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리콘벨리 한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재미있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팔로알토 리서치센터에서 포닥을 마친 유능한 인재가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을 마다하고 GE(General Electric)로 취업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스트 벨리(구글, 인텔, 시스코 등 테크 기업들이 모여 있는 서쪽이 아닌 벨리 동쪽 지역)에 샌 레몬(San Ramon)으로 갔다는 것이다.
GE? GE도 실리콘벨리 오피스가 있었나? 뭐 있겠지. 캐피털 쪽인가? 헬스케어인가? 하고 자그마한 의문을 가졌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물어도 잘 알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지난주 GE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초대형’ 발표를 하고 이 것이 지역 신문과 뉴욕타임즈 등에 대서특필되면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GE가 실리콘벨리에 글로벌리서치센터를 세우고 약 400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채용하며 앞으로 ‘산업 인터넷(Industrial Internet)’ 분야에 약 10억달로를 투자한다는 뉴스였다.
나는 직감했다. 이거 큰 뉴스다. 그리고 GE에서 나온 리포트를 읽고 샌프란시스코에서 GE가 개최한 ‘Mind+industry conference’를 유튜브를 통해 스터디했다. 그리고 나온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제 3차 산업혁명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구나. 방금 티핑포인트를 지났다. 이제는 뒤로 돌아올 길은 없다. The Point of No Return”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의 고민
특히 GE의 움직임이었기에 ‘산업 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이 막 떠올랐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GE가 어떤 회사인가. 에디슨의 발명을 모태로 1892년 설립 돼 120년간 세계 정상의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흔치 않은 회사다.
지난세기 수많은 회사들이 명멸했지만 GE는 설립이후 단 한번도 에너지, 항공, 운송, 산업설비, 발전, 의료기기 분야에서 주도권을 잃어본적이 없다. GE의 신사업도 항상 주목을 받아서 운송, 금융 서비스, 조명 등도 실패하지 않았다.
GE는 현대 경영학의 교과서같은 회사다. 워크아웃, SWOT분석, 전략계획 등의 70~80년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경영 기법을 만들어 냈으며 크로톤빌 연수원은 전세계 모든 최고경영자(CEO) 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코스다.
지난 2001년 잭 웰치에서 제프리 이멜트로의 회장 및 최고경영자 승계 과정도 세계적으로 주목받아 CEO 승계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GE는 소위 ‘산업(Industry)’ ‘제조업(Manufacturing)’의 세계적인 회사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냉장고, 세탁기 등 전자 제품을 제조(지금도 사업을 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잃었다) 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항공용 제트엔진을 만들고 기관차를 만들며 윈드 터바인 등 발전설비, MRI 등 병원 장비를 만든다. GE가 제조하는 산업용 설비과 기계 장치에 있어서는 각 분야 1위를 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항공용 제트엔진, 병원 장비, 윈드 터바인 등 GE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특허도 독점하고 있고 경쟁사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어느 기업보다 안정적인 사업을 할 수 있다.
이 회사의 전략은 간단하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분야(Domain)에서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항공 제트엔진, 더 선명하게 신체를 검사할 수 있는 MRI 장비, 더 빨리 돌고 효율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윈드 터바인’을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고객(주로 항공사, 병원, 정부 등)에게 제품을 공급하면 된다.
그래서일까. 한때 “GE를 배우자”며 벤치마킹 대상이던 이 회사는 어느 순간부터 경영학자,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는 항상 고객과 만나고 저녁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데 최근들어 고객들이 더 좋은 제품(Better product)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무엇인가를 더한 ‘플러스 알파’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미레이츠 항공과 같은 항공사나 보잉과 같은 비행기 제조사들은 GE로부터 ‘더 빠르고 안전한 제트엔진’만을 원하는게 아니라 사막에서 더 잘 버틸 수 있는 엔진을 원했다. 에미레이츠 항공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두바이가 홈이다. 비행 조종사들이 뉴욕이나 런던에서 뜨고지는 비행기보다 더 열에 강해야 하고 이착륙하는 특성이 다른 엔진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정확하고 정밀한 MRI 장비뿐만 아니라 거기에 더해서 MRI 장비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MRI 장비의 주요 고객인 의사들이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데이터까지 MRI 장비에서 나오는 것을 병원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그가 최고로 여기는 고객의 요구는 ‘최고의 제품’이 아니라 연결된 제품(Connected Product)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에 20달러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GE 주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임 잭 웰치 회장 재임 시절 40달러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GE에 무엇인가(알파)를 더하지 않으면 주가가 꿈쩍안할 것 같았다.
