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주 간단한 질문이다.
당신이 지금 대학생이라면 창업을 하겠는가.
아마도 대다수가 ‘싫다’ ‘글쎄’ ‘그럴 준비가 안 돼 있다’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로 빠져나올 것이다. 묻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요즘 창업을 도와준다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한 언론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실렸는지는 확인 안해봤다) 모바일 창업 컨퍼런스를 매일경제신문과 함께 준비하면서 쓴 글이다.
지금 벤처붐이 버블이 아닌 이유
10여 년만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의 IT 인터넷 벤처 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최근의 ‘벤처를 살리자’, ‘창업 기업가를 육성하자’ 등의 구호가 낯익을 것이다.
오는 5월 26일 치러지는 ‘모바일 창업 컨퍼런스’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익숙한 행사 처럼 비쳐질 것이다.
하지만 다르다. 조금만 주의 깊게 눈여겨본다면 지난 10년 전 벤처붐과는 확실히 질적으로 양적으로 완전히 환골탈태하고 있는 한국의 벤처 생태계를 만날 수 있다.
초기 인터넷 벤처붐의 주역은 산업사회 역군들이었다.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익숙하지 않은 지식 서비스에 몰입했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무차별적인 마케팅을 실시했다. 정부는 벤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지만 육성 자금은 들쭉날쭉했으며 시장에서는 시어머니 처럼 까탈스러운 문서작업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른 바 ‘꾼’들만 노리는 화수분 노릇을 했다.
시장 투자자들은 언론의 일방적인 홍보에 혹해서 투자 대상 기업의 사업모델과 비전, 인력 구성에 관심도 없이 눈먼 돈을 쏟아 넣기 바빴다. 그것도 기업가들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등 투자금은 금세 사채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수익모델에 대한 압박으로 몇 년 못 가서 구조조정과 인수 합병을 거치는 악순환 고리에 빠지곤 했다.물론 이 때 살아남은 기업들은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대다수 벤처들은 벤처붐이 버블이 되었다 한방에 꺼져버리는 끔직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벤처에 관심을 갖고 벤처 기업인을 육성하는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직접 멘토가 되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팀이 아직 꾸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벤처 기업가를 교육시키고 초기 투자까지 감행해주는 조직이 있다. 엔젤 투자 인큐베이션 네트워크 ‘프라이머’ 그룹은 이니시스, 다음 커뮤니케이션 창업자 등이 직접 젊은 벤처 사업가를 발굴하여 투자한다. 이들은 기업 공개 등의 엑시트(Exit)을 경험한 인사들이어서 실질적인 창업 기업가 교육(엔턴십)을 하고 있다.
또한 첫눈 등을 창업한 장병규 대표가 본엔젤스를 통해 초기 단계의 벤처 기업들에게 투자 지원을 하고 있다.
네오위즈 인터넷은 최근 창업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인 ‘네오플라이’를 부활시켰다.
‘고벤처’는 벤처들끼리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신생 벤처에 멘토링과 함께 투자를 집행한다.
‘벤처스퀘어’는 벤처들이 기성 언론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사업 이야기를 하고 벤처 기업을 도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의 품질 높은 칼럼을 공급하는 미디어로 순항중이다.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벤처투자자들과 벤처인들 사이의 실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 교류도 활발하다.
지금 벤처 기업들이 외롭지 않은 이유다.
10년 전 닷컴버블을 핑계로 창업을 두려워 하는 청년들과 예비 창업가들에게 이제는 환경이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시 불고 있는 벤처붐, 10년 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강하다.
확실히 그렇다.
심지어(?) 벤처를 컨설팅하며 돕겠다고 나섰다가 도움을 바라는 벤처가 별로 없어서 직접 벤처를 하는 레몬컨설팅의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를 제쳐두고라도 산업이 벤처를 돕겠다고 준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언제부터인가 ‘벤처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창업을 한다고 하는 친구들의 대다수는 아이디어 공모전 등에서 수상하여 상금과 이력서에 올릴 수상 경력 한줄만을 원하지 직접 창업을 하지 않는다.
