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주변에서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그럴때마다 머리가 공회전하고는 하는데, 뭐라고 대답하기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어떻게 느끼는지도 다르고,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에 이 요청은 아주 잘 프레이밍 된 요청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세요’ 라는 문장보다 나의 흥미를 더 끄는 요청 및 질문은
- 훌륭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좋은 책은 무엇인가?
- 당신이 생각할 때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계속 생각나는 책은 무엇인가?
- 끊임없이 책장에서 빼보게 되는 책은 무엇인가?
와 같은 좀 더 구체성을 띄고 있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이라면 나의 뇌도 돌아가기 시작하고, 생각을 곰곰히 해 보게 된다.
특히 위의 질문들은 내 나름대로 Classic 한 책들에 대한 기준이다. classic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기준은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증대되는 책들이다. 각각의 책들에서 말하는 디테일은 조금 달라질 수 있어도, 그 책들에서 말하는 정신이나 철학은 오히려 더 강화되는 그런 책들 말이다.
내 인생에서 그런 책들이 무언가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특히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지난 15년간을 기업 경영이나 회사를 다니며 조직에서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는 점에서 ‘경영학 교과서’를 제외하고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진짜’ 경영학 서적들을 생각해 보았다.
1. 나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기: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by Richard Dawkins
감히 이 책은 나의 20대를 지배하고 30대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연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DNA와 호르몬일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내가 왜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엄청난 애정을 가져야 하는지와 가질 수 밖에 없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이기적이지만, 그 결론은 이기적이지 않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모든 것은 ‘인정’을 해야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인정함으로써 인생과 사회에 대해서 갖고 있던 수 많은 의문들을 풀게 되었던 것 같다.
2. 사람들의 ‘다름’을 이해하기: 강점 혁명
강점 혁명은 사람들마다 강점이 존재하고, 그 강점을 더 발전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강점이라는 것은 뇌라는 회로판에 에칭된 설계도면과도 같아서, 우리가 오랜 시간 우리의 뇌와 몸을 사용하면서 자국이 남아 있기에, 몇가지 테스트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강점들은 약 30종이 좀 넘는데, 그 조합의 발현도 각자의 성격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강점간에도 어느 것이 더 강하고, 어느 것이 더 약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도 많이 달라지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사람들의 성격을 이루고 있는 몇몇 요소들(혹은 모듈들)이 있다고 믿게 되었으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쟤는 왜 저럴까?’를 묻지 말고 ‘쟤는 그래서 저러는구나’를 이해하면 우리는 한결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강점을 갖고 있기에 각자의 가치가 있는 것일 뿐, 누가 누구보다 낫고 못하고는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리뷰를 올린 콰이어트(Quiet by Susan Cain) 역시 비슷한 맥락의 책이다. 하지만 콰이어트는 특히 외향적인 성격이 각광받는 이 시대, 이 사회에서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촛점을 맞추고, 그들에게 용기를 준다. 강점혁명이 강점에 촛점을 두고 그것을 발현하는데에만 역점을 두고 기술하고 있다면, 콰이어트는 보다 구체적으로 내성적인 사람들,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세상을 자신있게 살아가는 방법과 내향적인 사람들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무래도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각광받는 ‘기업’이라는 컨택스트, 그 중에서도 ’모르고 말하기 보다는 가만히 있는게 낫다’는 식의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 사회에서 특히 더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3. 변이와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서: 풀 하우스 (Full House) by Stephen Jay Gould
이 책은 일반적인 명성에 비해서 내 머릿속에서만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떠오르는 책이다. 이 책은 통계적으로 진화와 진보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방향성’에 대해서 반박한다. 즉,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진화나 진보라는 것이 방향성을 가지고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론적으로 다양성의 향상과 변이라는 것의 중요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바가 크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다양성, 변이, 변종, 특이함… 그런 것들이 새로운 혁신의 기본 요소들이다.
