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객만 있으면 된다.
회사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단 한가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고객이다. 우리가 유형의 재화를 파는 기업이던지, 아니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던지에 상관없이 우리 회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단 고객만 있으면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무엇을 판매하는지에 상관없이 그 기업이 파는 것이라면 믿고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외국의 최고급 백화점이나 리테일 점포의 경우, 그 백화점에서 파는 제품이라면 무엇이라도 믿고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러한 고객들이 보여주는 심리가 바로 개별 제품보다는 그 제품을 소개하는 기업 혹은 브랜드를 전체적으로 판단하는 예이다. 우리는 각각의 제품이 아니라 그 기업 전체를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경영학의 사례들이 기존 고객에게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기존 제품을 새로운 고객들에게 파는 경우보다 훨씬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즉, 이미 우리 기업, 우리 회사, 우리 브랜드의 고객이라면 우리가 제공하는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좋아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2001년에 프레드릭 라이히힐드라는 컨설턴트는 로열티 경영(원제 Loyalty Effect)라는 책에서 이러한 고객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강조했고, 이 책은 마케팅 분야에서 고전이 되었다. CRM(Customer Relationship Marketing) 혹은 데이터 베이스 마케팅(Database Marketing) 등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기법들은 ‘소수의 충성도가 매우 높은 고객들이 우리 회사의 대부분의 매출을 책임진다’는 생각, 혹은 20:80 법칙 (상위 20%의 고객이 80%의 매출을 발생시킨다는 법칙) 등을 그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이러한 기법을 로열티 마케팅(loyalty market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회사의 브랜드에 대해서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더 많은 매출을 발생시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적어도 더 충성도가 높은 고객에게 비용이 덜 들어간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번 우리 제품을 쓰게 만들기가 어렵고, 그 다음에는 그 고객이 좀처럼 경쟁사로 옮겨가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나타내는 스위칭 코스트(switching cost)가 이러한 개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결국 무턱대고 새로운 고객들을 자꾸만 유입하기 보다는 기존의 고객들 중에서 우리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재화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잘 관리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더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80년대까지 무턱대고 확장을 부르짖던 많은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었고, 기업들은 고객관리에 대해서 더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IT기술의 발달과 통계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이러한 고객관리가 좀 더 용이하게 된 점도 물론 이러한 고객관리 분야의 발달에 기여한다.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개념을 마케팅 용어로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 이라고 할 수 있다. 세그멘테이션은 사람들이 ‘다르다’라는 점에 그 가정을 두고 있다. A라는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과 B라는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혹은 A와 B 는 서로 다른 사람이므로 서로 다른 종류의 제품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기술이 발달할 수록, 그리고 사람들이 더 많이 자신을 표현할 수록 우리는 우리의 고객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다른 환경과 경우를 파악하기가 용이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제품과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더 관리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요컨대 사람들은 더 달라지고, 더 표현을 많이 한다. 그에 따라서 마케팅도 발달한다.
2. 고객의 분리
사실 고객관리 분야가 발달하기 이전의 마케팅의 영역은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분석에 촛점을 맞췄다. 어떤 자극을 주어야만 사람들이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에 더 호의적으로 반응할 것인가?를 연구하던 마케팅 분야는 점차 대량의 데이터의 분석과 그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서 고객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서비스와 제품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피드백을 제공함에 따라서 마케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즉, 기존의 마케팅이 무작위로 불특정 다수를 향하던 커뮤니케이션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점차로 우리의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우리와 보다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혹은 이미 그러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맞춰져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마케팅 전략에 관해서 많은 노하우를 보유한 회사였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는 고객을 다양한 관점에서 나누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제품을 집에 가져가서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consumer)라고 부르고, 우리 기업의 제품을 사는 사람을 구매자(purchaser), 그리고 구매자를 포괄함과 동시에 매장에서 제품을 고르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샵퍼(shopper) 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기업과 장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대형 리테일러나 소매점포들은 고객(client)라고 불렀다. 직접적인 고객은 아니지만, 우리 제품이 판매되도록 구매자나 샵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인플루언서(influencer) 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명칭들의 구분은 절대 말장난이 아니며, 이들은 모두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이렇게 이들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이유는 각각의 주체들이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대하는 태도가 엄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저귀 같은 제품은 shopper 는 엄마이지만, consumer는 아기일 수 있다. 생리대도 종종 엄마가 사서, 딸들도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shopper와 consumer가 분리되는 전형적인 예이다. 애완견 사료도 마찬가지로, consumer 는 애완견, shopper나 purchaser 는 애완견의 주인이다. 딸들이 엄마가 사온 생리대에 불만족하면 그 의견을 표현함으로써 influencer로 변화하기도 하지만, 아기들이나 애완견은 기저귀나 사료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또한 shopper와 consumer 가 동일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매장에서 구매할 때와 집에서 사용할 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살 때는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집에 와보니 아닌 경우가 누구든지 많이 있을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밀고 다니는 우리의 행동 습성이나 구매 습성은 확실히 집에 돌아와서 느끼는 우리 자신과 조금 다르다.
