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한 고즈넉한 골목에 자리잡은 오래된 한옥이 있다. 간판도 없이 작은 가게들 사이에 위치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골목 안 입구부터 남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전통과 현대가 보기좋게 조화를 이루는 서울이지만 ‘마을’ 느낌을 주는 서촌 어귀에 차분하고 오붓한 로컬 기업 서간의 식물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다.
식물 스튜디오는 쉽게 말해 ‘식물 편집숍’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꽃집, 꽃가게는 식물이나 꽃을 대량으로 매입해 그대로 판매하는 형태지만 식물 스튜디오는 식물을 다시 디자인하고 가공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서간은 식물을 대량 매입, 대량 판매하는 방식보다는 식물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화분이나 이끼, 돌 배치 등을 고려해 디자인해서 선보이고 판매하는 공간입니다. 자연과 식물 ‘덕후’였던 제가 집에 더는 애정하는 식물들을 놓을 공간이 없어지자 나만의 식물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창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서간 유상경 대표는 그저 식물을 가까이 두고 기르는 것 자체보다는 식물 본연의 아름다운 선이나 실루엣을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식물 마니아다. 식물이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차별화된 식물 스튜디오를 오픈한 것도 이런 감정을 소비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실제 코로나19 이후로 집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지고 길어지면서 식물로 집안을 장식하는 플랜테리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오랜 시간 머무는 집 공간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고 살려는 수요가 높아지면서 식물은 소비자들이 반드시 고려하는 인테리어 ‘옵션’ 중 하나로 떠올랐다.
플랜테리어에서 주로 활용하는 식물들은 크게 관엽과 분재로 나뉘는데, 유 대표의 주력 분야는 분재다. 관엽은 크기가 크고 집 전체의 인상을 바꿔주는 ‘무드적’ 요소가 강한 반면 분재는 어떤 공간에 뒀을 때 ‘오브제’ 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 서간에서 전시하고 판매하는 분재들은 집 현관 입구나 거실, 서재 등에 두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디자인이 되는 흔히 보기 힘든 개성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분재에 쓰이는 식물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들입니다. 식물로 ‘한국적인 미’를 드러내는 요소도 강하다고 볼 수 있죠. 한국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골동품 모으듯이 화분이나 화분을 올려둘 고가구를 사모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서간에서 판매하는 분재 식물들은 3~4만원대부터 30~40만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해당 나무의 연륜과 형태, 수종 등이며 희소할수록 값어치가 올라간다.
서간이 서촌에 기반을 둔 로컬 기업으로 출발한 것은 식물이 가진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서촌 주민들과 서촌을 찾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느리게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잘 어울리는 서촌에 꼭 맞는 웰리스 사업으로 키워 나가기에 서촌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지나가다 편히 들러 분재를 살펴보고 서간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클래스에도 참여해 식물을 알아가는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사업을 통해 공간을 오픈하면서 지역적 특색과 가치를 담은 공간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로컬 크리에이터 사업은 기술 기반이 아닌 서간처럼 무형의 가치를 콘텐츠화하고자 하는 스타트업도 알아봐주고 지원해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서간의 목표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지속가능한 식물 스튜디오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서간에서 여전히 유효한 오래된 한국적인 것들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리는 게 유 대표의 목표다.
2023년에는 식물 스튜디오의 본격적인 운영을 통해 식물과 어우러질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영역과 전시, 행사 기획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다.
서간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관하는 2022년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수도권 로컬 맞춤혐 액셀러레이팅 지원 프로세스를 통해 로컬 기업의 역량 강화 지원과 사업화 자금 등을 지원받고 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국내 최대 창업지원 클러스터인 창업존을 운영하며 수도권 지역 내 유망 창업자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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