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해 나가는데, 인간이나 다른 생물들처럼 기업에게도 생애주기(Life Cycle)이 존재한다. 인간이나 기업 모두 각 생애주기 단계에 따라서 신경 써야 할 것, 해야 할 것, 요구되는 역량 등이 모두 다른데, 각 과정을 잘 거치고 그 때 그 때 과업들을 잘 수행해야만 다음 단계로 빠르게, 그리고 원만하게 넘어가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기업의 경영진, 특히 매일 생존을 고민하는 스타트업의 경영진이라면 우리 회사가 지금 어디쯤 도달해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더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항상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 CEO들이 놓치기 쉬운 재무적 관점에서 우리 회사의 생애주기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지, 각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이벤트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이 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 기업의 생애주기
기업의 생애주기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마치 ‘기승전결’ 처럼 4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첫번째로 ‘창업기’, 갓 설립한 단계의 회사로 경영진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운영해 나가면서 회사가 어떻게든 시장에 진입하는데 모든 사활을 거는 단계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개인사업과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시기이기도 하다.
두번째는 ‘성장기’, 회사가 시장 진입에 성공하여 브랜드 인지도도 생기고 제품도 점차 많아지면서 직원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여 좀 더 ‘회사’다워지는 단계이다. 본격적으로 외부투자를 받기 시작하는 단계로 주주 구성이 복잡해지는 시기이며, 매출 성장과 안정적인 이익 확보의 갈래에서 많은 경영진들이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스타트업’은 창업기~성장기에 해당하는 기업을 통칭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세번째는 ‘성숙기’, 이제 누구나 아는 회사, 브랜드가 되었고 회사보다는 ‘기업’ 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현재뿐만 아니라 3년, 5년, 10년뒤 미래의 먹거리나 전략에 관심이 많아지고, 기업의 지배구조나 조직 변화가 많아지는 시기로서 업력이 오래된 중견기업~대기업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기업들이 보통 이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직이 거대해지면서 의사결정이 보수적이 되고 조직이 관료화 되기도 쉽다.
마지막은 ‘쇠퇴기’, 회사가 선도해 나갔던 시장이 쇠퇴하거나, 세상의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하거나, 다른 후발 주자에게 역전당하거나, 내부적인 문제에 휩싸이거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쇠퇴기에 접어든 회사는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업과 인간의 생애주기의 근본적으로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업 생애주기는 인간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일정한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던 기업이 혁신에 성공하여 다시 성장기에 접어들 수도 있다. 거듭되는 혁신과 노력으로 성숙기 단계를 오랜 기간 유지하는 기업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창업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10년, 15년을 보내는 기업도 존재한다. 따라서, 각 단계를 시간 떼우듯 보내게 되면, 다음 단계가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퇴행하거나, 아예 곧장 쇠퇴기에 접어들기도 쉽다.
◆ 생애주기의 재무적 구분
경영진이라면 위 생애주기 설명을 들으면서 본능적으로 그리고 체감으로 충분히 우리 회사가 지금 어느정도 위치에 있는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객관적으로 단계를 식별할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아래 재무적 구분 기준 3가지를 따져 본다면 가장 간단하면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회사의 현재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주주 구성
창업기에 주주는 초기 멤버로 구성된다. 1인 주주나 가족, 혹은 동업자들만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혹, 엑셀러레이터 등 극 초기 투자자들이 주주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창업기를 잘 넘기고 성장기에 돌입한다면 IR을 통하여 소위 말하는 시리즈A~B 단계의 외부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외부 자금 없이도 탄탄하게 성장하는 케이스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창업기와의 차이는 창업기에는 외부자금을 ‘못’ 받던 것이고, 성장기에는 의사결정으로 ‘안’ 받는 점에 있다. 성숙기에 어느정도 접어들면 시리즈C와 같은 대규모 투자 자금이 들어오거나 IPO등을 통하여 주주를 공모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성숙기 단계에서 초기 창업자들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주주로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성숙기에 충분히 접어들면 특별한 이슈 없이는 주주 구성 변동이 크지 않게 된다. 쇠퇴기에는 더 이상 새로운 주주가 나타나지 않고 기존 주주가 지분을 정리하고 빠져 나가는 흐름이 이어진다.
- 매출과 순이익
창업기에는 매출의 성장세가 크지 않고 초기 투자자금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손실을 근근이 보전하면서 버텨 나가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에 돌입하면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손실이 이익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발생하기 시작한 이익을 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성장의 가속도가 붙게 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쿠팡처럼 큰 규모를 요구하는 산업에 진출한 기업은 성장기에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은 매출의 성장세가 다시 둔화되기는 하지만 안정적으로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쇠퇴기에는 매출과 이익이 모두 꾸준하게, 때로는 갑작스럽게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 현금흐름
재무제표 중 현금흐름표는 작성의 어려움로 인하여 스타트업들이 활용하기는 어렵지만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 이상으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현금흐름표는 기업의 현금(예금) 증감을 영업, 투자, 재무 3가지 부문으로 크게 나누어 보여준다. 복잡한 개념이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업은 말 그대로 회사의 사업의 본질적인 활동, 투자는 유무형자산이나 주식 등과 관련한 활동, 재무는 차입이나 증자와 같은 외부자금조달 활동을 의미한다.