이 모든 것들이 미디어와 리테일 점포의 종류와 경험, 그리고 제품과 브랜드가 너무나 다양해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이다. 우리는 어떤 미디어를 언제, 어떻게 접하는지, 그리고 어떤 제품과 브랜드를 어떤 환경에서 접하는지, 어떤 경험에 따라서 그 브랜드를 소비하는지에 따라서 모두 다른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앞으로 우리는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두루뭉실하게 이해되는 개념을 조금은 잘개 쪼개서 봐야 할 것이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특정 조직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해서 그러한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측에서 우리를 고객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출입국관리소(immigrations)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 입국해 본 외국 국적의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러한 출입국관리소의 긴 줄과 불친절한 서비스에 짜증을 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다보면, 의자도 하나 없이 사람들을 한두시간씩 세워놓는 그들의 몰상식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한 불편함, 아니 분노를 여러번 느꼈다. 내가 들었던 한 MBA 수업에서는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른 시간안에 가장 많은 고객을 소화할 수 있는 서버 & 큐 시스템 (Server & Queue system, 즉 고객을 줄세우고 그들의 서비스를 처리하는 시스템, 예컨대 맥도날드 상점에 들어가서 줄을 설 때, 고객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 효율적일지, 아니면 각각의 계산대에 따로 줄을 세우는 것이 효율적일지에 대해서 연구해 보는 것)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는데, 이 수업에서 미국의 출입국관리소가 언급되었다. 출입국관리소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긴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처리하는 직원들의 고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 우리가 그렇게 긴 줄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아픈 다리를 주므르며 불평을 토해도, 유리 부스 안에 앉아서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는 직원들의 월급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미국의 대부분의 공항의 경우에는 오히려 출입국관리소의 직원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서, 공항 당국에서는 이러한 직원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주지 못하는 것이 실정이라고 한다. 때로는 한 조직의 진정한 고객은 그 조직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인 경우가 많다.
3. 마케팅은 예술도 사기도 아니다.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고객’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2012년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는 80-90년대의 마케팅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 의 개념에 더 가까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케팅의 키워드가 커뮤니케이션이나 광고, 판매 등에 맞춰져 있었던것에 비해서 이제부터의 마케팅은 ‘관계(relationship)’, ‘충성도(loyalty)’, ‘브랜드(brand)’등의 단어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나 한국에서 ‘마케팅’ 이라는 단어는 광고,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단어나 문구 등으로 소비자의 뇌리속에 우리의 브랜드와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심는 것으로 “좁게” 이해되어 왔다. 혹은 TV 방송 등에서 ‘그것은 기업의 마케팅 기법이다’라는 말이 종종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 정도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주로 고객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 기업이 우리가 TV광고를 한번쯤이라도 본 곳이라면 혹시 연예인이라도 만나냐고 묻기 일쑤이다. 내가 정말 놀랐던 점은 많은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매출발생부서(revenue center)가 아닌 비용발생부서(cost center)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많은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회사가 어려울때 자신들이 광고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 회사에 ‘미안함’을 갖기까지 했다. 이러한 경우들은 잘못된 경우라고까지 매도할 수는 없겠지만, 마케팅이라는 활동이 기업의 매출을 늘리기 위함이 그 목적임을 생각해볼때, 만약 당신, 혹은 당신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에 들어서 많은 마케터들은 창의적인 (creative) 문구나 장면을 구상하고, 어떤 모델이 우리 제품을 잘 팔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인사이트를 건져볼까 고민하고 있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한두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가장 근본적으로 누가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에 맞는 고객인가? 그리고 그러한 고객들이 있다면 현재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 이외에 무엇을 더 살려고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에게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할 것인가? 얼마의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등등의 질문들이 따라온다.