이멜트 회장은 GE가 생산하는 각 제품에 ‘인터넷’을 연결하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항공용 제트 엔진과 MRI 등 병원 장비에 이미 달려 센서에 인터넷을 연결시켜키고 여기에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해서 조종사들과 의사들에게 제공하면 고객들이 원하는 ‘플러스 알파’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GE의 ‘산업 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이다.
이멜트 회장은 “인터넷은 단 한번의 클릭으로 소비자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여전히 도전적인 상태로 남아있게 됐다. 하지만 인터넷이 가져다 주는 변화는 단지 사람이나 데이터만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적인 기계들과 연결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고객들에게 줄 수 있는 서비스를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고 좀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장비가 되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산업 인터넷이란 무엇인가?
Industrial Internet은 산업 인터넷 또는 산업용 인터넷으로 해석할 만하다. 일단 GE코리아측에서는 ‘산업용 인터넷’으로 번역을 했다. 그리고 모든 사물에 인터넷을 연결한다는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대물통신(M2M : Machine to Machine)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또 각 회사마다 비슷한 개념이지만 회사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특히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는 ‘모든 것의 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 이라 부르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산업용 인터넷’보다는 ‘산업 인터넷’으로 부르고 싶다. 물론 GE의 공격적인 발표가 글을 쓰는 모티브가 됐지만 GE의 각 사업 분야에 인터넷을 연결시키는 개념을 확장 시켜 자동차, 선박 등 중후장대 제조업은 물론 의류, 식품 산업에 이르기까지 기존 1, 2차 산업과 제조업에 인터넷을 연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개념으로 이해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인터넷이 연결된 컨슈머 ‘제품’, 즉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MP3는 물론 앞으로 나올 인터넷이 연결된 디바이스를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라고 구분짓기로 한다.
사실 어떻게 해석을 하든 큰 차이가 없지만 앞으로는 ‘산업 인터넷’과 ‘사물 인터넷’이 구분 돼 사용될 날이 올 것으로 본다.
GE의 ‘산업 인터넷’은 기기와 기기, 기기와 사람, 기기와 비즈니스 운영을 연결시켜서 항공, 철도, 병원, 제조 및 에너지 분야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 약 1500억 달러의 낭비 요인을 없앨 수 있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액센추어와 합작사 ‘탈레시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항공기 성능 데이터, 고장 예측 기술 등을 분석해 전세계 항공 기업들에게 제공하게 된다.
산업 인터넷을 위해 약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캘리포니아 샌 래몬의 연구개발센터도 산업 인터넷 데이터 분석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했다.
GE는 보도자료에서 “전 산업에 걸쳐 효율성을 1% 끌어 올리면 엄청난 규모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향후 15년간 에너지 산업에서 연료 사용량을 1% 줄이면 660억 달러, 항공 업계는 300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으며 헬스케어는 630억 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GE의 계획대로 철도에 인터넷을 연결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 회사는 철도 인터넷을 위해 ‘레일커넥트 교통관리 시스템(RailConnect Transportation Management System)’을 개발했다. 사실 철도 산업에 있어 정시 출발은 금과옥조와 같다. 정시 출발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정비’인데 제때 철도와 차량을 정비하고 고장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비용과도 크게 연결 돼 있다.
미국의 철도 가동률은 73% 정도에 머물러 있는데 이 말은 나머지 27%는 고장으로 쉰다는 얘기다. GE는 철도와 차량에 인터넷을 연결시켜 고장을 사전에 감지하고 예측, 철도 가동률 1%를 높여 매년 6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철도망 속도를 시속 1마일씩 올려 연간 최대 2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계획에만 머물러 있는가? 아니다. 이 시스템은 북미 지역 철도 사업자인 노폭서던(Norfolk Southern)이 도입하기로 했다.
