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사와 관련한 포스팅은 잘 하지 않느데, 오늘도 도저히 글을 올릴 수 없는 사건이 있었네요. 최근 잘 아는 IT 기자분이 IT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기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납니다.
스티브 잡스가 공식적으로 애플의 CEO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왠만한 나라의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도 이렇게 커다란 뉴스가 되지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그가 우리 인류에게 미쳤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경쟁사에 계신 분들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그가 이룩했던 많은 자산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PC의 시대를 열면서 약관 26세의 나이로 세계를 호령했으며, IBM의 PC 시장 참전과 그들의 공격적인 개방형 전략에 밀리면서 1986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던 1기와 픽사와 넥스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면서, 디즈니와 합병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업계에서도 이 시대 최고의 전설적인 기업의 개인 최대주주의 자리에도 올랐던 2기. 그리고,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망해가는 애플을 PC중심의 업체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위시로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최고의 기기와 이를 지원하는 생태계를 디자인하고 구현하여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활시킨 3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룩한 업적은 하나의 글로 옮기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가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애플의 차세대를 뒤에서 조언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ZDNet에서 그가 CEO로 활약했던 시기를 셋으로 구분을 하면서 제작한 비디오입니다. 비록 자막은 없지만, 영상만으로도 그의 업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자막작업을 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의 뒤를 이어 애플의 선장을 맡을 주인공은 그동안 애플의 COO를 맡았던 팀 쿡입니다. 팀 쿡은 알라바마 출신으로 1960년생이나 스티브 잡스보다 5살 아래입니다. 남부의 명문인 듀크대학 MBA 출신으로 12년간 IBM의 PC 부분에서 일을 했고, 그 후에는 세계적인 PC 제조업체인 컴팩에서 재료부분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가, 스티브 잡스에 의해 스카웃되어 애플에 입성하였습니다.
팀 쿡이 애플에 입사해서 맡은 일이 바로 SCM(Supply Chain Management) 이었습니다. 팀 쿡이 입사해서 애플의 공급체계를 확인하니 무려 100개가 넘는 업체에서 부품을 구매하고 있었습니다. 팀 쿡은 이를 정리해서 대부분의 부품을 아일랜드와 중국,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가져오고 조립은 중국 본토에서 하도록 일원화하면서 부품 공급업체의 수를 20여개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부품 공급업체와 애플의 조립공장이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깝게 위치하도록 해서 부품이 들어오면 거의 바로 조립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조의 효율화를 이루어냅니다. 이런 개혁조치를 통해 애플이 가지고 있던 70일치가 넘던 재고물량이 팀 쿡이 입사한지 2년 만에 10일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이 때 확립된 체계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2007년 시장조사 기관이 AMR 리서치는 노키아에 이어 애플의 SCM 관리 및 활용능력을 세계 2위로 평가했습니다. 당시 세계최고의 PC 제조업체로 애플의 라이벌로 여겨졌던 델은 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효과적인 애플의 제조생산 능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관리능력을 가진 팀 쿡을 언제나 자신을 대신할 예비 CEO로서 준비시키고 있었고, 그가 건강에 문제로 애플을 떠날 때마다 그에게 CEO 역할을 맡기면서 꾸준히 후계를 맡을 준비를 시켜왔습니다.
쿡와 잡스가 여러 모로 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잡스만큼이나 자기 일에 대한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NN Money의 팀 쿡에 대한 글에 따르면 애플의 형편없는 생산, 유통, 공급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에서 팀 쿡이 아시아에 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상황이 정말 안좋아요. 누군가 중국에 가줘야 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회의가 30분 정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팀 쿡은 갑자기 주요한 임원 중의 한 명이었던 사빈 칸(Sabih Khan)을 돌아보면서, “아니 당신 왜 아직까지 여기 있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칸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달려가고, 옷도 안바꿔 입은 채, 돌아올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중국행 표를 예약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감정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만만치 않은 쿡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입니다.
2005년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을 COO에 임명합니다. 현재 그는 기존의 관리와 SCM 및 운영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51개국에 걸친 통신사들과의 협상 및 아이폰의 판매와 운영까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회사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우리나라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앞으로 한국 회사들과는 좀더 대화를 하는데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있지만, COO로서 SCM을 담당했을 때와 CEO로서 회사를 끌고나갈 때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애플의 변화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운동중독자이기도 한 그는 팀원들에게 새벽 4:30에 이메일을 돌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할 때도 있으며, 국제전화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고, 일요일 저녁 회의까지 주재할 정도라고 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아직도 팔로알토에 있는 임대 주택에 살고 있으며, 휴가를 얻어도 캘리포니아의 국립공원 같은 곳에 하이킹을 하러 떠나고, 부자티를 전혀 내지 않게 검소하며, 사무실에는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제일 늦게 나간다고 합니다. 해외출장 일정도 거의 슈퍼맨 수준으로 잡고,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헬스클럽을 들르거나 하이킹을 합니다. 주변에서 보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을 정도이지요 … 어찌보면 가장 나쁜 상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팀 쿡의 시대가 되더라도 이미 애플에서는 스티브 잡스 이후를 상정하여 많은 준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애플은 앞으로 몇 년 정도는 충분히 현재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많은 라인업과 로드맵이 있으며, 스티브 잡스가 비전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이사회 의장으로서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위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팀 쿡이 자신의 스티브 잡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 만의 색깔을 애플이라는 회사에 입히기에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애플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이 시대의 거인의 퇴장에 박수를 보내는데 좀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경영자이자 꿈을 창조하는 비저너리, 현실에 기반한 강력한 실행주의자, 최고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사상과 개념을 전파하는 에반젤리스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거인의 퇴진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자료
The genius behind Steve from CNN Money
글 : 정지훈
출처 : http://health20.kr/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