4. 경영학에 대한 기초: 프린시피아 매니지멘타 (Principia Managementa), 계량적 세계관과 사고체계, 그리고 “삶의 정도” by 윤석철 교수님
윤석철 교수님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한국 경영학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학부때 읽었던 윤교수님의 책들은 말 그대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현학적인 내용도 아니지만, 단순함 가운데서 정수를 뽑아내는데에는 윤교수님만한 분이 없을 것이다. 만약 경영학이라는 것이 철학과 수학과 우리의 일상 생활이라는 세 꼭지점이 그리는 삼각형의 무게중심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윤교수님의 책들을 읽어볼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이 책들이 그렇게 두껍지도, 그렇게 어렵지도 않으면서 정수를 담고 있는 이유는 윤교수님께서 10년에 한권씩만 책을 쓰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나면 읽는 사람도 슥슥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책장 어느 구석에라도 내가 보지 못한 내용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5. 기업에 대한 철학 다듬기: Built to Last & Good to Great by Jim Collins
이 책은 두 권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생각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하나로 묶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Built to Last는 대학교 2-3학년때 즈음에 읽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어떤 기업들이 지금까지 지속 가능했는가?’를 파 봄으로써 대답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디테일이 나와 있으며, 나의 결론은 ‘철학이 있는 기업’ 이라는 것이었다. Good to Great에서 저자는, 그러면 어떤 기업들이 ‘지속 가능’을 넘어서서 ‘위대한 기업’으로 발돋움 하는가? 라는 것을 물었고, 물론 이 책에 다른 내용도 많이 나와 있지만, 나의 결론은 ‘리더십과 구성원’ 이었다. 이 두권의 책은 한마디로 나의 기업에 대한 생각의 A,B,C를 만들어 주었고, 내가 ’좋은’회사를 보는 판단과 관점은 모두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6. 혁신에 대해서 : 경영의 미래 (The Future of Management) by Gary Hamel
개리 하멜 교수의 이전 책들에서는 그다지 ‘울림’을 느끼지 못했는데, 유독 이 책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전 직장을 다니면서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질문이었던 ‘거대 기업에서 혁신이란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아주 명쾌하게도 ‘불가능하다’고 답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혁신이라는 단어는 조직마다 다른 정도의 의미를 품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개리 하멜 교수는 왜 그것이 불가능한지를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증명할 뿐 아니라, 실제 사례에서도 새로운 혁신이 기존 기업을 깨고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기업을 통해서만 새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지난 30년 이상의 세월을 새로운 대기업의 출현이 없는 경제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혁신을 기대하기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는 반증도 된다고 생각한다.
7.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스티브 잡스 전기 Steve Jobs by Walter Issacson
스티브 잡스의 전기. 이 책은 스티브 잡스라는 한 ‘인간’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마도 나와 가장 먼 거리에서 나의 일상에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생긴 Apple II 부터 시작해서 오랜시간 내 컴퓨팅 환경에 영향도 미쳤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경영학 분야에서 애플이라는 별종의 사례들을 빼놓고는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 자체는 그에 대한 많은 부풀려진 가십이나 신화적 이야기보다는 괴팍하고 난해한 한 인간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눈을 띄워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8. 마케팅에 대한 이해는 이걸로 충분했다: 포지셔닝 (Positioning) by Al Ries and Jack Trout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을 좀 더 좋은 책이라고 추천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는 이 책을 더 좋아한다. 결국 마케팅이라는 것의 정수는 포지셔닝에서 나오는 것임을 아주 명쾌하게 짚어 주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classic 한 책의 기준으로 나는 이 책을 지금도 가끔 책장에서 꺼내 보곤 하는데, 지금 다시 읽어도 별로 손색이 없는 부분이 많다. 마케팅이라는 것의 개념에 대해서 헷갈리는 분들은 정독을 권한다.
9. 생각에 관해서 깊게 생각해보다 :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by Daniel Kenhneman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지만, 가장 깊이 감동했다. 이런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만큼… 이 책의 원래 제목은 thinking fast and slow 인데, 한국어 제목도 참 잘 지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이 책은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데에는 두가지 방식 즉, 빨리 생각하는 것과 천천히 생각하는 것의 두가지 시스템이 작용하며, 이들 서로간의 작용으로 인해서 많은 생각의 오류나 착시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특히 좋을만한 책은 블랙스완 (by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이라는 책이며, 행동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은 책일 것 같다.
10. 숨겨진 모든 것에 대하여 : 괴짜 경제학 (Freakonomics) by Steven Levitt, and Stephen Dubner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통념을 가볍게 허물어버리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재미있는 사례들을 골라서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최근의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촉망받는 사람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pod cast 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들은 대부분 pod cast에도 소개가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을 시간 내기가 어려운 분들은 최소한 pod cast라도 열심히 들어보시면 어떨까 생각된다.
11. 아빠와 아들과 회사 – Father, Son and Co. by Thomas Watson Jr.
IBM의 창업자인 토마스 왓슨, 그리고 그의 아들 토마스 왓슨 주니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버지, 아들 그리고 회사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물론 토마스 왓슨 주니어가 물러난 것이 70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80년대 이후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IBM에 대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옛날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기업이라는 것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IBM이 어떻게 혁신과 변화를 통해서 시대의 변화를 헤쳐나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나는 나름대로 이건희 씨가 단지 당대의 이야기만을 쓰지 않고, 그 이전까지 모두 아울러서 삼성 버전으로 이 책을 쓴다면 정말 훌륭한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Grandfather, Father, Grand Son and Company 처럼 너무 제목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