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서고 싶은 사람, 자기 효능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자세를 배우는 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책임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줏대와 자신감을 기를 수 있어요.”
여성 중심 스타트업 커뮤니티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에서는 스타트업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분야의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스여일삶 멤버들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 시리즈, ‘스여일담(談)’의 이번 주 주인공은, 6년 간 영어 강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비대면 진료 시스템 및 건강검진 예약 서비스 개발 스타트업인 ‘비바이노베이션’의 백엔드 개발자가 된 황수미 님이다.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의료 서비스 서버 개발자
비바이노베이션의 웹 개발 솔루션 팀 서버 개발자 황수미 님은 백엔드 팀으로 일하고 있다. 백엔드 팀의 주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유지보수, 웹/앱의 API*작성, CI/CD* 서버 구축으로 나누어져 있다. 황 개발자는 그중에서 DB 유지 보수 및 웹/앱의 API 작성을 주로 담당을 하고 있다.
(API*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
(CI/CD* 애플리케이션 개발 단계에서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 및 배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
비바 이노베이션은 비대면 진료와 건강검진 예약을 서비스하는 곳으로 황 개발자는 이곳에 입사한 지 6개월 되었다. 하지만 매년 이 맘 때쯤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만든 자료를 가져와 회사의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는 일을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라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황수미 개발자가 속한 팀은 여러 기업과 협업하여 일을 진행한다. 기업에서 건강검진 예약, 병원/약국 찾기, 질병 검색 등의 ‘착한 의사’ 고유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면, 해당 요구 사항에 맞춰 신규 API를 만들거나 기존의 API를 수정하여 전달하고 있다. 동시에 사내 타 부서에서 요청하는 데이터를 요청 사안에 맞춰 가공하여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의료 정보를 다루는 서비스 특성상 데이터베이스의 정확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공유할 때마다 백엔드 팀의 손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개발팀이지만 대외 협력 업무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의료서비스의 중요도가 이전과 달라 더욱 분주하다. 황 개발자가 속한 비바이노베이션은 작년부터 몽골 병원과 협업하여 비대면 진료를 해왔다. 대전에 제휴한 종합병원 의사가 몽골 코디네이터를 옆에 두고 자사의 비대면 진료 시스템을 통해 몽골에 있는 환자를 진료한다. 몽골은 의료 시스템이 붕괴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의료난에 시달리고 있어 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했다. 코로나 19가 심각해진 이후, 국내에서는 부산의 코로나 치료센터, 서울성모병원뿐만 아니라 포스텍, 유니스트, 부경대, 고신대 등 동남권 대학권과도 비대면 진료를 시작했다.
“백엔드 개발자가 되는 것.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선택과 의지로 내린 결정이었죠.”
황수미 개발자는 독특하게도 개발자 이전에는 6년간 영어 강사로 일했다. 당시 근무하던 학원은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단어 시험, 문장 암기 등 내신 관련 학습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문제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앱에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았다. 학생들은 무엇이 잘못된 정보인 줄도 모르고 모든 정보를 그대로 수용했던 것. 수강생의 내신 성적이 성과로 직결되기 때문에 당시 황 개발자는 답답함이 컸다. 그래서 오류를 발견할 때마다 개발자에게 수정 요청을 하지만, 답은 항상 늦었다. 처음에는 ‘많이 바쁜가 보다’했는데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하는 생각이 들며 ‘개발자’ 직업에 흥미가 생겼다. 소위 말하는 ‘갑을관계’에서 ‘갑’ 같다고 느꼈다.
당시 황 개발자에게는 그 일이 그 정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비개발 직군 종사자는 개발자의 ‘된다, 안된다.’ 한마디에 ‘그런가 보다.’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번 개발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두고 완전히 다른 직무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실력 있는 영어 강사였을지라도, 정작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쪽에 허전함이 진해졌다. 진정으로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좋다는 것만 하며 목표 없이 ‘그냥’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가 40대가 되면 정말 늦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황수미’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선택과 의지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고민 끝에 개발자가 되어보자고 결심은 했지만, 컴퓨터와 그리 친하지 않았다. 그만큼 엄청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어요.
그는 개발자 중에서도 백엔드 개발자가 되자고 결정했다. 외적인 것보다 본질에 더 집중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결정은 황 개발자가 살면서 처음으로 내 생각과 기준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프런트엔드* 웹 사용자가 보는 화면 개발. 상대적으로 인터페이스의 가독성과 심미성을 중시)
(백엔드* 서버 및 DB 관리 및 개발, 상대적으로 웹 사이트의 성능 개선을 중시)
“황수미라는 사람의 삶을 개발에 오롯이 녹여내고 싶어요.”
개발 비전공자이다 보니 실력을 빠르게 키우기 위해 코딩 부트캠프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공부한 3개월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기도 하다. 보통은 기초를 쌓고 수업에 들어가지만, 황 개발자는 취직을 위해 무리해서 수업에 참여했다. 심하게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팀에 민폐 같아 아주 괴로웠다. 계속해서 자신을 다독여가며, 악착같이 버텨 전 과정을 수료했고 마침 당시 개발자를 모집하던 현재 회사에 바로 취업할 수 있었다.
현업 개발자가 된 이후부터 책임감의 무게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취급하는 데이터의 양과 중요성부터 달라졌기 때문이다. 입사하고 나서 큰 사고를 한 번 친 적이 있는데, 그때 ‘눈앞이 하얗게 보인다’라는 말을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다. 데이터를 다루는 일은 여전히 무섭고, 긴장되지만 언제까지 동료에게 일을 미룰 수는 없기에 다음에도 그 일을 담당하겠다고 자원했다.
처음에는 개발자는 개발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6개월 차가 되니 다른 시선이 생겼다.
황 개발자만의 ‘문과적인 자산’을 활용 해 ‘찐 문과 출신 개발자’라는 개성을 만드는 중이다. 함께 일하는 만큼 효율적인 업무 수행 방식을 익힐 필요는 있지만, 자신의 장점도 잊지 않고 싶다. 황수미라는 사람의 삶을 개발에 오롯이 녹여내려 한다.
“자신감과 책임감을 배우고 싶다면 스타트업을 추천합니다!”
황수미 개발자는 자신을 어떤 키워드로 표현할까? 그는 세 가지 키워드를 뽑았다. 첫 번째, ‘Hope & Action’ : 바라기만 하지 말고 실행에 옮기자는 마음가짐, 두 번째, ‘프로 이사러’ : 그동안 5번 이사했는데, 이제는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 세 번째, ‘행복 바이러스’: 시무식 때 상장을 받았는데, 행복 바이러스 사원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앞으로 더 행복 바이러스가 되고 싶다고 한다.
황수미 개발자는 스타트업을 궁금해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추천한다. 스스로 서고 싶은 사람, 자기 효능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자세를 배우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책임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줏대와 자신감을 기를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이라고 한다.
나의 마음을 따르는 여정은 어렵고 힘들다. 자신을 향한 의구심, 주변의 시선이라는 장애물도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모든 시련을 이기고 전진하는 사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를 그려보면 어떨까? 황수미 개발자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다보면 좋은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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