4. 고객을 이해하기
고객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고객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되는 것은 서베이나 인터뷰와 같이 직접 물어보는 것이었다. 심리학의 연구방법을 대체로 많이 모방하여 설문지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기획하는 것이 많은 리서치 회사들의 일이었다. 특히 FGI(Focused Group Interview)와 같이 여러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제품이나 서비스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여러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의견을 물어보는 방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마케팅 담당자들이나 리서치 회사의 직원들이 유리로 된 벽면 뒤에서 이를 지켜보거나, 아니면 멀리서 카메라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숨겨진 코드를 해석하곤 했다. 세계적인 광고회사 싸치앤사치(Saatchi & Saatchi)의 전 CEO 이자, Love Marks라는 베스트 셀러로 유명한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는 그의 책에서 이러한 FGI와 같은 리서치 방법을 ‘사자를 동물원 우리에 가둬놓고 그들이 야생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유추해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무진들은 ‘더 나은 대안이 없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이것이 최선이다’라는 논리로 FGI나 인터뷰의 사용을 방어해왔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고객에게 직접 묻는 인터뷰 방식이나 서베이 방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보는가? 질문이 어떻게 프레임 되어 있는가? 객관식인가 주관식인가? 질문을 받을 당시에 고객의 기분은 어떠했는가? 등등에 따라서 너무나 많은 정보가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많은 수의 샘플을 이용해서 이런 방식을 진행하면, 이러한 왜곡이 서로 상쇠되기는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많은 샘플을 쓰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리서치 전체로서는 샘플을 많이 모집한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세그멘트별로 충분한 사이즈(N)를 확보하는 것 또한 또 다른 과제이다. 대신에 내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관찰과 빅데이터에서 나타나는 패턴이다. 즉, 리서치를 하는 사람의 의지가 최대한 배제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패턴은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이렇게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진실찾기에 골몰하고 있을 즈음에 스티브 잡스라는 캘리포니아의 한 고집스러운 천재는 ‘고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내놓은 제품들이 모든 것을 정리했다. 잡스는 자동차를 만든 핸리 포드가 고객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봤다면 20세기 초반의 고객들은 아마도 ‘더 빠른 말’이라고 말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새로운 혁신을 드라이브 하는 것은 치밀한 고객 데이터 분석보다는 인사이트 있는 기획자들의 기획능력임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스티브 잡스와 그의 제품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잡스가 아니며, 우리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애플이 아니고, 우리 회사가 속한 산업이 혁신을 주도하는 하이테크 산업이 아니기에 무작정 잡스처럼 인사이트만 키우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고객에게 묻는다. 무엇을 원하냐고…
5. 한국의 고객들
외국에 나와서 생활을 하다보니, 한국 사회 안에서의 고객의 위치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 이해가 된다. 나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 생활을 해 봤는데, 특히 미국에서 ‘고객’이라는 것의 느낌은 동양권에서 느끼는 그것보다 훨씬 가볍다. 미국의 문화에서 고객과 기업은 동등한 거래의 관계이다. 물론 고객이 소중한 존재이고, 고객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특히 서비스업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도 고객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음을 많이 느낀다.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는 장사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의 서비스가 많고, 솔직히 말하면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말하는 ‘손님대접’이라는 것을 못 받기가 일쑤다. 이러한 문화의 장점이라면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직원들도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많이 느껴지고, 마음에도 없는 가식적인 웃음 따위는 없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손님대접 제대로 못 받는 것으로 치면 중국이 더할지도 모른다. 중국에서의 서비스는 훨씬더 거친 느낌이 있고,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런지 서비스 제공자나 손님이나 모두 무뚝뚝하다.물론 최고급의 서비스로 가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중산층 서민이 이용하는 서비스의 질을 말하는 것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고객에게 친절하기로 치자면 일본이 제일이다. 일본의 백화점이나 고급 상점에서 느끼는 서비스의 질은, 그들이 가식적이라는 일부의 비판 따위는 비웃어줄 수 있을정도로 감동적이다. 내가 일본에 갈때마다 들리는 긴자에 있는 한 양갱집이 있다. 한번은 이곳에 와이프와 갔는데, 마침 바깥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더니 그 집의 주인이 우리에게 우산을 준 적도 있다. 그것도 하나씩 쓰라고 2개를 주면서, 굳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런 가게에 어찌 다시 가지 않겠는가?
