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문장 때문에 프로젝트 내내 말썽이 생겼다.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마다 프로젝트 룸에 찾아와서 그 문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고객이 항상 옳다면서요. 왜 옳은데 고객 이야기를 반영하지 않는거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객은 PM이 붙여 놓은 구호를 보면서 한 이야기지만, 옆에서 고객의 무리한 요구사항을 듣는 팀원들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으로 이분법으로 구별하자면, 동양은 위계의 사회다. 동양이 위계의 사회라고 해서 서양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동양은 상당히 위계적인 사회란 뜻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명함 교환을 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에서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고, 상대가 나보다 직급이 높은지. 그 다음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등등. 수많은 팩트로 상대와 나 사이의 위계를 정한다. 위계가 정해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 의사소통이 위계의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 편할 수도 있다.
갑을병정… 이라는 고객과 원청, 하청의 관계 속에서도 이런 위계의 의식은 철저하다. 따라서 의사결정도 갑의 의견에 따라서 순서적으로 일어난다. 위계가 지배하는 의사소통 구조 속에서 “고객은 항상 옳다!”라는 구호를 걸어놓은 PM은 불길에 기름을 쏟아붓는 행동을 한 것이다.
고객이 옳음과 그름의 판단 기준이 되려면, 고객은 완전무결한 존재여야 한다. 자신의 욕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불가능하다. 잡스의 전기의 인용으로 더욱 유명해진 말이지만, 마차를 타는 사람들에게서 자동차에 대한 요구사항을 도출할 수 없다. 고객은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해결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런 해결책도 틀린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객은 항상 옳을 수 없다.
고로 위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고객 만족이란 고객 비위 맞추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즉 위계의 사고는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로 귀결되어, 항상 옳은 고객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감히 ‘을’이나 ‘병’ 따위가 지도편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계 사회일수록 고객을 만족시키고 발전하는 회사가 되려면 “고객은 옳지 않다!”란 명제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