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베를린 행 짐은 여느 때와 달리 한결 가벼웠다. 첫 번째 이유는 10년을 훌쩍 뛰어넘은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독일로 가져갈 짐이 없었다는 것에 놓여있다. 두 번째는 모든 연락처, 정보 그리고 데이터가 작은 노트북과 태블릿 그리고 스마트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찾은 베를린의 생활은 낯설거나 비연속적이지 않다. 이는 2년 전 한국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 10년 가까이 삶의 근거지가 베를린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워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펼쳐지는 디지털 세계가 선사하는 연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익숙한 프로필 이미지와 인사한다. RSS 리더기에는 언제나 읽어야할 글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페이스북에서는 여느 때처럼 다양한 메시지와 회사업무와 관련된 그룹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스카이프의 연락처는 그 사이 변하지 않았다. 구글 닥스와 드랍박스에서는 서울을 떠나기 직전 작업하던 데이타가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즐겨듣는 음악은 스마트폰을 통해 변함없이 나를 반긴다.
우리를 둘러싸는 냄새, 소음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가 달라도 브라우저의 시작사이트, 즐겨 사용하는 앱이 떡 버티고 있는 스마트폰 그리고 태블릿의 시작화면은 정박한 배의 굳건한 닻이다. 서울 밤 야경에 취하든 베를린 아침 햇살에 눈을 뜨든 140자 트윗과 스카이프 전화와 페이스북 메시지는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90년대 말의 일이다. 네덜란드 국경에 접한 작은 마을에 도착한 나를 반기는 이국의 경치와 내음을 뒤로 하고 공중전화를 찾아 한국으로 접속하는 ‘콜렉트콜(collect call)’ 번호를 잇따라 눌러야 했다. 세계 어느 곳으로 이주하든 또는 잠시 머물든 방문자는 쉽게 이방인이 된다. 이방인은 멀리 있는 친구에게 지체 없이 편지를 보내고 남겨진(?!) 가족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값비싼 전화연락을 시도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저렴한 국제전화(Long Distance Call)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다. 뉴욕에 살고있는 친구와 수화기를 붙들고 술 잔을 기울이며 못내 그리운 심정을 전달하는 것이 사치가 아니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온 내게 차두리의 국제전화 00700도 이젠 필요없다. 서울의 달리는 버스 안에서 스카이프를 켜서 베를린에 홀로 남아있는 그리운 이에게 전화를 건다. 서울 야경과 비오는 거리를 때론 영상으로 전달하며 마음을 나눈다.
디지털은 세계의 떨어진 거리를 축소시킨다. 인터넷과 연결된 기기들의 시작화면과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연결된 사회 관계망(social graph) 그리고 데이타가 저장되고 수시로 변경되는 크라우드 서비스가 도시와 도시를 연결시키는 튼튼한 다리가 되었다.
‘Always On’이라는 삶의 방식의 문제점 또한 작지 않다. 자신이 현재 머물고 있는 시공간의 소통보다는 디지털 소통에만 파묻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을 포함해서 지금부터 디지털 세계에 대한 분석을 연재 형식으로 시작해 본다.
TIME-Telecommunication, It, Media & Entertainment- 산업의 변동부터 낡은 저작권 문제까지, 애플 독점시대에 대한 우려부터 새로운 대안(alternative)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출현에 대한 기대까지, 전통 MTV 방식의 음악비디오 시대의 소멸부터 새로운 음악소비의 태동까지, 일방 소통방식의 방송 패러다임이 스마트 TV를 거쳐 소셜 TV로 진화하는 흐름까지, 규제와 통제로 점철된 한국 디지털 사회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민노씨와 인터넷주인찾기 이야기까지 다양한 디지털 세계 이야기를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의 거친 시각으로 담아 보고자 한다.
글 : 강정수
출처 : http://blog.muzalive.com/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