어제 여의도에 있었던 쉐어링데이에서 만난 한 서울시내 대학교 창업동아리 관계자와 식사를 하면서 잠시 나눈 이야기도 그렇다. 창업 동아리에서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라고 물었을 때 어쩌면 우리는 대답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1. 부모의 반대 : 그냥 공부해서 공무원을 하든가 안정된 직장을 다녀라. 넥타이 매고 무난하게 살아라.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그런데 돈 까먹고 시간 낭비하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성공 가능성도 낮은 창업을 누가 바라겠는가.
2. 애인, 또는 반려자의 반대 : 함께 사는 사람이 누구든, 아내든, 남편이든, 애인이든 운명 공동체인데 반려자가 위기에 처하면 당연히 함께 그 위기 속에 묻혀버린다. 누가 원하겠는가. 일단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정석이다.
3. 선배의 반대 : 창업해봤던 선배, 또는 ‘내가 좀 아는데’라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그거 쉬운 거 아냐. 내가 아는 사람은… 어쩌구. 지난 번에 어떤 선배는 집도 날리고 어쩌구… 세상의 모든 사건사고가 내 주변에서 일어난 것 처럼 부정적으로 말해준다. 또는 성공한 사람은 오히려 신격화된다. ‘그럴만한 사람이었어’ ‘정말 대단했지’ 성공한 사람은 슈퍼맨으로 묘사된다. 그 사람들을 따라하면서 열패감을 느끼기보다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런 인간적인 상황을 뚫고 나서 창업을 결심해도 난관은 계속 생겨난다. 자금 문제, 인맥, 영업, 경영 등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우리는 ‘대학생’에게 창업을 요구하는가. 수많은 해외 성공 기업가들이 대학을 중퇴하거나 대학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을 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어쩌면 당연한 바람일 수 있겠다.
하지만 젊은 영혼들에게 창업을 요구하는 것보다 은퇴를 준비하는 시니어 계층과 10년 이상의 전문가 집단의 창업을 도와주고 장려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젊은 영혼들에게는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학자금 대출 등 빚에서 벗어나게 하고 좋은 일자리의 취업을 도와주고 사회적인 경험을 더 많이 쌓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벤처스퀘어에서 고등학생 출신 창업가인 위자드웍스/루비콘게임즈 표철민 대표의 인터뷰 가운데 청년 창업에 대한 위험성 대목을 가져와보자.
학생 창업을 무조건 부추겨서는 안된다. 사장이란,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만약 개인사업자로 경험삼아 해보겠다고 하면 그건 얼마든지 해도 좋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걸고 할거면, 정말 준비됐는지부터 돌아보고, 진지하게 따져보고 해야 한다. 무조건 하라는 사회 분위기가 좀 우려스러운 이유다.
인생을 걸어야 하는 창업.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맞다. 어쩌면 창업 자체가 목표일 필요는 없다. 창업 자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창업을 왜 해야 하는지, 정말 자신이 생각한 아이템으로 창업이 가당키나 한지, 자신이 남의 인생을 책임질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창업한 뒤에 창업의 안정성과 기업의 원할한 영업 활동을 도와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정책자금으로 먹고 사는 창업가들은 한 두 달 동안 정부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문서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나 지방정부는 2년, 3년 동안 임대료도 깎아주는 벤처 인큐베이팅 센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임대료 싸게 사무실 임대해주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러면서 지분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다.
거꾸로 보면 그런 임대료 비용도 감당 안 되고 인맥과 영업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고 컨설팅을 받아야 제대로 일어설 수 있는 기업이 과연 ‘생존력’을 갖춘 준비된 기업인가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창업한 대졸자들을 취업률에 포함시켜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를 노리고 있지만 과연 창업한 사람들은 충분한 ‘밥벌이’를 하고 있는가.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힘겨워하는 대학생 창업가들을 일으켜 세울 수는 있겠지만 과연 걷는 것까지 도와주어야 하는 것일까?
창업. 인생을 걸고 하는 스포츠 같은 것이다. 내 기초 체력이 되지 않는데 거대한 역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대학생들에게 과연 창업을 장려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대학생들에게 창업을 장려하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인생’을 걸 수 있는 사람에게 마인드와 기초체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해주는 것도 선배 기업가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