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과 함께 IT 역사에 의미있는 한 판결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 사업자들이 법원, 검사, 수사기관의 수사 등을 위한 업무협조요청에 관행적으로 제공하던 이용자의 개인정보 제공 행위에 대해 법원이 포털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판결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가 인천공항에서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을 피하는 장면을 편집한 일명 ‘유인촌 회피 연아’ 동영상을 네이버에 올린 네티즌을 유 전 장관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네이버에 네티즌의 개인정보 제출을 요청했고 네이버는 수사기관의 요청에 응해 경찰에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넘겨줬다. 이후 여론의 비난에 유 전 장관은 고소를 취하했고 네티즌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본인의 동의없이 경찰에 넘겨준 네이버를 상대로 2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리고 어제(10/18) 서울고등법원 민사 24부(김성준 부장판사)는 네이버를 상대로 낸 2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심)에서 ‘네이버는 5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청구 일부 인용 선고(일부 승소)를 내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상액이 아니라 포털의 이용자 정보 제공 행위에 대해서 승소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여러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용자간 다툼이나 범죄사건 등으로 수사기관을 통해 회원의 개인정보를 요청하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봤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업자들이 사용자간의 분쟁에 따른 사용자의 개인정보 요청에는 수사기관의 업무협조 요청이 있을 때에만 제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넘기지만 민·형사소송이나 범죄사건, 국가기관의 요청에 의해 수사기관이 공문을 통해 업무협조요청으로 개인정보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관행적으로 고민없이 개인정보를 넘기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은 많은 담당자들이 관련하여 근거가 되는 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또 수사기관의 공권력이 두려워 그러는 것이면 차라리 다행일텐데 이도 아닌 그냥 당연하다 듯이 회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법무팀이 있는 대형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라고 상황이 그닥 나은 것도 아닌 듯 싶다.
수사기관의 서면에 의한 업무협조요청에 인터넷 사업자가 회원의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 83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제 83조 (통신비밀의 보호)
①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취급 중에 있는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전기통신업무에 종사하는 자 또는 종사하였던 자는 그 재직 중에 통신에 관하여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조세범 처벌법」 제10조제1항·제3항·제4항의 범죄 중 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한 범칙사건의 조사를 포함한다),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
1. 이용자의 성명
2.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
3. 이용자의 주소
4. 이용자의 전화번호
5. 이용자의 아이디(컴퓨터시스템이나 통신망의 정당한 이용자임을 알아보기 위한 이용자 식별부호를 말한다)
6. 이용자의 가입일 또는 해지일
④ 제3항에 따른 통신자료제공 요청은 요청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서면(이하 “자료제공요청서”라 한다)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서면으로 요청할 수 없는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서면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요청할 수 있으며, 그 사유가 해소되면 지체 없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자료제공요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⑤ 전기통신사업자는 제3항과 제4항의 절차에 따라 통신자료제공을 한 경우에는 해당 통신자료제공 사실 등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장과 자료제공요청서 등 관련 자료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
⑥ 전기통신사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통신자료제공을 한 현황 등을 연 2회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하며,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기통신사업자가 보고한 내용의 사실 여부 및 제5항에 따른 관련 자료의 관리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⑦ 전기통신사업자는 제3항에 따라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한 자가 소속된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제5항에 따른 대장에 기재된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알려야 한다. 다만,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한 자가 법원인 경우에는 법원행정처장에게 알려야 한다.
⑧ 전기통신사업자는 이용자의 통신비밀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기구를 설치·운영하여야 하며, 그 전담기구의 기능 및 구성 등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⑨ 자료제공요청서에 대한 결재권자의 범위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실제 대다수의 개인정보 요청은 담당 경찰관의 경찰증 복사본과 함께 서면으로 작성된 업무협조요청서(법률상 자료제공요청서)를 팩스로 보내고 전화 통화를 통해서 간단한 내용 설명과 함께 팩스 전달 사실을 알린다. 때문에 인터넷 사업자는 개인정보의 제공이 법률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제공된 개인정보만 작년 한해 580만 건에 달했다.
그런데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구 전기통신사업법 제 54조 3항 통신자료제공관련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에서 통신자료 제공이 ‘임의수사’의 영역으로 사업자가 이를 반드시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본권을 직접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를 선고했다.
즉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한 것은 반드시 따라야하는 의무와 강제는 아니라며 사업자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사업자의 판단에 의해 정보 제공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3일 재판관 5[각하] : 3[반대]의 의견으로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청구인의 주소, 전화번호 등 통신자료의 제공을 요청하여 취득한 행위 및 그 근거가 된 구 전기통신사업법(2010. 1. 1. 법률 제9919호로 개정되고, 2010. 3. 22. 법률 제1016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4조 제3항 중 ‘수사관서의 장으로부터 수사를 위하여 통신자료제공을 요청받은 때’에 관한 부분에 대한 심판청구를 각하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위 통신자료 취득행위는 강제력이 개입되지 아니한 임의수사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위 법률조항만으로는 청구인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된다고 할 수 없어 이에 대한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서울고법의 일부 승소 판결은 헌재의 인터넷 사업자가 통신자료를 제공할 법률상 의무가 없다는 해석의 연장선 상으로 볼 수 있다. 이용자의 동의없이 공권력을 통한 무분별한 통신자료 요청에 소중한 개인정보가 국가기관으로 넘겨지는 것이 잘못됐으며, 이에 인터넷 사업자의 일부 책임을 인정한 유의미한 판결이라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헌재의 판결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공권력에 의한 개인정보 요청을 관련 법령이 없는 현실에서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만으로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에는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되어 회사의 성장이나 나아가 존폐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없이 정치적 이슈가 되는 네이버를 보면 얼마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지 알수 있지 않은가?
때문에 인터넷 사업자의 자발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현실과 법령의 미비로 발생하는 간극을 입법과 판례를 통해서 보완해 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각하가 아닌 위헌 결정을 통해서 법률적 보완이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반대의견을 낸 3명 재판관의 소수 의견에 더욱 공감이 가고 판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이번 판결과 함께 인터넷 사업자들이 수사기관의 관행적인 대규모 자료 제공 요청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인터넷 기업협회 차원에서 통신자료 제공 관련 가이드라인을 다음주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가이드라인에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수사기관의 공익추구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통신자료 제공이 엄격한 기준 하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이 담겨진다고 하는데 발표될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사용자 입장에서 면밀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아가 인터넷 사업자들은 해당 가이드라인과 함께 관련 법령을 담당자들에게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도주 등의 우려가 있는 불가피하게 비공개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상황에서 이용자에게 수사기관에 정보공개 한 사실을 이메일으로나마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해 사용자의 알권리를 보다 강화해 주는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
네이버와 다음 등 거대 포털과 관련된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보고 있자면 포털 법무팀과 대외협력팀, 결정 권한자들이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거대 포털을 끊임없이 비판해야 딜레마에 빠진다.
글 : 세균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