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튼튼한 큰 댐이라고 해도 작은 구멍 하나가 생기면 그로 인해 일시에 무너져 내릴 가능성은 커진다. 기업의 위기관리도 그와 같다. 위기관리 활동을 실행했다 하더라도 일부 채널이나 이해관계자 대응관리에 빈 구멍이 생기게 되면 전체적인 위기관리 결과를 상쇄하는 오점을 남기게 된다.
오너와 최고임원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치자.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의 수사 방향들과 범위들이 언론에 회자된다. 핵심 임직원들이 하나 둘씩 출두요청을 받고 변호사들과 힘겨운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들끓기 시작한다.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그들끼리 떠도는 최신 첩보들을 공유한다. 직원들은 여러 미디어와 들리는 소문들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회사가 어디까지 피해를 입을까 우려하고 있다. SNS에서 폭풍처럼 일어나는 부정적 여론들은 들여다보기가 두려울 정도다. 평소에도 시시탐탐 우리 회사의 지배구조와 투자활동 등에 문제를 제기해 왔던 NGO들은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하나의 위기를 둘러싼 이 수 많은 ‘구멍’들을 누가 어떻게 막아내야 할까? 또 이 다양한 구멍들 중 어떤 구멍이 가장 위협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그나마 덜 위협적인가? 일단 급한 대로 또는 만만한 대로 출입기자들과 법조기자단에 대한 관리에만 돌입하면 다른 구멍들도 자연 관리가 되는 걸까? 커뮤니케이션 없이 변호사들과 밤들을 세우기만 하면 위기는 완벽하게 관리될까? 어차피 수많은 이해관계자 구멍들을 100% 관리할 수 없으니 일부 구멍들은 스스로 잦아들기만 기도만 하면 될까?
생각보다 많은 기업들이 이런 현실적 체념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위기관리 체계에 대한 마인드가 전사적으로 공유되지 못하거나, 역할과 책임들의 배분에 있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존재한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일단 OO에게만 우선 대응해, 그 다음에 다른 이해관계자들에 대해 신경을 써야겠어”하는 위기관리 지시는 실패하는 지시다.
순차적이거나 차별적이거나 우선순위에 근거한 비중 배분 등은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경계해야 할 실패의 효율성이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개념이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서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는 현실적 체념은 기업 위기관리 실패사례에서 가장 공통적인 변명이다. 위기는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기업에게 부여한 후 찾아오는 법이다. 문제는 그 준비할 시간을 허비하고, 대응 체계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위기가 다가오면 위기관리를 못한다 말하는 것이다.
기업 위기관리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각각의 기업들이 위기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한 채널들을 모아 비교해보면, 각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활용한 위기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전체 채널 수 대비 30%를 넘지 않는다. 어떤 기업은 그 공통적인(최소한의) 채널 30%만 활용하고 위기관리를 마무리한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그 구멍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에 갈증을 느끼며, 위기관리 전반이 실패했다는 판정을 받는다. 반면 어떤 기업은 70%이상의 다양한 채널들을 활용한다. 이런 기업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체계를 가지고 위기관리를 열심히 했다는 판정을 받고는 한다. 하지만, 이 기업도 활용하지 못한 나머지 30%가량의 채널들에서 위험한 구멍들을 발견하게 된다. 열심히는 했지만 완벽한 위기관리는 못한 셈이다.
A기업은 갑작스럽게 서비스 전반에 하루 가량 불통 문제를 겪었다. 서비스 사용자들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다 나중에는 극렬한 불평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 기업은 빠른 시간 내에 보도자료를 만들어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언론을 대상으로 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것이다. 핫라인은 대폭 증설해 소비자들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기업 홈페이지에 상황을 설명하는 해명문을 팝업창으로 올려 양해를 구했다. 이외에도 정부규제기관에게 소명자료를 보내고 커뮤니케이션 했다. 내부적으로도 직원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정상화에 대한 일정에 대해 공유했다.
문제는 기업 SNS라는 ‘구멍들’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다. 해당 기업의 SNS는 최초 위기상황이 발생한 직후 상황에 대한 간단한 안내만을 기업 SNS 채널들에 공지한 채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았던 거다. 기업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는 그 이후 이틀간이나 침묵했다. 그 기간 동안 언론을 비롯한 다른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기업 SNS라는 큰 구멍들은 관리 없이 그냥 열려있었다.
각각의 SNS채널들 내에서는 해당 기업에게 상당한 분량의 커뮤니케이션 수요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서비스 사용자들의 불만이 SNS 채널들을 통해 제기되고,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떤 식으로라도 상황 업데이트를 해 달라는 애원이 SNS상에 쏟아져 들어왔다. ‘왜 침묵하느냐?’하는 힐난들이 쌓여갔다. 이틀간의 침묵의 구멍이 발생하는 동안 많은 SNS 공중들은 그냥 방치돼 있었다. 해당 기업이 다른 채널들을 통해 전달했던 자세하고 논리적인 설명과 해명의 기회를 SNS에서는 그대로 날려버린 결과를 남겼다. 성공한 위기관리로 판정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비록 그 기업 SNS는 이틀 후부터 지나간 상황에 대해 소비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포스팅을 올리면서 다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평소 커뮤니케이션을 해 오던 많은 소셜 공중들이 실망했고, 왜 이 기업 SNS와 더 이상 대화해야 하는지, 왜 이 기업 SNS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친절하게 자상한 대화를 이끌어 가던 이 기업 SNS가 왜 위기 시 큰 구멍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평소 디자인하고 점검할 때에는 특정 위기가 발생했을 때 관련 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규정해야 한다. 또한 그들과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수 있는 채널들을 미리 함께 규정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그들로 향한 채널들이 규정되면, 그 각각의 이해관계자와 채널망들을 위기 시 책임을 가지고 대응 역할을 진행할 부서를 선정 임명해야 한다.
내부의 이 모든 역할부서들을 통합적으로 조율하고 빈 구멍을 발견해 메우는 지휘센터가 설립되면 일단 체계화 작업은 마무리된다. 그 이후에는 실제적인 위기상황을 전제하고, 현실적으로 이 모든 이해관계자 채널들이 정해진 대로 운영되는지, 통제센터에 의해 통합적 조율이 가능한지 시뮬레이션을 해 구멍을 찾아내는 것이 그 다음 체계화 단계다. 준비하고 연습한다는 위기관리의 기초에 대한 이야기다.
글 : 정용민
출처 : http://jameschung.kr/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