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우리나라 스타트업 업계를 평가하자면 다사다난이라는 말 이상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초유의 상황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맥을 못 추었으니 꿈과 패기 말고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스타트업에게 불어닥친 한파는 상상 이상이었음이 자명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장점은 위기상황에서 더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비록 여행, 외식 분야 등의 일부 산업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적지 않은 스타트업이 사상 최고의 퍼포먼스와 투자유치 실적을 기록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 가고 있기도 하다.
여러 산업 중에서도 올해 가장 큰 성과를 낸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른바 언택트 즉, 비접촉분야를 떠올릴 것이다. 홈트와 화상회의, 신속배달로 대표되는 이 분야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라는 말이 떠오르게 한다. 일부 세부 산업분야에 불어닥친 고난의 행군에도 불구하고 비접촉분야의 예상보다 빠른 성장국면으로 인해 스타트업 생태계는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국내에 소개된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비접촉산업의 약진 속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동시에 강력한 모멘텀을 보이고 있는 또 다른 코로나 수혜 산업분야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펫테크 분야이다.
대부분의 경영경제인들은 펫테크 즉 반려동물산업과 비접촉분야간의 상관관계 아니 인과관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역병이 불러온 비접촉풍조가 어떻게 반려동물산업이 새로운 모멘텀을 창출하는데 영향을 미쳤단 말인가? 기실 그 인과관계는 매우 단순하고 동시에 명료하다. 사람이란 원래 집단행동(flock behavior)을 삶의 근간으로 하는 종인데 모임을 비롯한 일상적 집단행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과의 집단행동을 반려동물과의 집단행동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여도 화면과 온라인이 살과 살이 접하고 따뜻한 숨결을 나눌 수 있는 직접접촉을 완전하게 대체하는 것은 요원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반려동물산업의 약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개나 고양이를 분양하는 반려동물분야의 1차산업 즉 분양업은 올해 들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하고 있으며 반려동물에 집중한 펫테크 스타트업들 역시 놀라운 실적 성장세와 투자 유치 규모를 경험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반려동물산업의 이러한 호황은 앞서 언급한 코로나로 인해 파생된 대체적 집단행동의 결과이자 동시에 최근 수년간 국내에 불어 닥친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 열풍과 ‘동물의 인간화’에 중첩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70-80년대 가계소득의 급격한 증가는 개나 물고기, 새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중산층 가정의 숫자를 늘리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사회경제학적 변화를 통해 애완동물이라는 새로운 산업분야가 태동한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애완동물산업은 최근 수년래 뜨겁게 미디어를 달구는 동물권운동을 통해 ‘반려동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동물의 인간화(humanization)를 촉진하였다. 동물의 인간화란 동물에게 인간과 같은 수준의 위상을 부여하여 ‘한낱 동물’이 아닌 작고 털 난 인간으로 대우하는 풍조로 이를 통해 반려동물과 관련된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과 고도화의 길을 걷게 된다. 동물의 인간화는 종이나 연령, 질병에 특화된 동물병원의 출현을 불러왔으며 인간에게 사용되는 글루코사민, 프로바이오틱스 등을 개와 고양이에게 제공하거나 스파, 유치원과 같이 인간의 전유물이었던 업종이 반려동물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등의 방식으로 반려동물산업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올 한해 우리나라의 펫테크 스타트업의 약진은 이른바 펫테크 스타트업 삼대장으로 부를 수 있는 핏펫, 펫닥, 펫프렌즈의 투자유치성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1세대 펫테크 스타트업으로 부를 수 있는 고미랩스와 볼레디 등이 보인 기대 이하의 실적에 실망을 금치 못했던 투자업계는 2세대 삼대장의 출현으로 한껏 고양된 모양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이런 2세대 주자들을 뒤따르는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의 3세대 스타트업들이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년 들어 의미 있는 수준의 씨드 투자를 유치한 기업만 하더라도 유통, 건강관리, 질병진단, 생활케어, 사료 등의 분야에서 20여 개 사를 넘나들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내년 중 프리 시리즈 투자와 TIPS프로그램 등에 선정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그 미래가 더욱 밝다 하겠다.
시장은 사람이 원하고 돈이 몰리는 곳에 형성되고 성장하는 것이 경제학과 경영학의 오랜 진리다. 투자는 급성장하는 미래가치가 큰 시장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통계는 개와 고양이의 숫자가 15세 미만 유아동청소년 인구수를 넘어선 지 오래이며 매년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장은 더 많은 문제와 이런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안을 기대하고 있다. 올 한해 펫테크 스타트업 업계를 한 마디로 정리 하자면 펫테크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의미 있는 해이자 펫테크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단순히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술을 표방하는 것을 넘어 시장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기술을 현실화하고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퍼포먼스를 입증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출현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기술, 경영 모두를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의 출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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