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에 친환경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K2,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등 국내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리사이클 소재의 제품들을 내놓고, 해외에서도 나이키, H&M 등 글로벌 브랜드가 친환경 섬유 사용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는 등 친환경 패션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일상에서 사용 후 버려지는 리사이클 소재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산업 현장에서 쓰이지 않고 버려지는 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 시장을 개척하고 직접 패션 브랜드까지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어 만나봤다.
라잇루트(대표 신민정)는 폐 2차 전지 분리막을 재활용해 고기능성 소재인 ‘리셀+’(RECELL+)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한 원단은 물론 패션 제품까지 직접 개발 중인 친환경 사회적 기업이다.
전기차, IT기기 등 전기를 필요로 하는 기기에 쓰이는 배터리에는 양극과 음극을 분리해 주는 특별한 분리막이 필요한데, 높은 정밀도가 요구되는 제품이라 약간의 결함에도 버려지게 된다. 라잇루트는 이 버려지는 분리막이 미세한 구멍들을 지니고 있어 고어텍스 수준의 투습성, 방풍성, 방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활용해 새로운 원단으로 재탄생 시켰다.
신민정 대표는 원래 디자이너 인큐베이터 분야에서 청년 디자이너들을 도와 함께 옷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이를 새로운 분야에 대해 탐색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차 전지 분리막 업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생산 과정에서 쓰이지도 않고 그대로 폐기되는 분리막의 수가 많다는 사실과 코어텍스와 비슷한 구조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샘플을 요청해 확인했다.
이후 폐 2차 전지 분리막을 이용한 리사이클 소재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체 소재 개발을 시작하게 됐고, 1년 정도 준비 후 2020년 12월 환경부와 SK이노베이션이 함께 한 ‘환경분야 소셜 비즈니스 발굴 공모전’에서 최종 선정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와 많은 정보를 교환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재 개발에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2021년 3월 신소재의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고, 10월에는 리셀+를 제작 유통하는 리사이클 브랜드인 ‘텍스닉’(TEXNIC®)도 런칭했다. 11월 말에는 텍스닉의 2차 전지 분리막 재활용 소재인 리셀+를 활용한 의류 브랜드 ‘로어'(loeur)도 런칭할 예정이다.
의류 브랜드까지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서 신민정 대표는 리셀+가 재활용품을 녹이는 등 재가공 해서 원단으로 만드는 기존 방식과 달리 폐 분리막을 그대로 활용해 만드는 새로운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 판매된 적이 없는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물론 이 소재를 활용해 의류를 만들어야 할 기존 의류 기업들도 낯설어 한다는 것이다.
의류 기업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영업을 하기 전 소비자들에게 직접 공급해 현장 반응을 확인하고 시장 인지도도 만들어 가고자 로어를 만들었다. 물론 단순히 시장 모니터링용 브랜드는 아니고 실제로 리사이클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텍스닉은 2차 전지 분리막을 활용한 리셀+ 외에도 리사이클 폴리, 리사이클 나일론, 리사이클 면, 생분해 소재까지 다양한 리사이클 소재를 모두 다룬다.
라잇루트의 기술은 해외에서도 이미 주목받으며, 2022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 ‘CES 2022’의 ‘웨어러블 기술’ 분야 CES 혁신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CES를 주관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전시에 앞서 출품작을 사전에 평가해 우수한 제품, 서비스 등에 혁신상을 수여한다.
라잇루트는 미리부터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까지 특허 출원을 완료한 상태로, 국가공인 FITI시험연구원에서 기능과 유해물질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물론 해외 GRS(Global Recycle Standard) 인증도 획득했고 오코텍스(OEKO-TEX)도 인증 진행 중이다.
이번 CES 혁신상 선정을 통해 해외 시장 공략에 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신민정 대표는, 리사이클 소재에 좀 더 관심이 높은 유럽 시장을 2022년부터 우선 공략할 예정이다. 이미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리사이클 소재 이용에 대해 공언한 상태이기도 해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고, 라잇루트의 리셀+와 같은 고기능의 리사이클 소재는 드물기 때문에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신민정 대표는 리셀+가 2가지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리사이클 소재이니 리사이클의 의미가 크고 제한적인 공급에 기능도 무난한 정도일 것으로 생각되거나, 기능 설명의 예시로 종종 고어텍스를 이야기하다 보니 고어텍스의 대체품으로 기대 받곤 한다고 전했다.
우선 쓰고 버려진 재활용 쓰레기 중 적은 비율의 적합한 재료를 골라내야 하고 그걸 다시 재가공해서 소재로 만들어야 하는 다른 리사이클 소재들과 달리, 리셀+는 쓰고 버린 재활용품이 아닌 생산 단계에서 걸러진 소재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라 품질도 우수하고 수량도 풍부하다.
그리고 고어텍스처럼 투습성, 방풍성, 방수성을 지닌 고기능 소재인 것은 맞지만 그 외에는 특징이 다른 별개의 소재로 봐야 하며, 유연성이 강한 고어텍스와 달리 내구성이 강해 단단한 아우터에 적합한 소재로 봐야 한다.
신민정 대표는 다양한 재활용 기술을 개발해서 사람과 지구에게 이로운 리사이클 소재들을 제공하는 것이 라잇루트의 목표라며, 우선 2자 전지 외에도 국내외 다양한 산업에서 발생하는 폐 분리막을 모두 수거해 재활용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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