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애플 제품을 써봤는데, 만족감이 매우 높다. 딱 한 제품만 빼면 말이다.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하얀색의 뽀대나는 마우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마우스는 매직 마우스다. 일반 마우스 기능에 애플의 트랙패드의 기능을 합쳐 놓은 것이다. 트랙패드를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게 참 훌륭하다. 난 이 훌륭한 트랙패드를 마우스에 합치면, 그리고 애플이 합쳤다면 당연히 좋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일단 그립감이 별로다. 납작해서 모양은 예쁠지 모르지만, 그립감은 정말 안 좋다. 그립감만 안 좋으면 괜찮은데. 이게 트랙패드의 기능을 쓸려고 하다보면 마우스가 움직여서 원하는대로 제어가 안 된다. 디자인상 당연한 결과다. 왜냐하면 트랙패드라는 게 바닥에 딱 고정해 놓고 써야 하는 구조인데, 쉽게 움직여야 하는 마우스 위에 그 기능을 올려 놨으니 모순이 발생한다. 그래서 트랙패드로 쓰면 참 난감하다.
여기에 개인적인 문제도 매직마우스의 사용자 경험을 최악으로 만든다. 난 오랜 세월 마우스 클릭을 한 탓에 오른 손목이 안 좋다. 가득이나 안 좋은 오른손으로 그립감도 나쁘고 제어도 잘 안되는 애플의 매직마우스를 쓰고 나면, 손목 통증이 재발한다. 이게 몇 번 반복되자, 더 이상 애플 매직마우스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손목에 좋은 마우스를 찾았다.
그리고 찾은 게 바로 사진의 오른쪽에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는 Evoluent 마우스다. 이 마우스의 특징은 마우스를 옆으로 세워 놓은 형태에 있다. 일반 마우스는 손목을 바닥에 붙이고 써야 하는데, 이게 팔목을 비틀기 때문에 손목에 많은 무리를 준다. 그런데 Evoluent 마우스는 마우스를 옆으로 세워 놓아서 손목이 악수할 때처럼 자연스러운 형태를 유지하게 한다.
써보기 전까지 상당히 이상하리라 생각했는데, 익숙해지니 참 편하다. 물론 부족한 점도 있지만, 애플의 매직마우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애플은 디자인을 잘한다. 하지만 애플이 추구하는 디자인이 순수 물리적인 영역으로 벗어나가는 순간, 약점이 되고 만다. 바로 매직마우스가 그 예다.
다이슨은 “형태는 기능을 따라간다”고 말했다. 난 이 말에 동의하고, 정말 좋은 디자인 산물은 당연히 그렇게 만들어지게 된다고 믿는다. 자동차가 유선형의 디자인을 따르는 것도, 그게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데 유효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도 그렇게 멋진 유선형의 디자인이 나오는 이유도 기능이 그렇기 때문이다. 요즘 쓰고 있는 Evoluent 마우스도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문득 Evlouent 마우스를 쓰면서, 애플이 이런 형태의 마우스를 디자인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디자인을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네모 반듯하고 절제된 유선형의 디자인 형태에서 정말로 파격을 단행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플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적당한 경계선에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바라보는 제품이 알맞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