창업기에는 영업과 투자에서 (-), 재무 부문에서 (+)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얘기하면, 그것이 자본이든 부채든 재무활동으로 조달된 자금을 활용하여 투자도 하면서 영업활동에서의 손실도 메꾸는 것이다. 성장기에는 투자와 재무 현금흐름은 보통 변화가 없지만 영업 부문에서 (+) 가 나기 시작한다. 서서히 회사의 영업활동에서 더 이상 손실이 나지 않고 잉여현금이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업의 특성이나 구조에 따라 재고자산이나 매출채권 증가로 인하여 매출과 이익의 증가가 현금 증가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다.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은 영업에서 (+) 현금흐름이 이어지면서 재무 부문에서의 현금흐름이 (-) 로 전환된다. 성장기까지 조달해온 자금을 사업을 통하여 획득한 자금으로 상환할 여력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사업의 종류에 따라서 투자 부문은 (+) 가 나기도 하고, (-)가 나기도 한다. 삼성전자 같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 반드시 큰 투자가 필요한 기업은 아무리 성숙기라 하더라도 투자현금흐름에서의 (-) 가 이어지고 또 이어져야 한다. 쇠퇴기에 접어든 기업은 재무 부문은 (-)로 유지되지만, 영업 부문에서의 현금흐름이 다시 (-) 로 전환되고 투자부문에서의 현금흐름이 (+),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쉽게 말해서, 영업활동에서의 손실과 조달한 자금의 상환을 위해 그 동안 투자해둔 여러가지 자산을 현금화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긴 이야기였지만 표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생애주기별 재무 이벤트
창업기의 기업은 일반적으로 특별한 재무적 이벤트를 겪지 않는다. 외부 투자가들어올 가능성이 낮아 기업의 생존, 즉 당장 고정비를 커버하기 급급하여 재무적 이슈는 중요성이 떨어진다. 재무제표도 일단 세금 신고를 위해 외부 기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에 다다른 기업은 재무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더 이상 경영진의 직감으로 기업을 운영하는데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또한 외부 자금 조달이 본격화되면서 회사 재무/경영 관리의 중요성이 커져 간다. 창업기에 관심 없던 재무제표를 정리하면서, 단순하게 감으로 알고 있던 제품별/브랜드별 공헌이익과 손익분기점 등을 보다 구체적인 data로 분석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내부적으로 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해서,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외부투자를 위해서도 단순한 감이 아니라 숫자로 많은 것을 확인하고 입증해야 한다. 회계팀이 생기게 되고 관리업무를 점차 내재화하기 시작하고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외부전문가의 자문과 도움이 필요해지기 시작한다. 성장기에 완전히 진입할 때를 전후하여, 투자자의 요청에 따른 임의감사 혹은 법정감사 등 외부감사를 받기 시작한다. 성숙기의 기업은 외부감사는 기본이고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용이 필요하며, 이익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면서 정기적으로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 회사에 별도 세무팀이 생기기도 한다. IPO, 합병이나 분할, 해외 진출 등 보다 큰 스케일의 이벤트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으며, 재무와 관련된 이벤트라면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다. 쇠퇴기에는 성숙기의 이벤트에 더하여 새로운 사업부 매각이나 기업 청산 등의 이벤트가 주로 발생한다.
◆ 생애주기별 재무적 역량
창업기의 기업은 특별한 재무적 이벤트를 겪지 않으며, 재무적 역량 또한 요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단계의 기업은 외부기장과 필요한 경우 간단한 월자문 등을 통하여 대부분의 이슈를 핸들링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가 되면 그 동안 그렇게 상대적으로 후순위였던 재무제표 작성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실사, 감사 등을 통하여 재무제표를 외부전문가로부터 검증받는 일이 잦아진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매출이나 이익, 총자산, 순자산 규모가 급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늘어나는 경우도 없진 않으나 일반적으로 줄어든다). 뿐만 아니라, 월별 매출과 손익, 제품별/브랜드별 공헌이익과 손익분기점 관리를 위한 data 산출 및 분석 등의 관리회계 측면의 중요성도 부각되어 프로세스 정립이 필요하다. 창업기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던 재무회계와 관리회계 역량 모두의 중요성이 갑작스레 커져가는 단계에 해당한다. 최소 회계팀장 혹은 CFO를 뽑고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자문이나 용역을 받기 시작하며, 외부감사를 받는 경우에는 일반기업회계기준에 따른 더 상세하고 정확한 재무제표 작성 능력도 요구된다. 외감 정도에 다다르면, 외부기장 보다는 회계팀을 직접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성숙기에는 상장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일반기업회계기준이 아닌 보다 복잡한 K-IFRS 재무제표 작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규모나 상장 여부 등에 따라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 및 운용이 필요하고, 세무조사를 통하여 몇억~몇천억의 자금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최근 세무조사를 받은 삼성전자의 추정 추징액은 5,000억). 회사의 운영방향에 따라 재무와 관련된 모든 이벤트가 일어날 수 있고, 당연히 그에 따른 모든 역량이 필요하다. 쇠퇴기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추가로 필요하기보다는 그 동안 해온 것들을 회사의 흥망성쇠와 관계없이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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