항공 분야의 경우에도 지능형 운영(Intelligent Operations)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항공기 장비에서 수집된 자료를 모니터하고 항공기 정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진단하고 예측하게 된다.
GE는 미국의 항공사가 지능형 운영 서비스를 사용하면 매년 1000건에 달하는 지연 출발과 항공편 취소를 사전 예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9만명이 지연없이 제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풍력 발전에 센서를 달아서 인터넷과 연결시키면 어떻게 될까? 이미 퍼스트 윈드(First Wind)라는 회사가 GE와 함께 실험 중이다. 풍력 발전기에 센서와 컨트롤러를 내장하고 소프트웨어를 최적화 시켜서 외부의 기온, 풍속을 감지하고 바람을 맞이하게 된다. 바람이 세계 불면 프로펠러가 많이 돌아서 풍력 발전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풍력 발전소들은 바람이 지나치게 강하게 프로펠러가 고장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동을 멈춰왔다. 하지만 실제로 풍력 발전을 저해하는 ‘강한 바람’은 바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음이 동반된 바람이었던 것이다. 미세한 얼음이 강하게 프로펠러에 부딛혀서 터바인을 고장나게 했던 것이다. 퍼스트 윈드는 터바인에 센서를 달아 인터넷에 연결시킨 결과 1년 사이에 풍력 발전이 3%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왜 이는 Next Big Thing 인가?
1800년대 증기기관이 등장한 이후 불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수많은 혁명기를 맞았다. 정보화 혁명(Information revolution), 인터넷 혁명, 에너지 혁명, 정치 혁명 등등 각종 혁명이 많았다. 이 중에는 인터넷 혁명처럼 진정한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도 있었지만 ‘새롭다’는 내용을 눈에 띄게 만들기 위해 혁명이란 단어를 가져다 붙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혁명의 보편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리지널 산업혁명(The Industrial Revolution)처럼 진정한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 양식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소비하고 물건을 만드는 방식까지도 바뀌어야 한다.
1990년에 본격적으로 개발,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이 20년이 지난 지금 ‘혁명’ 대접을 받는 이유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고 정보를 소비하는 양태를 바꿨으며 매장에 가지 않고 클릭만으로 쇼핑이 가능하게 만드는 등 돈 쓰는 구조도 바꿔놓았다.
산업 인터넷이 Next Big Thing이라고 불릴만한 이유는 ‘산업’과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만나 서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인터넷은 기계와 인터넷이 만나 데이터를 만들어 내고 생산성을 높이며 기계를 사용하는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나는 산업 인터넷에 대해 “기계가 인터넷을 만나 비로소 심장을 얻어 숨을 쉬고 핏줄을 만들어 피가 돌게 됐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기계는 인간이 지시하고 입력하는 것만 성실히 수행을 했으나 인터넷과 결합시켜 생명력을 얻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구글이 실험하고 있는 구글카. ‘무인 자동차’도 산업 인터넷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동차에 인터넷을 연결시켜 스스로 운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결국 기계(자동차)와 인터넷이 만나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기계가 스스로 고장난 부분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 고쳐야하는지’도 예측할 수 있다면 주인은 기계의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산업 인터넷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산업 구도를 바꾸고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동안 각각 발전해 왔던 컴퓨팅, 데이터 분석(애널리틱스), 센싱 분야가 ‘산업’과 만나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있는 셈이다.
<More Reading & Original Source of Article>
1. 뉴욕타임즈 기사
2. 산업 인터넷 관련 GE리포트
3. 1%의 힘(GE리포트)
4. 이멜트 회장 인터뷰 (기가옴)
5. SF 클로니클 기사
<More Video>
머신+인터넷 컨퍼런스. 제프리 이멜트 회장 키노트
글 : 손재권
출처 : http://jackay21c.blogspot.kr/2012/12/industrial-internet.html