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UI는 보기 좋은 떡이다!

동료 두 명이 회사에서 사용하는 웹 시스템에 RIA를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찬반양론으로 갈려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결론은 서로의 입장만을 확인하는100분 토론처럼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확실히 기억나는 쟁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회사에서 사용하는 웹 시스템이 예쁠 필요가 있냐?” 는 것입니다.

이 질문 자체가 “RIA를 회사에서 사용하는 웹 시스템에 적용하는 게 적절한가?” 하는 토론 주제와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 차치하더라도, 이런 질문을 통해서 개발자들이 회사 시스템을 바라보는 일종의 편견을 느꼈습니다. 즉, 일반인이 사용하는 ‘네이버’ 나 ‘다음’ 과 같은 포털 서비스도 아니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인데 굳이 ‘예쁠’ 필요가 있냐는 편견이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이스라엘 과학자 노엄 트락틴스키(Noam Tractinsky)는, 일본 연구원들이 실시한 실험 결과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일본 연구원들은 현금인출기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구성, 작동방법이 똑같지만, 일부 현금 인출기는 버튼, 화면을 예쁘게 꾸미고 다른 현금 인출기는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연구를 수행해서 사람들이 예쁜 현금 인출기가 쓰기 쉬운 것처럼 느낀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트락틴스키는 이 연구 결과를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라고 간주했죠. 그래서 일본 연구자들이 수행한 것과 동일한 실험을 이스라엘에서 수행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심미성이 사용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기대했지만, 일본에서 얻은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아름다움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왜 일본과 동일한 결과를 얻었을까요?

31가지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는 가게를 방문할 때면, 전 항상 기적을 경험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31가지에 가까운 선택지를 두고서도 순식간에 자신에게 가장 적당한 선택을 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행위입니까? 그것도 ‘주어진 재화로 효용을 극대화’ 하라는 경제학원론 시간에 배운 법칙대로31가지에 가까운 아이스크림 가운데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단 몇 초 만에 선택한다니 말이죠.

이런 기적 같은 일은 어디에서나 매일같이 일어납니다. 가족과 함께 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메뉴 가운데, 우리는 몇 분 정도를 고민하고 예산 범위 내에서 가족에게 가장 큰 효용을 주는 메뉴를 선택합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다양한 개인용 전자제품, 다양한 선택사양의 자동차 가운데, 우리는 물론 오랫동안 고민을 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선택을합니다.

안토니오 다마시오(Antonio Damasio) 교수는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 손상을 입은 엘리엇이라는 환자를 관찰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냈습니다. 엘리엇은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했지만, 결정하는 상황에서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해서 자신과 가족을 곤경으로 몰아갔습니다. 엘리엇을 관찰함으로써 다마시오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감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즉,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무방할 때 선택을 내릴 때 중요한 것은 감정이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31가지 아이스크림 가운데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전자제품, 자동차들 가운데서 적당한 것을 고르는 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감정 때문입니다. 즉, 비이성적인 감정 덕분에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주변 조건들이 모두 같을 때, “밥 먹을래? 빵 먹을래?” 하는 질문을 들으면, 선택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런 선택을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감정에 대해서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듯합니다. 여기서 간단하게 감정에 대해서 정의하겠습니다. “너 나한테 감정 있어?” “난 감정도 없는 사람인지 알아?” 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감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감정(emotion)은 신념과 관련되거나 일시적인 심리상태를 가리킬 때도 있습니다. 신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감정이고, 일시적인 심리상태는 즐거움, 분노, 질투처럼 상황에 따라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성(affect)은 무엇일까요? 감성은 일시적인 심리상태를 느끼는 능력입니다. 즉, 슬픔, 분노, 즐거움, 질투, 사랑을 느끼는 능력이죠. 따라서 감성은 신념처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관련이 없습니다. 신념은 대개 계속되는 것인데, 감성은 일시적인 심리상태를 느끼는 능력이기 때문이죠. 감정과 감성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보면, 우리가 훌륭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감성이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성은 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인지(cognitive)에도 영향을 줍니다. 냉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수술 능력을 지닌 외과의사가 같은 병에 병의 진행상태도 똑같지만, ‘아무런 관계도 없는 환자를 수술하는 경우’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을 수술하는 경우’ , 어느 경우에 이성을 잃지 않고 평소 실력을 발휘해서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까요?

‘관계가 없는 환자’ 인 경우, 환자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이 마취 상태로 앞에 있다면, 메스조차 들기 힘들 정도로 두려움에 떨지 모릅니다. 이것처럼, 감성은 사람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즉, 기분이 좋으면 좋은 판단을 하도록 감성이 인지 시스템을 도와주며, 반대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감성이 인지 시스템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나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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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제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인데 굳이 ‘예쁠’ 필요가 있냐?” 하는 생각을 편견이라고 말한 이유를 아셨나요? 회사 시스템이 예쁘면 그 시스템을 사용하는 회사원들의 기분이 좋아지고 좋아진 기분 덕분에 판단을 잘해서 회사의 전체적인 생산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회사 시스템도 예쁘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보기좋은떡이맛있다!” 라는 선조들의 이야기는 그냥 그런 속담이 아닌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지닌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네요.

다음 글에서 계속…



이 연재는 이미 출판된 겸손한 개발자가 만든 거만한 소프트웨어의 글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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