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중소기업에서 초봉 4천만원을 제시해서 65:1의 놀라운 경쟁률을 보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석박사 급의 우수한 인재가 많이 지원한 덕분에 인력을 더 뽑았다는 아주 훈훈한 소식이었다. 요즘 같은 취업문이 좁은 시기에 사람을 많이 뽑는다는 건 참으로 따뜻한 미담이다.
이에 반해서 SI업체에서는 날코딩에 해당하는 업무를 백만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중국에서 아웃소싱할 수 있어, 비용 측면에서 상당히 이득을 보고 있다는 기사도 소개되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그 기사의 댓글을 읽다가 먹먹해졌다. 자신들도 백만원 조금 넘는 돈 받아가면서 일하고 있다는 댓글이 상당수 달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확실히 키우기 위해서 S직군을 신설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S직군은 기본적으로 다른 직군에 비해서 초봉도 높고 대우도 잘 해준다고 한다. 삼성전자인만큼 여타 대기업보다 더 훨씬 많은 돈을 줄 것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더블S라는 신조어도 나온다고 한다. S직군에서도 S급 인재를 말한다고 한다. 옥상옥 정도가 될까?
같은 대한민국 아래에서 소프트웨어라는 타이틀을 걸고 일어나는 인재전쟁?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돈이다. 신입사원들이 중소기업을 꺼려한다고 하지만 돈만 많이 준다면, 그곳이 비정상적인 회사가 아닌 이상 지원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SI업체는 더 싼 비용을 찾아서 외국으로 나가고, 탑클래스의 회사에서는 최고의 인재를 대우한다는 기사, 그리고 최근에 개발자 모집과 관련된 넘쳐나는 기사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돈이다.
기사에 나오는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살리기 해법은, 개발자에게 돈만 많이 주면 될 것처럼 비춰진다. 과연 그럴까?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동기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어떤 이상가들은 직원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서 동기부여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진짜? 그럴싸한 이론을 가져다 붙이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돈…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 중요하지만 돈으로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보상이론이나 행동경제학 이런 것들로 충분히 실증되고 있다.
핸드폰 제조업체에서 유발한 소프트웨어 위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개발자를 잘 대우하고 그래야 경쟁력있는 소프트웨어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소프트웨어는 최근에 위기를 맞은 게 아니라, 내가 이 세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위기였다.
소프트웨어는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라, 아는 형이나 아는 동생한테 부탁만 하면 디스크나 CD로 얻어 와서 설치할 수 있는 품앗이 대상이었다. 그래서 난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위기는 정말로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 허구는 핸드폰 제조업의 추락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즉 제조업의 붕괴 때문에 발생한 대기업의 위기를 걱정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위기가 제조업의 붕괴에 대한 걱정 때문에 조명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소프트웨어가 현재 위기에 처한 원인을 되짚어 보면, 결국 소프트웨어를 제값 주고 사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좋은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사는 문화가 있었다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는 위기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 많은 개발자 지망생이나 경력 개발자들이 월급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하려고 목숨을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생각이 너무 단순한 생각일까?
물론 지금에라도 개발자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준는 건 다행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복원되지 않고 단순히 제조업의 영속만을 위한 개발자 키우기(라고 쓰고 개발자 모집하기라고 읽는다)에만 집중한다면, 그리고 돈도 중요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개발 문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정말 대한민국의 소프트웨어, 그 미래는 암울할 것이란 생각이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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