제공 그리고 그 콘텐츠의 판매까지 총괄하는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아이아쇼케이스는 AI기반으로 가상 인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 될 수 있다. 저작권과 함께 초상권이 문제 시 되고 있는 요즘, 가상 인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나 광고 등에서 조금 꺼려지는 장례식 얼굴 사진, 범죄자 얼굴 사진 필요할 경우, 캐스팅의 번거로움 없이 손쉽게 실제 존재하는 듯한 얼굴로 AI 가상 인물을 적용할 수 있다.
지난 8월부터 일명 AI심쿵챌린지가로 불리며 남녀 각각 101명의 가상 아이돌을 통해 자신의 이상형을 ‘AI.dol Challeng101’을 진행하기도 있다. 최종으로 뽑히는 가상 아이돌 상위 랭킹 11명을 오는 12월에 실제 데뷔시킬 예정이다.)
박지은 대표는 “AI를 인간의 창의력과 예술성을 위협하는 도구 대신 더 영감을 받고 시간 효율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인식해주는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녀가 창업을 한 뒤 확인한 것은 AI가 만든 이미지는 분명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6개월간 31건의 작품을 판매했고, 작품당 최대 판매액 2130만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도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에도 월 112명 정도의 관람객이 다녀가셨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박지은 대표는 “곧 아이아 쇼케이스의 온라인 서비스를 본격적으로시작할 예정으로, 전시 플랫폼, 스톡이미지 마켓, 저작도구 등의 온라인 서비스가 안정되면 더 많은 창작자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콘텐츠 등기 서비스도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연매출 14조원의 어도비를 롤모델로 하고 있다는 펄스나인이 가져올 AI를 활용한 새로운 예술과 창작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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