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고문은 아산 기업가정신 리뷰(Asan Entrepreneurship Review, AER) ‘재활용 생태계를 재편하는 소셜벤처 – 수퍼빈’, 저자: 김유경 사례의 일부 내용을 발췌 및 재구성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례는 AER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고자의 주장이나 의견은 벤처스퀘어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청년창업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에서 오랜 시간 몸담고 있다 보니 스타트업 대표들의 프리젠테이션과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들을 기회가 많이 있다. 초기 창업자들의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하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따금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창업자와 팀이 해당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속한 산업생태계와 생태계 내 역학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에만 집중해 시장의 큰 그림을 보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할 때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의료기기 제품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을 예로 들어보자. 의료 산업에서 의료기기 사용자는 환자이지만, 구매 요청은 의료인, 대금 지급은 보험공단과 같은 공공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팀 구성과 혁신적 제품 개발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산업생태계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는 이유다.
때로는 소비자와 구매자가 일치하여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창출된 가치가 고스란히 최종 소비자에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수다. 유아학습 교육용 소프트웨어의 소비자는 ‘유아’지만, 구매자는 ‘학부모’다. 코로나 백신의 구매자는 ‘정부’지만 의료인의 처방과 처치를 거쳐 최종 소비한 사람은 바로 ‘국민’이었다. 이렇듯 여러 관계자가 관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그것이 혁신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메사추세스공과대학(MIT)의 포레스터(Forrester, 1997) 교수는 산업생태계의 복잡한 구조에 주목해 이를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를 통해 설명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나무보다는 숲을 바라보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한다. 개체의 개별 특성이나 세부사항에 주목하기보다는 거시적 역학 관계에 관심을 두고 문제를 해결한다. 즉 시스템 내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추고 각 구성 요소 간 순환적 인과관계와 피드백을 추출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회현상이나 여러 이익집단이 공존하는 복잡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복잡한 산업생태계로의 진입을 고민하는 스타트업들에게도 시스템 다이내믹스 기반의 사고방식은 도움이 된다.
2015년 폐기물 재활용 방법의 혁신을 고민하며 등장한 스타트업 ‘수퍼빈’은 생태계 내 이해관계자들의 연결고리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합해 성장을 이루어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 이론으로 설명하기에 적합한 사례다.
수퍼빈 김정빈 대표는 삼정KPMG 컨설턴트, 한국섬유기술연구원(KOTITI) 전략기획본부장, 코스틸 대표이사 등을 거친 소재 산업 전문가로 재활용 폐기물의 프로세스 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었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수거율은 높지만 재활용률은 높지 않다. 즉, 우리가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수거는 되지만, 실제로 재활용되는 양은 대단히 적으며 대부분은 소각되어 버린다.
안타깝게도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 생태계는 구조는 있지만 동작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폐기물의 중간 유통에 있었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수거 및 선별의 과정을 거쳐 재활용 단계에 도달하는데, 수거업체와 선별업체의 참여가 미온적이었다. 그들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폐기물 재활용 생태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요인이 부족했다. 이들이 주도하는 생태계는 ‘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선형경제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수퍼빈은 일방향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해체해 관계집단 간 연결고리를 만들고 아래 그림과 같이 순환경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스마트 쓰레기통 ‘네프론’은 수퍼빈이 제시하는 ‘순환경제’의 첫 마중물이었다. 네프론은 페트병을 자동으로 분류, 압축, 수거하는 쓰레기통으로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재활용 가능한 페트병을 자동으로 판독한다.
네프론은 수거된 페트병에 병당 10~20원가량의 경제적 보상을 지급하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공 영역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보였다. 지자체들이 네프론을 도입해서 시범사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과 공공기관의 자발적 변화에 재활용 플라스틱 유통업체들, 즉 수거 및 선별업체들도 변화의 흐름에 주목했다. 생태계 내 모든 관계자의 능동적 참여가 이루어지며 자연스레 순환경제의 연결고리가 공고해진 것이다.
수퍼빈의 사례는 헬스케어, 모빌리티, 교육 등과 같은 복잡계 산업으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생태계 내 각 참여자에 대한 유인책의 선택과 연결고리의 형성에 있어 시사점을 던져준다.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는 순환경제의 핵심가치는 ‘경제적 유인’과 ‘사회적 당위’라고 말했다.
수퍼빈의 핵심가치가 순환경제를 만드는 모든 스타트업들에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수퍼빈의 사례처럼 복잡계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들은 생태계 내 관계자들과 호혜적인 공존을 위한 가치를 스스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한다면 동종 생태계에서 이미 오랜 시간 활동하고 있던 관계자들의 거센 반발을 맞이하며 당혹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태계 내 관계를 순환경제로 도식화해보는 시스템 다이내믹스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선순환 구조의 여러 가능성을 모색하고 순환경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면,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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