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첫편은 그냥 멋모르고 작업을 했다. 촌놈이 책을 쓴다는 기쁘고 뿌듯한 마음에 집필을 시작했지만 쉽지않은 과정이었다. 수개월 동안 주말은 고스란히 반납했고, 데드라인 등 여러가지 압박이 있어서 책을 쓰면서 “책을 다시는 쓰지 않겠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작업을 하게된 결정적인 동기는 아직도 창업과 스타트업 운영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였다. 더 많은 분들과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창업과 스타트업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부분들을 최대한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 수집한 자료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점들 및 과거 내 블로그 포스팅 등을 정리하면서 쉬엄쉬엄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출판사와 계약을 한것도 아니고 누가 책을 쓰라고 한것도 아니다. 순전히 내 페이스대로 작업을 하는거라서 집필 과정은 오히려 편하고 재미있었다. 내용이 어느정도 완성되자 나는 책을 어떻게 출판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만 배포하기로 했다.
전자책 시장이 전체 시장의 5%도 되지 않는 한국에서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나는 평소에 창업가들한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완전히 새로운걸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기존 시장에서 거품과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그게 정말로 큰 비즈니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수십년 (또는 수백년) 동안 바뀌지 않는 종이책 출판/유통 시장을 disrupt해 보고 싶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바로 유통하면 독자들은 좋은 컨텐츠를 더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고 (중간 상인들이 없으니까) 작가도 인세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중간 상인들이 없으니까).
과연 우리나라에서 전자책 단독 출간해서 몇권이나 팔 수 있을까? 그건 지켜보자. 실은 나도 매우 궁금하다 🙂
전자책으로 출간하고 싶은건 나의 생각이자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를 실행가능케 한 건 바로 1인 전자책 출판사 ‘요구맹 출판사’ (@eh_dirty) 였다. 뛰어난 개발자 출신이라서 전자책 제작에 필요한 모든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실리콘 밸리에서 오래 거주하고 일했기 때문에 전자책 시장의 양대산맥인 iBook과 킨들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스타트업 바이블 웹사이트 제작과 같은 나머지 부수적인 부분들 또한 혼자 cover가 가능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원고가 편집, 교정, 교열 과정을 거쳐 전자책으로 제작되는데 대략 5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 중 전자책 제작 과정 자체만은 한달 정도가 걸렸다. 이러한 전체 과정은 나한테는 매우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더욱 더 재미있는 건 바로 전자책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스타트업을 시작해서 첫번째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과 동일했다는 것이다. 나랑 요구맹은 한 스타트업의 founding team이었다. 나는 초기 아이디어를 (컨텐츠) 제공한 CEO?였고, 요구맹은 뛰어난 개발실력을 보유한 CTO였다. 물론, 우리는 성향도 다르고 취향도 많이 달랐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았다. 단시간안에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우수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었다.
모든 작업은 무료 제품들을 사용했다. 원고 편집, 교정, 교열 작업은 나/요구맹/교정자가 Google Docs를 사용하면서 실시간으로 코멘트와 메모를 달면서 지속적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전자책의 새 버전들은 Dropbox로 공유했고, 수정 요청 사항과 버그는 Fogbugz라는 무료 버그 트래킹 제품을 사용했다. 말그대로 최대한 돈을 쓰지 않는 lean startup 모드였다. 그래서인지 2명의 founding team이 6개월만에 괜찮은 MVP를 출시하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사용한 비용은 최소비용이었다. 월급은 가져가지 않았고 도메인 등록, 몇개의 이미지 구매(전자책 사용 용도), 웹사이트 호스팅, 교정/교열 및 표지 디자인 정도에 최소 비용을 썼다. 둘 다 스타트업 경험이 풍부해서인지 이런 저렴한 환경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는걸 즐기면서 열심히 일했다.
책의 가장 큰 기여자는 어쩔 수 없이 작가인 나였지만, 요구맹 또한 나랑 거의 동일하게 (어쩌면 더 많은) 고생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지만 아름다운 전자책 제작에 가장 필요한 건 – 좋은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 뛰어난 개발자다.
글: 배기홍
출처: http://www.baenefit.com/2012/08/blog-post_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