한국의 고객은 독특하다. 한국의 고객들은 매우 까다로우면서, 자신의 위치를 곧추세워서 손님대접을 받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신이 돈을 많이 내고 서비스를 받을 때에는, 마음 편하게 서비스를 받기 보다는 오히려 더 스스로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돈값’을 빼려고 달려들때가 많다.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나의 가정은 평소에 욕구가 억눌려 있거나, 본인이 안좋은 기분에 있을 때 그런 경향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는 현상이 바로 감정노동자 (emotional labor)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감정 노동자 문제는 백화점의 점원, 콜센터의 직원 등으로 주로 고객과의 접점에서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로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들을 일컷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최근에는 이러한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이나 이들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피해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하게 각박해져 가는 대한민국의 사회 속에서 억눌리고 피곤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 사람들이 감정 노동자들에게 왜곡된 방법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백화점 점원들이나 마트의 점원들의 교육을 맡아서 여러번 한 적이 있다. 그럴때면 이분들이 그동안 얼마나 심한 고초를 많이 겪고 있는지와,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있는 ‘고객’들 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게 디멘딩한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시달린 상담원들과 점원들을 달래주기 위해서 본사 직원들이 또 한번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본사의 마케팅이나 영업직원들에게 이러한 상담업무를 담당하는 매장 직원들은 또 다른 고객이 되는 것이다.
6. 회사원의 고객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즈음에 나보다 몇년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한 한 친구가 이런 조언을 해 준 적이 있다.
직급이 낮을 수록 내부의 고객이 더 중요하고, 직급이 높을 수록 외부의 고객이 더 중요하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직장생활을 몇년 하다 보니,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직급이 낮은 회사원들에게 있어서 내부의 고객이란, 자신의 직장 상사를 주로 뜻한다. 그리고 직급이 높을 경우의 외부의 고객은 거래처의 사장님 혹은 중역이나 회사의 영업과 관련된 이해관계를 쥐고 있는 거래처, 공무원, 협력업체, 또는 B2B 레벨의 대형 고객일 수도 있다. CEO들이 하는 일이 내부 관리도 있지만, 주로 외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일임을 생각해볼때, 그들이 내부의 고객보다는 외부의 고객에 더 신경씀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임원이 아닌 그보다 낮은 직급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영업이나 마케팅이 아닌 다음에야 고객들을 직접 만날 일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매일 나와 함께 부딪히는 나의 내부 고객인 직장 상사나 옆 부서의 부장님, 차장님이 나의 고객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엔드 커스터머(end customer), 즉 최종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나의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촛점이 맞춰진다. 최종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리 명석하게 밝힌다고 하더라도 나의 내부 고객인 직장 상사가 그 내용을 싫어할 것 같으면, 그 내용을 잘 어루만져주는 센스가 한국의 직장생활에서는 요구된다. 따라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의 고객보다는 내부의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도대체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석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참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다.
내부의 고객이던, 외부의 고객이던, 고객의 마음을 알기란 그렇게도 힘든 일이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