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TV에 부쩍 많이 등장하는 광고가 ‘우리 아이 1억 만들기 펀드’, ‘X억 만들기 펀드’ 등등 목돈을 마련하기 위한 펀드/적금 상품들이죠. 평소에도 광고를 하긴 했었는데, 유난히 라디오/TV에 많이 노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중의 책방을 가도 마찬가지죠. 몇년 이내 몇억 만들기 프로젝트 라던가, 이와 유사한 종류의 재테크 서적들이 ‘넘쳐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최소 1억은 있어야 이것이 SEED가 되어 본격적인 돈 불리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겠죠.
몇 년 안에 1억을 모은다는 것은 참 근사합니다. 비록 그 사이에 먹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들을 어느 정도 참아야 하는 희생을 감내해야겠습니다만, 뭔가 적지 않은 돈을 수중에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내집 마련을 비롯해서 더 큰 무언가를 할 든든한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 힘이 나기까지 하겠죠.
저도 상대적으로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는 터라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뭐하고 있지, 지금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할 땐테 이렇게 흥청망청 살아서 되겠나! 정신차려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런 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안감이 마음 속에 엄습해 오니까요. 죄의식마저 느끼고는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나요?
그러다가요…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어쨌거나 보다 나은 삶, 보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기 위함이잖아요. 제가 아리쏭한건 이겁니다.
“얼마의 돈을 모으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정도의 돈이 모이면 열심히 돈을 모으는 것을 멈추고, 이제는 즐기는데 더 시간을 투자할 수가 있을까요? 로또 얘기 하시는 분들 많으신데 그건 제외하시고.
제가 초딩 시절에는 한달 용돈을 약 5년간 모으면 제가 꿈꾸던 컴퓨터(가장 싼 모델)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열심히 모아야지! 하고 방금전에 했던 목표 달성 예상 계획표를 다시금 점검하고는 했죠. 한달 용돈 + 설/추석에 어른들한테 받는 용돈 까지 다 계산해서였죠. 나름 치밀한 계획이었습니다. 군것질 덜 하고 덜 쓰면 된다! 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은 그리 오래 실행될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고정된 용돈과는 달리 물가는 계속해서 상승하고(그때야 뭐 물가의 개념도 몰랐죠), 지출해야만 하는 항목들-저의 계획에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은 늘어만 갔습니다. 1년이 지난 뒤에 모아 놓은 돈은 좌절 그 자체였고, 부모님의 용돈 없이는 그나마 한달 조차 생활하기 힘들다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껴야 했습니다.
지금 내가 몇년 안에 1억을 모으면, 지금 내가 하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하고 싶은것을 참아가며 열심히 저축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린 시절의 저처럼 간과하기 쉬운게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내가 기대하는 1억의 가치가 몇년 후에도 동일할 것인가? 라는 것과 1억을 벌었다면, 그 후에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PC를 샀더니 뭘 해야 할지 막막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집을 산다 치더라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제 어머니는 이제 벌써 50대 중반을 넘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4,50도가 넘는 공장에서 주말도 없이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는 전망이 좋은 예쁜 아파트를 장만하였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고된 일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적당히 쉬엄쉬엄 하셔도 이제는 충분히 편안히 살 수 있는 환경임에도 어머니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끝이 없습니다. 이제 일에 손을 놓으면 언제 또 어려운 일이 생길지 모른다, 여유자금이 충분히 있어야 안심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어머니는 이렇게 일만 하면서 인생의 6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먹고 싶은것 맘 편하게 한번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평생 시도조차 못해 보고 말이죠. 어머니 세대는 그렇다고 칩시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가슴 뛰는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기 보다는 다가오지도 않은 불행을 대비하는데 보험에, 연금에 많은 돈을 쓰고, 오를 데로 올라서 집을 사기 위한 건지, 빚을 갚으며 사는건지 구분이 되지 않게 월급의 대부분을 내집마련을 위한 적금/펀드등의 저축에 스스로 저당을 잡아 놓습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우리가 10대일 때, 20대 일때, 30대일 때 변함없이 이런 말씀을 하시죠. “지금이 제일 좋을때다”, “해 볼 수 있는 것 다 해 볼 수 있는 때다”… 어찌된 일인지 가장 최절정의 시기인 지금, 우리는 인생을 과연 즐기면서 살고 있나요. 저는 왠지 서글퍼 지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4시간의 저자, 티모시 페리스가 지적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때까지 일하는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 더더욱이 미국인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럴진대, 우리나라는 훨씬 더했으면 덜했지 덜하다 하면 섭섭할 정도죠. 티모시는 이런 현상을 ‘BMW를 탄 뚱뚱보’로 비유를 했는데요, 설상 내가 미래에 돈을 많이 벌어 만족스러운 내 집을 마련하고, BMW나 벤츠를 소유했다고 치더라도, 그때 내 몸은 이미 배 나온 아줌마/아저씨라는 겁니다. 삶의 절정은 내 인생에 존재한 적도 없구요.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지 않다면, 내일은 없습니다. 나도 마음이야 그렇지만, 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ADD를 의심해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모험을 거부하고 안정되 보이는 무엇엔가 계속해서 자신의 현재를 보류하는 현상. 누군가는 Exciting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보험을 마련하느라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티모시의 말처럼 미래, 내가 모아야 할 1억의 돈이란 것은 불확실성이란 두려움을 일으키는 ‘공백’을 피하기 위해 무한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도 불안하고 저도 생각 이상으로 모험을 두려워합니다. 모르니까요. 허나 1년 후와 비교해 돈만 늘어나고 뚱뚱보가 되어가는 스스로를 방치하고 싶지는 않네요. 아, 물론 저는 약간 극단적 부분에 집중해서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